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와 공산주의적 계몽사상가들 그리고 바뵈푸와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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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루소와 공산주의적 계몽사상가들 그리고 바뵈푸와 사회주의

1. 들어가며
2. 게몽사상가 루소
3. 바뵈푸와 사회주의

본문내용

우에도 지도자가 다수의 지지를 얻을수 있을지 모른다. 유덕한 지도자라면 그들이 다수의 공식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경우에도 그들의 권력유지는 정당화된다. 사실 심지어 그들이 일반의지라는 명목하에 인민들 자신의 이익을 위할 경우에는, 인민에 해로운 공포정치에 호소하는것까지도 정당화된다. 마찬가지 방식이지만,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혁명적 폭력도 일종의 자위수단으로 변호될 수있다. 말하자면 혁명가들은, 정상적인 상황하에서는 침략이란 한 사람이나 한 국가의 한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되지만 혁명가들은 만약 사회체제도 공격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공격적이라는 것, 또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공격’하게 되면(즉 그것의 노동력을 착취하면), 공격받는 계급은 “공격적인” 사회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 방어의 권리와 사회적 혁명권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사려깊은 혁명가는 혁명의 발발시기가 주의깊게 선택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잘못 시작된 혁명은 억압과 무의미한 유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정도의 유혈사태에 대한 예상이 예리한 혁명가의 결심을 감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체제가 이미 폭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착취와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매일매일 죽어간다. 과로로 지친 경찰관의 총알이 아니더라도 영양실조, 의료혜택의 부족, 기타 억압적인 계급제도와 관련된 많은 요인들에 의해 매일매일 죽어간다. 환언하면 폭력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으므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혁명가는 ‘폭력의 경제성’(economy of violence)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그는 폭력제거라고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또한 절제하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기간의 효률적인 피의 숙청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미래의 무수한 세대들이 그 혁명으로 일상적 폭력으로부터 해방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문제는 나아가게 된다. 특히 혁명가가 성공의 크나큰 장애를 충분히 고려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심지어 보수적인 정치 사상가들까지도 독재자가 제거되면 총체적폭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것을 혁명반대자가 확신할 수만 있다면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폭력사용권을 인정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상술한 바는 바뵈푸자신의 사상을 실제적 형태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이는 단지 그러한 결론을 희미하게만 제시할 따름이다-단지 집요하고 왕성한 혁명적 공산주의자의 기질을 가졌던 한 사람에 대한 서론으로서 제시한 것이다. 물론 바뵈푸는 집정정부, 곧 그에게는 극히 사악해 보였던 정부였고, 그리고 寄生的이고 부패한 소수인들은 사치에 빠져있는데 반해 다수 프랑스인을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리게 한 그런정부와 함께 등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의 반항은 자신의 인간실존의 심층으로부터 나온것이며 이후의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의 반항 역시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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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27
  • 저작시기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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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3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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