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연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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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장 서 론





1-1. 연구목적 ∙∙∙∙∙∙∙∙∙∙∙∙
3



1-2. 연구방법과 절차 ∙∙∙∙∙∙∙∙∙∙
3





제 2장 본 론






2-1. 城郭이란? ∙∙∙∙∙∙∙∙∙∙∙
3



2-2. 남한산성 ∙∙∙∙∙∙∙∙∙∙∙
3



2-3. 수원화성 ∙∙∙∙∙∙∙∙∙∙∙
8



2-4. 해미읍성 ∙∙∙∙∙∙∙∙∙∙∙
12






제 3장 결 과 도 출 ∙∙∙∙∙∙∙∙
15


참 고 문 헌 ∙∙∙∙∙∙∙∙∙∙∙∙∙∙∙
16

본문내용

하다가 청주로 이설된 후 반양리에 있던 고을 현감이 이 성에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었다.
낮은 산과 평지를 이용하여 쌓은 평산성으로 성곽의 하단은 큰 돌을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였는데 안쪽은 흙으로 채웠다. 성문은 동, 서, 남 세 곳만 있고 북에는 암문이 있다. 주출입구인 진남문은 다듬어진 돌로 된 아치형 홍예문이다. 성곽의 둘레는 1800m, 높이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가 심어져 탱자의 한자음을 취한 지성이라고도 한다. 충청도의 군사 중심지로서 군사권은 물론 내란방지 등 사회시설의 기능까지 담당하는 격이 높은 성이었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던 곳이다.
2 - 4 - 1 해미읍성의 美
1) 성곽과 진남문의 권위와 수평적 비례
- 성 안에서는 출입구 상부에 장대석을 걸쳐놓은 입구(口)자 모양이나 외부에서는
상부를 둥글게 만든 홍예의 형태를 하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읍성의 권위를 과시
하기 위함이다. 바닥 전체에는 마루를 깔고 기둥은 팔각형 장초석 위에 주간에
비하여 낮게 세움으로써 수평적 비례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사진 24 - 해미읍성 진남문
2) 통일된 성벽의 반복과 구조적 안정감이 주는 아름다움
- 성곽의 하단부는 큰 돌을,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은 돌을 포개어 쌓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축성법을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하나의 재료로 축조되어있어 전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주고 있다.
사진 25 - 해미읍성의 성곽
2 - 4 - 2 해미읍성의 추(醜)
1) 성벽의 경사면의 비대칭
- 해미읍성의 경우 성벽의 재료에서는 통일성을 이루었지만, 경사면에서 한쪽은 계단
식으로, 다른쪽은 일자형으로 표현을 하였다. 둘 중 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미읍성 북서쪽 모습
해미읍성 북동쪽 모습
사진 26 - 성벽의 비대칭
2)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해자
- 해자란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해미읍성의
해자같은 경우는 물을 채울 수가 없는 구조이다. 해미읍성의 북문 지형을 보면
산등성이를 따라 해자가 있는데 물을 채울 수 없고 흐를 수 없는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채 존재하고 있다.
해미읍성 해자
해미읍성 북동쪽 모습
사진 27 - 해미읍성의 해자
2 - 4 - 3 해미읍성의 호(好)
1) 해미읍성의 타원형 축성
- 한국의 성 대부분은 산에 쌓은 산성이거나 강을 끼고 건축되었다. 그러나 해미읍성은
평지에 타원형으로 지은 것이 특징이고, 한반도에서 이런 형태의 성은 드물다.
또한, 조선시대 축성된 읍성 중 전국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성으로 꼽힌다.
2 - 4 - 4 해미읍성의 악(惡)
1) 자연재해의 취약함
- 성벽이 돌과 흙으로 쌓은 구조인데 돌의 축조방식이 가공 없이 그대로 쌓아 수많은
크기의 틈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우기 시 그 틈으로 빗물과 토사가 흘러내리면서
성벽이 붕괴되었다. 실제로 서쪽에서 2회, 동쪽에서 1회 유실되었다.
2) 읍성의 외부침입에 대해서 방어적으로 상당히 취약하다.
- 남한산성이나 수원화성처럼 성벽위에 여장이 존재하지 않아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변 보호에 어려움이 많다. 또한 성벽의 돌 틈이 커서 성벽을 타고 올라올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제 3 장 결 과 도 출
우리나라 성(城)에 대해 형태, 기술, 위치, 구조의 4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 번째로 형태적인 모양이다. 자연지형 그대로를 이용하여 복잡한 모양이 주류를 이루고 대부분 언덕이나 산등성이에 축조되었다. 축성의 재료 또한 산돌을 이용하거나 흙을 쌓음으로써 성벽을 구성하였다. 대부분 지형을 이용한 축조이므로 옹성이나 망루 등의 시설을 따로 축조할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주로 돌을 많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성은 내족의 석성임을 알 수 있다. 큰 돌을 하부에 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돌을 쌓아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측성기술은 자연 할석의 평평한 한쪽면을 성벽의 바깥부분에 맞대어 쌓아 아름다움도 강조했다. 안쪽에는 흙과 잡석을 채우는 내탁의 축조 방법이다. 산성을 축조할 때는 자연적인 경사면을 더욱 경사지게 하여 성벽으로 이용하는 삭토법이 발전하였다. 자연을 이용한 축조물인 것이다.
세 번째로는 위치적으로 자연을 이용한 방어선을 만들고 뒤에는 험준한 산에 의지하였다. 산성은 높은 곳으로 선정하여 위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이러한 점은 자연의 지형지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방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쓰였다.
마지막으로 구조적 측면인데 산의 능선을 많이 활용하여 축조하였다. 수문과 성문은 계곡의 중앙이나 그 좌우에 설치하여 통행을 편리하게 하였다. 대부분의 성벽은 곡성을 이루고 있으며, 산성의 여장은 아래를 내려다봐야 하기 때문에 그리 높지 않다.
각 성(城)의 문루 등의 지붕은 권위를 상징하거나, 격식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형식을 이루기도 한다. 지붕의 앙곡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성벽도 주변의 산세와 어우러지게 쌓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벽은 각 성에서의 통일감을 이루지 못했다. 돌의 종류가 다양한데다가 성 전체의 벽이 같은 축성법으로 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일성이 떨어진다.
참고문헌(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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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제21권 제11호 (통권 제205호), 대한건축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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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3.19
  • 저작시기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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