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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발해가 우리역사의 일부분인 이유][발해 정체성][발해 문화적 기반][발해의 멸망][후발해의 건국]발해가 우리역사의 일부분인 이유, 발해의 정체성, 발해의 문화적 기반, 발해의 멸망, 후발해의 건국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발해가 우리역사의 일부분인 이유

Ⅲ. 발해의 정체성과 문화적 기반

Ⅳ. 발해의 멸망

Ⅴ. 후발해의 건국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 제어하는 데 문제가 많다는 이유였다.
Ⅴ. 후발해의 건국
알려진 바와 같이 926년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발해 즉 후발해가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후발해의 힘 또한 만만치 않아 과거의 발해와 비견될만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다만, 926년 기록들에서 나오는 발해 사신들은 발해가 멸망하기 전의 대발해인들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 후발해의 중앙정치제도나 외교도 결코 대발해 못지않았지 않았는가 한다. 후발해는 송에서 발해왕 또는 발해염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정도였고(사료 O)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태자가 건재하고 있었는가 하면(사료 D), 남해부에 도독(열주도)을 둘 정도로 지방에 대한 통제력도 있었고(사료 K), 대발해시대 중앙 정치제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정당성과 산하 관리의 하나인 공부경도 실재했었다(사료 K). 그리고 이러한 발해의 실체를 인정하고 후당은 발해 사신들에게 조산대부(성문각; 사료G), 조산랑우효위장사(고보; 사료 G), 검교공부상서(열주도; 사료 K)나 시광록경(오제현; 사료 K) 등의 벼슬을 줄 정도였다. 한편 후발해 역시 외교에도 힘을 쏟아 후당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후발해의 외교적 확약은 발해부흥국 후발해의 객관성을 높여 주는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위에서 후발해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후발해는 언제, 어떤 세력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어떻게 성장·발전하다가 쇠퇴·멸망하였고, 그 중심지는 어디였으며 그들의 통치력은 어디까지 미쳤는가 하는 구체적 사실들이 밝혀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 복원은 직접적인 사료가 없어 많은 문제가 있으나, 요사 및 여타의 방증사료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이것은 일정한 수준에서나마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또한 후발해사 뿐만 아니라, 정안국 등의 발해유민사의 복원에도 중요한 바탕을 제공해 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연구와 관련하여 일야개삼랑이 후발해건국 세력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은 주목하여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위의 사료 다-B에서 밝히고 있는 후발해사신 대소좌의 파견 주체를 발해세자 대광현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야개삼랑은 후발해의 건국자를 대광현의 숙부인 왕제로 간주하였다. 이와 같은 생각에서 그는 대발해 왕실로서는 마지막이었던 견후당사 대진림(다A) 보다 2개월 남짓 늦게 파견된 (후)발해 사신 대소좌는 왕제와 대립적이면서 압록강 부근에서 세력을 잡고 있던 대광현이 파견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발해가 멸망하고 일년이 못되서 해외에 사신을 파견할 수 있었던 주체는 대진림의 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세자 대광현이 후당과 교통이 쉬운 압록부에 세력을 펴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은 934년에 대광현이 고려에 투화하고 4개월만에 다시 대인선대의 대진림이 고려에 곧 투화했던 사실과도 관련이 있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야개삼랑의 견해는 과연 대광현이 934년에 고려에 투화해 왔는가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아 있는 등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야개삼랑의 후발해사에 대한 이러한 용기있는 접근은 후학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박재영(2000), 발해사 연구를 위하여, 천지출판
박시형(1979), 발해사, 이론과실천
발해사 편집실(2000), 자주독립국 발해, 천지출판
송기호(1995), 발해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국가위상, 서울대학교
송기호(1995), 발해의 정치사 연구, 일조각
임상선(1990), 발해사의 이해, 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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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1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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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2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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