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속의 전쟁화를 그린 유명 화가(피카소,샤갈,우첼로 등)의 업적과 특징, 그림의 의미, 가치있게 평가받는 이유 조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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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 10. 25 ~ 1973. 4. 8)

2.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 7. 7 ~ 1985. 3. 28)

3. 프란시스코 고야 (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 3. 30 - 1828. 4. 6)

4.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5. 페르디낭 들라크루아(Ferdinand Delacroix, 1798. 4. 26 ~ 1863. 8. 13)

6. 파올로 우첼로 (Paolo Uccello, 1397~1475.12.10)

7.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 6 - 1660. 8. 6)

본문내용

추었다고 할 수 있다. 재난에 처한 인간 군상을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한 것도 제리코의 영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비평가들은 그림에서 드러나는 객관적 시선을 불편하게 여겼다. 주제 의식과 그림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비평가 앙토넹 장 그로는 이 그림을 “예술의 학살”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비난을 사긴 했지만,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프랑스인의 정서에서 본다면 ‘공화국의 죽음’과 겹치는 상징이기도 했다. 또한 들라크루아는 영국의 화가 존 컨스터블의 영향을 받아서 독창적인 빛과 색채의 효과를 화폭에 담아냈다. 강한 붓놀림으로 색을 겹쳐 칠함으로써, 역동적인 빛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느낀점
한 여성이 마른체구로 어떤 한 곳을 쳐다보고 있는데, 전쟁에 지쳤거나 아니면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 같다.
벌거벗은 몸으로 기다리는 모습의 그림이니, 전쟁이 끝난 직후의 모습이 아닐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전쟁이 일어날까봐 두려운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6.파올로 우첼로 (Paolo Uccello, 1397~1475.12.10)
이탈리아의 화가. 원근법의 연구에 몰두한 우첼로는 마사초의 후계자, 또는 원근법의 발명자라고 불리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시적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화려한 색반(色斑)과 풍부한 금을 사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높이는 고딕의 전통에 살아 온 작가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유명한 <산 로마노의 전투>(1458년, 우피치 루브르·런던 국립 화랑)는 1432년 산 로마노에 있었던 시에나군(軍)을 격파한 니코로 다 트렌티노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한 것이다. 기마전은 일대 야외극(野外劇)으로서 장식풍으로 그려져 있고, 여기저기에 그가 자랑으로 여기는 단축법(短縮法, 지상에 가로누운 병사와 말)과 원근법(遠近法, 떨어진 창의 방향에 주의)을 구사하고 있는데, 서 있는 말은 마치 회전목마처럼 정지하고 있다.
*<산 로마노의 전투>
이 그림은 1432년 용병대장 니콜로 다 토벤티노가 지휘한, 시에나인들과의 전쟁에서 피렌체인들이 승리를 거둔 전투를 그린 것이다. 파올로 우첼로는 이 전투에 관한 네 편의 연작을 그렸는데, 그 중 하나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림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으나 네 번째 그림은 사라졌다. 이 작품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방을 장식하였던 것이다. 기사들은 반짝이는 은화로 뒤덮인 무거운 값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말들은 건강하고 강해 보인다. 왼편의 기사들은 이미 공격할 준비를 갖춘 채 적을 향해서 창을 겨누고 있다. 오른편의 기사들은 아직 창을 수직으로 들고 있다. 이러한 수평선과 수직선은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그림의 구성을 기하학적으로 이끈다. 또한 이 두 선은 원근법과 입체감을 준다. 가운데 성난 검은 말 위에 올라탄 피렌체의 대장이 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하고 있다. 뒤에는 피렌체의 군기가 보이고 이미 한 사람이 돌격의 나팔을 불고 있다. 등을 보이고 있는 두 기사는 축소판으로 그려져 있다
-느낀점
말들과 뒤에 막대들로 인해 무언가가 꽉 막힌 듯한 느낌들이 많이 준다.
그리고 색감들로 인해 우중중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주면서, 전쟁의 이미지도 많이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우첼로가, 그림의 색과 그림의 무게감으로 전쟁의 무서움, 전쟁의 힘든 무게감을 표현한 것 같다.
7.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azquez, 1599. 6 - 1660. 8. 6)
스페인의 화가. 대개 디에고 벨라스케스로 불린다. 그는 펠리페 5세(스페인어: Felipe IV) 궁정을 주도하던 스페인 출신의 화가이다. 당대의 바로크 시대 화가였으며 초상화에 유능한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1629년에서 1631년의 1년 반동안 미술 공부와 여행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1649년 그는 다시 이태리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스페인 왕족 중 다수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유명한 유럽 의원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을 그렸다. 그 작품의 절정은 그의 걸작 중의 걸작인 시녀들(스페인어: Las Meninas)(1656)이다.
19세기의 초반 동안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다른 모든 인상주의 화가들과 사실주의 화가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마네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다.
*<브레다의 항복 (La reddition de Breda)>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생애의 대부분을 에스파냐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로 보냈다. 그런 이유로 그가 제작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초상화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그린 역사화가 바로 이 작품 <브레다의 항복>이다.
비록 벨라스케스의 유일한 역사화이기는 하지만, 에스파냐 바로크 시대의 역사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그가 그린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기도 하다.
에스파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도 이 작품과 거의 차이가 없는 동일 제목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작품에 쏟아진 찬사와 더불어 높은 명성에 부합하기 위하여 벨라스케스가 또 다른 버전의 작품을 제작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펠리페 4세 치하의 에스파냐가 30년 전쟁을 치루던 중, 1625년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던 네덜란드의 브레다 지방을 함락한 사건을 묘사했다. 항복한 네덜란드의 장군 나사우는 당시 에스파냐 군대를 이끌던 암브로지오 스피놀라에게 브레다의 열쇠를 건네주고 있다. 화면의 좌우로 승자와 패자가 나누어져 배치되어 있다. 벨라스케스는 승자인 에스파냐 군대를 표현하기 위해 우측 뒤편에 수직으로 질서정연하게 세워져 있는 창들을 그려 넣었고, 패자인 네덜란드 군대의 모습은 전열이 흩어져 있는 상태로 표현했다.
-느낀점
이 그림은 중심된 사람의 모습과 표정이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그림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서 서 있고, 총도, 갈도 겨누고 있지 않을 것을 보면 아마, 서로 승자 패자 없이 이해와 사과를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배경은 간단히 묘사함으로써 인물들에게 초점을 많이 둔것 같아 보인다.

키워드

명화,   전쟁화,   영화,   유명 화가,   피카소,   샤갈,   우첼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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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12.05.25
  • 저작시기201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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