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설교(설교와 설교자) 요약
본 자료는 9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해당 자료는 9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9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의 평상시의 상태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요한은 말하기를 자기는 주의 날에 밧모 섬에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성령에 감동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가 큰 환상을 보고 교회들에 보내는 주의 전하는 말씀과 미래 역사의 되어 질 것을 이해한 것은 바로 이 성령 감동의 결과인 것이다. 이것은 설교하는 일에 관한 정확무오한 성경적인 증거와 증언이다. 성령을 구하라! 그를 찾으라! 그분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분을 구하라. 항상 찾으라. 그러나 그를 찾는 것 이상으로 구하라. 그를 기다리라.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요구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실 수 있다.
<목사와 설교를 읽고>
현대에는 참으로 많은 복음전파를 위한 매개체들이 있다. TV, 인터넷, 라디오, 영화, 연극 등의 매개체들에서는 쉴 새 없이 설교가 가히 쏟아져 나온다.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많은 설교들이 제대로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복음의), 잘하는 설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설교학을 공부하고 로이드 존스의 목사와 설교를 다시 정독하면서 참 많이 부끄러웠다. 나 자신 부터도 TV나 인터넷에 나오는 유명 설교가들을 닮으려 했고 라디오에 나오는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따라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유명한 설교자들이라 해도 설교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설교는 무엇인가? 진정한 설교는 바로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昨今)은 어떤가? 설교를 듣다보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 할 때가 많이 있다. 개인의 간증, Q.T, 책 소개, 철학자들이 했던 말, 등등.. 또 수없이 나오는 확인 되지 않은, 은혜는 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출처와 근거를 알 수 없는 예화와 예증들...
로이드 존스는 심지어 찬송을 하느라 설교시간이 짧아진 것조차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 보면 많은 목사님들은 참으로 힘들고 지친다. 얼추 계산해도 일주일에 10여 차례 이상의 설교를 해야 하고 교회와 성도들 집안의 행사까지 챙기다 보면 정말 많은 설교를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설교의 질(?)은 성장이 안 되면서도, 성도들은 변화되지 않고 오히려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사람의 하나였다. 예전에 신앙생활 했던 때와 지금은 성도들이 참 많이 변했다. 헌신하려 하지 않고 봉사하려 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복 받기는 더 바란다 하면서.
그러나 로이드 존스가 말하는 것처럼 세대를 두고 변하지 않는 것은 말씀이다. 말씀에 은혜 받으면 성도는 성장, 변화하기 마련이다. 말씀이 과연 복음을 말하고 있으면 복음은 자라고 성장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의 풍요 속에 은혜의 빈곤으로-혹은 은혜를 감정과 혼동하는 가운데-변화 성숙은 고사하고 세속화, 세상화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또한 성도들의 측면을 보면 더 답답하다. 교회에 성도가 많이 모이는 교회는 대부분 설교가 윤리적, 교육적 측면을 강조하며 복을 구하고 있다. 그것은 성도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듣는 것이리라. 심지어는 적극적 사고방식의 유형이 그대로 설교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복음 제시는 단 한 마디도 언급될 틈이 없이. 물론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복음 제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한번 진지하게 마음을 내려 놓고 생각해 볼일이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 나 “긍정의 힘”에서 말하는 것들이 과연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는 것을. 특히 우리나라는 교회 성장 위주의 목회이다 보니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용해야 했고, 아니 더 빨리 받아들이는 교회가 승산이 있었기에 앞 다투어 이런 프로그램, 저런 플랜을 받아 들여야 했다. 설교와는 거리가 있지만 알파코스가 과연 성경적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세속화가 오히려 교회를 사람들이 떠나게 했고 믿지 않는 자는 교회를 등지게 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원수시 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아프칸 피랍사태에서 느꼈듯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질타와 원망과 던진 돌들은 우리의 현 상황을 깨우치는 이상의 아픔을 던져 주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상처가 되었던 이번 일을 생각해 보며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속화되어진 결과는 진정한 말씀의 부재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이젠 더욱 더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개혁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루터나 칼빈이 종교개혁의 기치로 내 걸었던 오직 말씀 오직 믿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진정한 부흥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며 주님의 십자가 지심이 바로 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복음을 증거하고 전할 때 일어나는 것이리라.
오늘도 로이드 존스는 외친다. “메시지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게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그것만 전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게 있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메시지가 나에게 주어졌으며 전달되었습니다. 나는 내 사상과 개념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단순히 내가 생각하거나 추측한 것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만을 전달합니다. 나는 그것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해 줍니다. 나는 그(말씀) 도구이자 통로이며 수단입니다. 나는 그 대리인입니다. 제가 독단적인 주장을 편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설교자는 자기의 방법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제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는 없다 해도, 최소한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고려해 보도록 자극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설교학 입문시간이 넘 행복합니다.^^>
  • 가격3,000
  • 페이지수28페이지
  • 등록일2009.04.29
  • 저작시기2006.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2565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