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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없어 건축된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6천 7천 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바위 속에서 혈거생활을 시작한 이래, 로마 초기의 박해를 피한 기독교인들이 숨어들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후 기독교 시대에는 수도나 평범한 삶의 장소로 바위 속을 뚫어 거주공간을 계속 넓혀갔다. 13세기에 칭기즈칸의 말발굽이 닿았을 때 입구를 봉쇄하고 지하 도시 속에서 완벽한 저항을 계속했다. 그 지하도시가 몇 층까지 내려가는지 아직 모른다. 어떤 이는 17 18층은 족히 내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피난민이 늘어날수록 더 큰 공간의 넓이가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가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지하 도시 안에는 평상시에 밖에서 사료를 날라다가 저장해 둘 뿐 아니라 추수한 곡식들이 서늘한 지하 도시에 보관되고, 비상시 음료수를 위해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포도주를 놓아둔 흔적들도 있다. 땅속 깊이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또한 이것을 지하 공기를 맑게 해 주는 통풍 장치로도 활용하였다. 동굴 중간 중간에는 외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둥근 맷돌 모양의 큰 석물도 놓여 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카이마클리 지하도시>
<데린쿠유 지하도시>
<카이마클리 지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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