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근대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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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식민지근대화론의 등장

Ⅲ. 식민지근대화론의 내용

Ⅳ.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Ⅴ.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나의 견해

본문내용

수 있다.
이어서 신용하 교수는 [자료25]를 통해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식민지 근대화가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는 1936년부터 1945년에도 공산물의 생산액이 농산물 생산액을 능가하지 못하는 농업사회단계에 머물렀었다고 주장한다. [자료25]를 보면 가장 공업이 발달한 1939년에도 공산물의 생산액이 근소하지만 농산물의 생산액보다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신용하 교수는 이를 통해서 일제 강점기에 ‘공업화’와 ‘산업혁명’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허구라고 주장한다.
『비판적 성찰』p.91
그리고 그는 다음으로 민족별 공업의 구성을 살펴보았다. 그는 식민지 시기의 한반도 내의 공장 중에서 조선인 소유의 공장, 공업 자본이 진정한 조선인의 공업이라고 볼 수 있고, 일
본인의 공장, 공업 자본은 일제의 자본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족 해방, 광복 후 일제의 자본을 조선인이 접수해야만 우리의 공장, 자본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아래의 표를 제시했다.
『비판적 성찰』p.95
그리고 그는 1938년도에 조사한 민족별 공업부문 회사수를 살펴보면 조선인 기업의 수가 전체 기업의 47.9%를 차지하는 것을 봐서 조선인의 기업열을 볼 수 있었으나, 납입자본을 살펴보았을 때 조선인 기업의 납입자본이 전체 기업의 납입자본의 12.4%에 불과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것은 조선인의 공업회사가 영세규모였음을 나타낸다고 그는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신용하 교수는 일제의 식민지 공업정책과 한국공업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첫 째로 그는 식민지 시기의 공업에서 일제는 군수 공업의 기술도 일본인 기술자에게만 독점하도록 하고, 조선인들은 극히 저급한 기술이나 저급 기능만 하도록 경계하고 억압했고, 이 때문에 조선인 기술자들이 형성되지 않아서 조선의 공업발전을 위한 기술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둘 째로 그는 일제가 조선을 ‘공업화’, ‘근대화’ 시키고 혜택을 베풀었다고 주장하는 1930년부터 1940년대에 오히려 조신인의 삶이 궁핍해져 갔다는 것을 아래의 표를 통해 주장했다.
『비판적 성찰』p.117
이를 종합해서 신용하 교수는 1930부터 1940년대의 일제의 조선 내 군수공업발달은 조선 노동자와 조선의 자원을 수탈·약탈한 ‘대륙침략 군수공업’의 설치에 불과했고, 그것은 조선인 경제의 개발 근대화가 아니라 조선인과 조선 사회경제에 대한 수탈과 착취의 증가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글의 끝을 맺는다.
Ⅴ.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나의 견해
이 레포트에서 소개한 주장은 네 개이지만 레포트를 쓰는 과정에서 읽은 학문이나 자료들은 그 수가 열 개를 넘는다. 이렇게 여러 주장들을 보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무엇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결국 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은 과연 현재 대한민구기 이룬 이 눈부신 경제발전의 토대를 찾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일제가 우리를 식민 통치하면서 억압하고 수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연구하고, 그 연구결과를 학생들에게 교육해서 학생들이 그 사실을 놓고 일제 식민통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할 의무가 학계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낙성대경제연구소의 근현대사 교과서 연구가 이를 말해주는 현상일 것이다.
이에 반해서 이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이룬 발전은 그들의 몫으로 돌아갔으며 그 발전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현재의 경제발전의 영광을 돌리기에는 너무 미약하거나 없기 때문에 식민지기에 잠시 이룬 경제발전을 나타내는 통계자료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의 토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침소봉대’와 같은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는 식민지기의 긍정적인 영향을 연구해서 학생들에게 교육하려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행동이 마치 일제의 식민통치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둘 중의 하나의 손을 들라고 한다면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쪽의 손을 들고 싶다. 추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통계자료들만 놓고 보더라도 식민지기의 경제발전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 로 한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 뒤의 시기와는 단절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한정된 시기에 철저한 계획경제를 통해서 이룩한 경제성장인데다가 그 과정에서 조선인은 배제되었고 그 이익의 분배과정에서도 대다수의 조선인은 철저히 배재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이렇게 비유하고 싶다. 고등학교 1학년의 한 교실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A라는 학생이 힘이 약한 같은 반 친구인 B라는 학생을 매일 구타했다. 이렇게 A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그 전부터 A를 안 좋게 보던 옆 반의 C가 A를 힘으로 제압해서 다시는 힘자랑을 못하게 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서 힘이 약했던 B가 성인이 되어서 세계 권투챔피언이 된다. 이 소식을 들은 A는 B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학창시절에 많이 때려줘서 맷집이 좋아졌기 때문에 챔피언이 된 것이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앞의 예에서도 분명 A가 B가 세계권투챔피언이 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B에게 A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 째는 그 영향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둘 째는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 이 노력한 B의 노력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아무리 영향을 끼쳤다고해서 자신을 괴롭혔던 A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이 주장한대로 이런 식민지근대화론의 논의 덕분에 한국의 식민지기의 연구가 과거의 ‘수탈’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힌 이념적인 연구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근거로 찬.반 논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에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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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2.22
  • 저작시기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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