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 요약(이스라엘의 태동~바벨론 포로귀환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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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약사 요약(이스라엘의 태동~바벨론 포로귀환시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이스라엘의 태동
II.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
1. 북 이스라엘의 멸망
2. 남 유다의 멸망
III 바벨론 포로기와 귀환시기.
1. 바벨론 포로기
2. 바벨론 포로 귀환시기

본문내용

분명하다(렘42:15-17). 그 같은 일로 인하여 유대에는 극히 적은 소수만 남아 거의 버려진 땅이 된다. 이 외에 애굽으로 간 유대인들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애굽의 신들을 찾았다. 그 결과 애굽도 느부갓네살의 손에 의해 여호와의 진노(震怒)를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 이후 애굽의 유대 공동체는 일시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애굽의 모든 유대인들이 멸망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단 한 곳(상부 애굽의 엘레판틴)은 살아남았고 포로 후기에 유대 정치적 삶과 예루살렘 성전에 필적한 신전을 건축하여 제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보다 뒤인 4세기경에 알렉산더는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새로 세운 알렉산드리아에 이주시켰다. 수 세대 이내에 그 곳 공동체는 전 세계에서 유대인의 생활과 사고를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 시키는 중심지가 되었다. 애굽으로 이주한 이들은 하나님께서 염려하신 바대로 자신들의 완악함을 따라 하늘 여신에게 분향(焚香)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렸다(렘44:15-19).
그다랴가 암살된 후 유다는 주체성(主體性)을 상실하였다. 벧술(Bethzur)의 북쪽 영토는 사마리아 주에 속하게 되었고 남쪽 고원지대(훗날 이두매, Idumea 지역)는 아랍의 압력에 밀려 본토에서 떠난 에돔 족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바벨론으로의 이주자들은 유다의 정치적, 종교적, 정신적 지도자 계층들로서 그들은 점차 바벨론의 생활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이주자들은 니푸르(Nippur) 주변에 정착하여 집단생활을 하면서 제한적이나마 자유를 향유(享有)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소작인으로서 농사를 지었으며 재산을 모으고 서로 회합할 수 있었으며, 유다에 남아있던 자들과 서신을 교환할 수도 있었다.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어떤 명백성을 띤다거나 일관적이지는 않지만 또 다른 민족주의적 분파주의 경향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난다.
1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바벨론의 유배 자들은 비록 소수였지만 이스라엘의 신앙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유다인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재건하기 위한 추진력을 비축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미래를 준비하던 자들이었다.
바벨론 제국의 국제적인 역량은 앗수르 제국에 비해 견줄 바가 되지 못하였다. 또한, 제국의 수명도 건국으로부터 멸망(나보폴라살 625-나보니더스 539)에 이르기까지 여섯 명의 왕이 즉위하였지만 86년 밖에 지속되지 못하였다.
성경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지만 벨사살(Belshazzal, B.C.553-539)왕의 아비 나보니더스(Nabonidus, B.C.556-539)는 아들과 공동 섭정을 하면서 자신의 종교에 치우친 나머지 국정을 소홀히 하였다. 그는 월신 ‘난나’(Nanna)의 숭배자로 난나를 중심으로 종교제국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나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Marduk)을 섬기는 종교 세력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바사의 고레스(Cyrus, B.C. 539-530)왕은 이 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마르둑 신의 파송자로 자처하며 종교지지 세력과 백성의 지지를 받아 무혈전투로서 바벨론에 입성하였다.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은 70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이야기가 성경의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으나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이 세 선지자에 의해 기록되었고 포로시대는 B.C539년 바벨론이 메데와 바사에 의해 멸망당한 후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멸망은 단지 역사의 한 시기에 세워졌던 나라가 멸망한 것이지 결코 그 민족 자체가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이라는 결정적 심판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각성시키고자 포로생활 동안 연단 받게 하시고 그 죄를 회개하며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회복의 역사였습니다.
포로시대는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일대 획을 긋는 사건이면서 아울러 성경의 역사서 및 거의 모든 선지서와 직간접으로 연관 있는 바벨론 포로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통하여 유다지파 자손을 명하여 메시아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신 것이 다윗 언약 속에서 더욱 구체화 되었고, 또 포로귀환으로 인하여 언약이 실현되게 되었습니다.
2. 바벨론 포로 귀환시기
B.C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성전이 훼파된 이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70년간의 비참한 포로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의 귀환 허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3차에 걸쳐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재건과 예루살렘 성벽재건 및 신앙부흥 운동 등으로 선민 국가의 회복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 백성 들의 포로귀환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바의 성취라는 사실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총으로 선민 역사가 재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사44:28-45:4, 렘29:10-14).
에스라는 포로귀환 허가칙령과 귀환을 희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꾸며 포로시대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모세율법을 연구했고 순종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성전건축 방해로 성전재건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공사를 재개하여 B.C516년 드디어 성전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포로귀환시대’란 곧 세계사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시대(B.C539 -331)와 일치하는 기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가리킵니다. 이 시기의 정치적 상황은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서의 배경이며 구속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의 포로 귀환이 페르시아의 관대한 식민정책으로 인해 이루어짐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바 70년 만에 포로 귀환케 하시겠다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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