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시네마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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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필로시네마 서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블레이드 러너 - 복제인간과 안티 오이디푸스
3.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 욕망은 어떻게 혁명과 조우하는가?
4. 더 월 - 벽 혹은 탈주의 철학
5. 모던 타임스 - 자본주의와 유쾌한 분열자
6. 와호장룡 - 강호의 공간적 특성에 관한 고찰
7. 동사서독 - 그 멈춘 기억의 장소를 통과하는 인연의 선들에 관하여
8. 허공에의 질주 - 잠행의 시간, 잠행자의 공간
9. 풀몬티 - 자본주의와 남근중심주의의 옷을 벗기다
10. 길버트 그레이프 - 가족의 근대적 평면과 유목적 자유의 공간
11. 토탈리콜 - 괴델적인 세계에서 주체의 동일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12. 결론

본문내용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어딘가 숨음으로써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남들의 눈앞에 나서면서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남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지각 불가능한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잠행자는 전형적인 유목민이다. 그 어떠한 머묾도, 어떠한 정체성이나 동일성도 허용되지 않기에 그렇다. 결국 이들에게는 고정된 정체성이 상실됨으로써 ‘자아’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베트남 전이라는 현실 속에서 탈주해버린 이들, 그리고 이 탈주를 잠행으로써 유지해야만 하는 처지, 이런 맥락 속에서 이들은 자아마저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9. 풀몬티 - 자본주의와 남근중심주의의 옷을 벗기다
“노동은 가치의 척도”,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노동이 찬미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노동하지 않는 자, 아니 노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자의 입장에 서고 보면, 노동에 대한 이 모든 찬사와 찬미는 당혹스럽고 끔찍한 비난이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가즈와 데이브, 제랄드 등과 같은 실업자가 그들이다.
결국 이들은 영화의 제목대로 다 벗어버린다(full monty). 스트립쇼를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남성 스트립 댄서에 대한 시선은 매우 삐딱하다. 이들로 하여금 옷을 벗게 하는 현실이 존재함에도, 한편으로는 또 옷을 못 벗게 하는 시선 역시 상존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풀 몬티’는 이들이 옷을 벗는 행위를 통해 옷을 벗어 던지지 못 하게 하는 시선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남성들이 스트립 댄서가 되는 것을 단지 퇴폐적인 행동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남근적인 경로가 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실업자들이 스트립 댄서가 됨으로써 남근중심주의, 가부장제로부터 탈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여성들만이 옷을 벗었고, 또 스트립 댄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성역할, 성차별로부터 탈주하는 계기가 바로 실업이었다. 그리고 이 실업을 통하여 남녀 간의 성적 고정을 극복하여 이윽고 남근중심주의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10. 길버트 그레이프 - 가족의 근대적 평면과 유목적 자유의 공간
이 영화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가족영화는 아니다. 가족영화이면서 반-가족영화이다. 왜냐하면 가정이라는 제도에 내재돼 있는 근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일터와 집이 분리되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경우든, 대장간을 하는 경우든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곤 일터와 집은 하나였다. 그러나 맑스가 근대적 작업장과 공장의 발생에 대해 말하면서 잘 보여주듯, 근대적 산업은 생산자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음으로써 시작됐다. 그에 따라 일터와 집이 분리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불어 가족 내에서 일정한 역할 분화가 발생한다. 남성은 생계를 책임지면서 직업적인 활동을 전담하게 되었고, 여성은 가정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결국 근대 이후의 가족은, 그 분업성으로 인해 하나의 감옥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남편에게는 남편의 역할, 아내에게는 아내의 역할, 자녀에게는 또 자녀의 역할을 기대함으로써, 모든 가족 구성원을 하나의 역할로 규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역할이 규정된다는 것은 실존적 성격이 정의 내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적 가족 역시 탈주의 대상이 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이 선택한 탈주는 캠핑카이다. 한 곳에 정주함을 거부하고, 캠핑카로 끊임없이 돌아다님으로써 정주민의 의무를 박차 버리는 것이다. 머물지 않으면 정체성도 없고, 정체성이 없으면 제약과 의무도 사라진다. 근대적 가족의 속박, 이것을 캠핑카를 통한 유목 생활로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11. 토탈리콜 - 괴델적인 세계에서 주체의 동일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토탈리콜에서는 현실과 모상을 섞음으로써 어떤 사실이 현실인지 모상인지 결정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예컨대, 리콜 사의 의사를 자처하며 호텔로 그웨이드를 찾아온 에즈마는 그웨이드에게 지금 당신은 환상여행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그웨이드에게 묻는다.
“뭐가 거짓말이죠? 약물의 작용으로 환상에 빠졌다는 말이 거짓말인가요? 아니면 화성 첩보원인 당신을 인부에 불과하다고 믿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말이 거짓말인가요?”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명제에 대해 크웨이드는 참과 거짓을 판단하지 못 한다. 여기서 서로 모순적인 두 명제는 참, 거짓을 결정하기 곤란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미 에즈마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린 상태에서 질문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참된 인식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인식의 불가능함은 바로 자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식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만큼 말이다.
이처럼 영화 토탈리콜은 주체의 동일성, 더 나아가 주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는다. 괴델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주체에 대한 물음 자체는 그 물음을 하면 할수록 본질로부터 한걸음씩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친밀하며 분리될 수 없다고 믿어지는 우리 자신의 자아, 이것이야말로 가장 흐리게 인식되는 난점을 띤 것은 아닐까?
12. 결론
이제까지 10편의 영화를 살펴봤다. 각각 소재는 달리하지만, 하나로 관통되는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탈주’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영화들이 탈주를 지향하고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영화들에서 탈주를 찾아내는 저자의 시각에도 반드시 찬성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영화라는 꿈에서 탈주라는 해몽을 뽑아내는 저자의 견해에 꽤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탈주, 이것은 단순한 도망침이나 무조건적인 저항은 아닐 것이다. 탈주는,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억압의 주체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탈주는 인간다움을 뜻하며, 인간다워짐을 멈추지 않는 작업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10편의 영화는 비인간적인 공간과 배경에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노력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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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07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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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33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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