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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아는 바벨론의 포로들에게 그들의 멍에를 메고 그들에게 순종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살 수가 있기 때문이였다. 거짓 예언자들은 예레미아를 미워했고, 바벨론과 공모하는 자로 못미더워 했다. 시드기아가 집권한 9년 되던 해 시드기아는 바벨론왕에게 봉신관계의 끝을 선언했다. 그 결과로 바벨론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이 공격은 3년간 지속되었고, 결국 예루살렘성은 함락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느브갓네살왕에게 끌려갔다. 지도급층에 있던 상부층은 가혹하게 징벌되었고, 예루살렘 시민의 대부분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다. 이것이 바벨론의 2차 포로였다. 그러나 시골에는 노동에 종사하는 농부들이 남아 있었으며, 따라서 사골에는 토착민들의 넓은 층이 남아 잔존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다에게 독립 국가의 최후를 뜻하며 정치적 독립의 임시적인 종지부였다. 그 역사는 이제까지 가나안 땅을 점유한 이래로 발전되어 왔었다.
유다의 전체적인 파멸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써 어렵지 않게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의 판단을 위해서는 끝없이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야웨 신앙의 전통”이다.
유다의 전체적인 파멸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써 어렵지 않게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의 판단을 위해서는 끝없이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야웨 신앙의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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