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저자 마르틴 부버와 작품개관
2. 작품 내용요약 및 분석
3. 대화적 실존으로서의 인간
4. 인간의 근원어 `나와 너`
5. 맺음말
2. 작품 내용요약 및 분석
3. 대화적 실존으로서의 인간
4. 인간의 근원어 `나와 너`
5. 맺음말
본문내용
상호 의존성안에서 한 개인이 만들어진다는 유추를 하게 되며 그 상호 의존성을 통하여 참된 나를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상호 의존성안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늑대인간이다. 밀림 속에서 늑대와 함께 수십 년 동안 살던 늑대인간은 모습만 인간일 뿐, 늑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늑대의 생활을 하고 있는 자였다. 늑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 자는 자신들과 참된 상호 의존성을 가지고 있던 자라고 말할 수 있을테지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으로 본다면, 그는 인간이라 말할 수 없는 자였다. 이는 참으로 사람이 사는 환경의 내용과 그 주변에서 표상되어지는 상호 작용의 관계에 따라 한 인격의‘나’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책의 제3부에 나와 있는‘영원한 너’에서 수정된다. 절대자이고 스스로 계신 영원한 너라는 분으로 말미암아 참된 나를 발견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는 환경의 내용과 그 주변에서 표상되어지는 상호 작용의 관계에 따라 한 인격의‘나’가 만들어진다고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관계 속이지만, 실제로 표상되어지지 않는 관계이고, 우리 눈으로는 현현 될 수 없는 관계이기에 보다 근원적인 나는 영원한 너 속에서 이 땅에 때로는 드러나고, 때로는 감추어지는 나 속에서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라고 말을 할 때, 먼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속에서의 상호 작용을 생각 할 수 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를‘나와 너’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나와 그것’이라고 할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 안에서의 나와, 배우는 자(너 혹은 그것)와의 관계를 정하는 일이다. 만약 나와 그것으로써의 관계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 때는 우리가 이상적인 교육이라고 기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너로의 관계에서는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 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는‘나와 너’의 관계가 나도 살리고, 너도 살리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부버는 우리가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표상되어지는 모든 것 속에서도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흐릿한 암시를 주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 속에 묻어나오는 유대교적 관점, 곧 신을 향한 그의 갈망 속에서 이해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비록 우리는 영원한 너를 향하여 찾아 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넘어서 보다 깊이 파고 들어가 마침내 너이면서 결코 그것이 되지 않는 영원한 너를 만나 참된 나를 알아가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원한 너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 왔지만 역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부버는 말한다.
5. 맺음말
참된 삶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대상으로 대할 때 불행해지는 것이다. 단지 상대는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조차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나? 단지 내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그들을 대하고 있지 않나? 너무나 이기적이고 악한 시대에 참된 삶에 대한 성찰을 주는 귀한 책이다.
‘나와 너’는 참 짧은 책이지만 그 내용의 난해성 때문에 두꺼운 책을 소화하는 것 이상의 힘듦이 요구되었지만, 다 읽고 났을 때는 작지만 큰일을 성취한 것과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우리는 영원한 너와 관계함으로 참된 나를 알아서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그것과의 관계가 아닌 너와의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 의미있는 만남을 가지며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하지만 이 주장은 책의 제3부에 나와 있는‘영원한 너’에서 수정된다. 절대자이고 스스로 계신 영원한 너라는 분으로 말미암아 참된 나를 발견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는 환경의 내용과 그 주변에서 표상되어지는 상호 작용의 관계에 따라 한 인격의‘나’가 만들어진다고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관계 속이지만, 실제로 표상되어지지 않는 관계이고, 우리 눈으로는 현현 될 수 없는 관계이기에 보다 근원적인 나는 영원한 너 속에서 이 땅에 때로는 드러나고, 때로는 감추어지는 나 속에서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라고 말을 할 때, 먼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속에서의 상호 작용을 생각 할 수 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를‘나와 너’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나와 그것’이라고 할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 안에서의 나와, 배우는 자(너 혹은 그것)와의 관계를 정하는 일이다. 만약 나와 그것으로써의 관계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 때는 우리가 이상적인 교육이라고 기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너로의 관계에서는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 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는‘나와 너’의 관계가 나도 살리고, 너도 살리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부버는 우리가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표상되어지는 모든 것 속에서도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흐릿한 암시를 주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 속에 묻어나오는 유대교적 관점, 곧 신을 향한 그의 갈망 속에서 이해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비록 우리는 영원한 너를 향하여 찾아 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넘어서 보다 깊이 파고 들어가 마침내 너이면서 결코 그것이 되지 않는 영원한 너를 만나 참된 나를 알아가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원한 너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 왔지만 역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부버는 말한다.
5. 맺음말
참된 삶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대상으로 대할 때 불행해지는 것이다. 단지 상대는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조차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나? 단지 내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그들을 대하고 있지 않나? 너무나 이기적이고 악한 시대에 참된 삶에 대한 성찰을 주는 귀한 책이다.
‘나와 너’는 참 짧은 책이지만 그 내용의 난해성 때문에 두꺼운 책을 소화하는 것 이상의 힘듦이 요구되었지만, 다 읽고 났을 때는 작지만 큰일을 성취한 것과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우리는 영원한 너와 관계함으로 참된 나를 알아서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그것과의 관계가 아닌 너와의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 의미있는 만남을 가지며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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