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점 (긍정적인관점)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점 (긍정적인관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귀국과 건국을 위한 외교적 포석
2.중국유엔과 접촉
3.미국의 대한정책 변화 유도
4.유엔조선위원단의 지지확보

본문내용

주의의 도전에 대한 강경한 대응노선을 밝힌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된 후 트루먼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낸 것으로 그의 방미외교의 주요활동을 마무리했다. 이 박사가 트루먼에 보낸 서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하는 전 세계의 자유애호 인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어왔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이러한 용기 있는 자세를 취함에 있어서 주한미군정 당국에 각하의 정책을 따를 것과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초래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줄 것을 지시해주기 바랍니다.…한국의 애국자들은 각하의 감동적 메시지로 인해 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미군점령 지역에 과도적 독립정부를 즉각 수립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진격을 저지하는 보루를 구축할 것이며 남북한의 통일을 초래할 것입니다.”15)
4. 유엔조선위원단의 지지 확보
유엔총회는 1947년 11월 14일 한국문제에 대한 결의를 채택하면서 남북한 총선을 감시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구성을 결의하고, 그 위원단의 구성국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엘살바도르, 프랑스, 인도, 필리핀,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9개국을 선정했다. 그 중 우크라이나는 한국문제 유엔결의에 대한 소련의 보이콧 방침에 따라 유엔한국위원단 불참을 선언했다. 그 결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나머지 8개국으로 구성되었다.
소련의 보이콧으로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는 북한지역에서의 선거실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한지역에서만 선거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유엔위원단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유엔위원단의 보고 여하에 따라 남한지역에서의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실시될 수도 있고 연기될 수도 있었다. 요컨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대한민국의 건국이 제때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유엔위원단의 결정 여하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위원단 구성국의 성향을 보면 중립국인 인도와 시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대체로 친미성향의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는 당시 좌경적 정부가 집권하고 있어서 그 나라 출신 유엔 대표들이 미국의 노선에 쉽게 호응하지 않았다. 남한지역에서의 선거실시에 대해 확고한 지지 입장을 취해줄 위원들은 중국 프랑스 필리핀 3개국의 대표뿐이었다.
이 박사는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유엔위원단의 강한 영향력과 그 구성원들의 경향을 파악하고, 유엔위원단으로 하여금 남한지역 총선실시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하기 위해 위원단에 참여하고 있는 각 위원들을 상대로 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유엔위원단을 상대로 한 외교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대상은 인도 대표 메논(K. P. S. Menon)이었다. 인도는 당시 중립국이면서도 다소 친소적인 외교노선을 취하고 있는 국가인데다가 인도 대표 메논은 위원단의 의장이기도 했다. 메논의 향배에 따라 위원단의 입장이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박사는 메논을 ‘포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한 노력에는 영문학 전공의 여류시인 모윤숙도 동원되었다. 문학에 관한 담론이 매개가 되어 모윤숙과 메논은 돈독한 우정을 쌓게 되었으며, 그러한 우정은 메논으로 하여금 남한 총선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었다.16)
결국 유엔위원단의 활동은 남한 총선 실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며, 메논은 남북협상을 주장하며 남한 총선을 거부한 김구에게 남한 총선 참여를 설득할 정도로 대한민국 건국에 협조적으로 되었다.17)
1948년 2월 26일 유엔소총회는 한국에서 선거실시가 가능한 지역(즉 남한)에서 총선을 실시할 것을 결의하면서 유엔한국위원단에 그 선거가 자유롭게 공명하게 이루어지는 지 여부를 감시하는 의무를 부과했다. 메논을 비롯한 유엔위원단은 미군정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총선 실시를 신속하게 추진했고, 48년 5월 10일 투표가 실시되고 그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선거의 모든 과정을 면밀히 감시했다. 위원단 가운데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리아 등의 대표들은 510선거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감시활동을 전개했다.
510선거는 선거를 방해하려는 좌익과 남북협상파의 치열한 선전공세, 좌익세력의 폭동 파업 방화 시설파괴 등 폭력적 투쟁 속에서 실시되었다. 무장폭동으로 인해 선거가 실시될 수 없었던 제주도의 2개 선거구를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에서 투표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유권자들은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반대파들의 치열한 저지투쟁을 극복하고 이처럼 투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데 감동된 유엔위원단은 510선거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평가를 발표했다. 위원단 의장대리 무길(Yushin Mughir) 시리아대표는 5월 11일 “5월 10일의 선거는 성공이었다. 나는 남한의 단독선거에 반대하였으나 이번 선거는 극히 양호한 선거이다.”라고 논평했다. 메논과 교체된 신임 인도 대표 싱(Bahadur Singh)은 “(이번 선거는) 세계 어느 나라의 선거에도 떨어지지 않는 선거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유분위기가 완전히 보장된 것을 확인하는 바이다.”라고 논평했다.18)
이러한 위원들의 개별적 논평과는 별도로 유엔위원단은 510선거감시 최종보고서를 유엔총회에 제출했다. 그 보고서의 최종결론은 다음과 같다.
“위원단은 (510선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얻었다. (A)선거준비기간과 선서실시 당일에 있어서 남조선에는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등의 민주주의적 제권리가 인정 및 존중된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가 존재하였었다. (B)재조선미주둔군 및 남조선과도정부는 선거수속에 관한 위원단의 건의에 응하였으며, 선거실시는 일반적으로 선거법 및 선거규정에 부합되었다. (C)선거는 조선독립재건에의 일단계로 간주되고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선거인들 앞에 제시된 유일한, 본질적인 문제였으며 등록과 투표의 양면에 있어서 우수한 성적을 얻게 된 원인이었다. (D)선거감시반의 보고서도 고려하고 또 조선국민의 전통적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1948년 5월 10일 선거투표의 결과는 조선의 (선거가) 가능한 부분이며 조선인구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에 있어서의 선거인의 유효한 자유의사의 표현이며 그들의 자유의사를 정확히 표시한 것이다.”19)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509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