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어근대사개요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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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어근대사개요번역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3장 근대한어어음연구
제1절 당오대어음의 연구
제2절 송대어음의 연구

본문내용

글자는 同模部音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 “子, 切. 古子有二, 者, 近水之. 者, 如今. 梓一皆此.”라고 되어 있다.
문장 마지막에는 “요약하여 말하면 : 朱熹가 이러한 글자에 대해 이라 주석한 것은 통음으로 方音을 고쳐 읽은 것으로 이라 주석하지 않은 것은 직접 通音과 압운했다.”
按 : 이러한 문장은 아주 많이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朱熹의 音 중에서 許世瑛과 王力이 주목한 止精의 글자가 音이라야만 i韻母와 압운할 수 있다는 예증 외에도 많은 수량의 예증이 止精 글자가 音이 아니더라도 i韻母와 압운된다. 이러한 예증은 단지 “漏注”를 이용하여도 확실하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의 작가가 스스로 제시한 해석은 여전히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注, 是用通音改方音, 不注是直接通音.”이라 말하는데 그러면 왜 <>, <楚>의 같은 운각을 朱熹가 어떤 것은 方音으로 어떤 것은 通音으로 읽은 것일까? 심지어 같은 “子”자를 왜 26차례는 方音으로 읽고 6차례는 通音으로 읽은 것일까? 만약 6차례가 단지 朱熹의 소홀함 때문에 등장한 것이라면 方音으로 읽지 않고 通音으로 읽은 것은 그러면 이런 해석은 “漏注”와 다른 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劉文이 제공한 자료에 근거하면 <> 중에서 支, 로 모은 11개의 글자는 모두 상용자로 남은 24개 글자는 支에는 모아지지만 로 모아지지 않는 글자는 “俟”, “”를 포함한다. 또 <楚集注> 중 音이라 주석한 두 글자에 오히려 “俟”, “”가 있다. “”는 僻者로 구어의 민어음일 가능성이 적고 朱熹는 <楚>의 다른 글자는 모두 通音으로 읽고 유독 “”만 語音으로 읽었을 가능성이 적다. “俟”자는 朱熹가 민어를 이용하여 u라고 읽었다면, 아래 두 수의 시의 音을 설명할 길이 없다.
<ㆍ王ㆍ> : “朝于西, 崇朝其雨. 女子有行, 兄弟父母(反).”
<ㆍ王ㆍ葛> : “葛, 在河之(音俟, 矣始二音). 兄弟, 他人母(彼反). 他人母, 亦莫我有(翼已反).”
<> 중 “母”는 “反”이라 한 것으로 보아 “母”의 韻母를 u로 고치고 “雨”와 압운한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葛> 중 만약에 音에 근거하여 “俟/”의 韻母를 u라고 읽는 다면 “雨”와 마찬가지로 “反”에 상응하여 “俟/”와 압운할 수 있다. 그러나 朱熹는 “彼反”이라 하여는데 여기에서 朱熹의 구어에서 “俟/”를 音을 사용하여 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글자인 “俟”는 <>에서는 音으로 읽히지 않는데, <楚>에서 音으로 읽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音”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라 볼 수 있다. 朱熹 音의 문제는 여전히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3) 성조
朱熹의 反切은 全濁上聲이 去聲으로 변한 것을 반영하는데 이것은 위에서 이미 말한 것이다. 그의 反切에 지금의 음平聲字와 지금의 양平聲字가 혼용되었는데 이것은 朱熹의 음에서 平聲이 음양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것을 설명한다.
3. 소결
3.2.3 앞에서 邵雍의 <音>와 朱熹 反切의 연구에 대해 소개하였다. 邵雍은 11세기의 사람이고 朱熹는 12세기의 사람이다. 그러면 邵雍의 음에서 朱熹의 음까지 한어를 대표하는 어음은 11세기~12세기의 백년간의 발전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것에 대한 해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邵雍의 <音>와 朱熹 反切을 비교하면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는데 아래와 같다.
같은 점 :
(1) 濁聲母가 淸化되었고 濁聲母 平聲은 次淸이 되었으며, 濁聲母 仄聲은 全淸이 되었다.
(2) 章와 庄가 합병되고 知와 章庄가 가까워지거나 합병되었다.
(3) 止精字의 韻母가 I에서 , ⅰ로 변하였다.
(4) 蟹音(祭)가 止으로 병합되었다.
(5) 江, 宕이 합병되었다.
다른 점 :
(1) 邵雍의 시기에는 歌戈麻가 분화되지 않았으나, 朱熹의 시기에는 歌戈와 麻가 분리되었다.
(2) 邵雍의 시기에는 效, 山, 臻, 咸의 4이 독자적으로 사용되고 梗, 曾의 2攝이 합병되었으나, 朱熹의 시기에는 梗, 曾은 합병되지 않고, 效, 梗, 山, 臻, 咸의 5攝이 합쳐져 2부로 나누어 졌다.
(3) 邵雍의 시기에는 入聲韻尾가 약화되거나 소실되었는데, 朱熹의 시대에는 -p, -t, -k의 入聲韻尾가 살아있다.
(4) 邵雍은 평, 거, 入聲이 陰, 陽으로 나누어지는 게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朱熹는 陰, 陽을 나누지 않았다.
이러한 공통점은 위로는 唐代의 어음변화를 잇고 아래로는 <중원음운>중의 상황과 일치한다.(때때로 <中原音韻>은 더욱 발전된 부분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중원음운>의 支思가 止章庄에 속하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宋代 어음의 보편적인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다른 점은 <中原音韻>과의 관계에서 볼 때 제(1)의 사항을 제외하고는(<中原音韻> 중 麻은 또 家麻부, 遮부로 나누어 졌다.) 北宋에서 南宋, 元代까지 “之”자형으로 간 것 같다. 예를 들어 邵雍은 入聲韻尾가 약화되거나 심지어 사라졌다고 하였는데 朱熹가 -p, -t, -k 韻尾를 남겨 두었고, <中音>에서는 入聲韻尾가 또 사라졌다. 중국어의 入聲韻尾의 소실이 이처럼 반복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우리는 邵雍의 <音>와 北宋 洛문인의 用은 北宋 洛方言 중 入聲韻尾가 약화된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南宋의 南方方言 중에는 -p, -t, -k 韻尾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元代에 이르면 北方語에서 入聲韻尾가 소실되었으나 일부 南方方言 중에 -p, -t, -k 韻尾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우리가 고찰한 중국어의 역사 변화 시에 지역적인 원인이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라 할 수 있다. 朱熹 反切 중의 어음 현상은 12세기 때 한어가 보편적으로 가졌던 특징(濁音의 淸化)이고, 또 당시 南方方言이 가졌던 특징(-p, -t, -k韻尾 및 부분적으로 -ŋ韻尾와 -n韻尾의 혼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분석의 진행이 더욱 필요하다. 만약 더 분석 없이 邵雍의 <音>-朱熹의 反切-<中音>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것은 한어의 11세기~14세기 발전 역사 과정에서 볼 때 타당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가격3,000
  • 페이지수32페이지
  • 등록일2011.04.16
  • 저작시기2010.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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