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카르트 조선미술사와 전통건축 특징과 계승 한중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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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카르트 조선미술사와 전통건축 특징과 계승 한중일 비교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에카르트 조선미술사
2. 한국미술의 특징
3. 전통건축 특징과 계승 한중일 비교
韓國傳統建築의 特徵과 現代的 繼承
1. 한국전통건축에 대한 논의의 출발
2. 한민족의 미의식(美意識)
3. 한국건축문화 형성의 요인
1) 자연적 요인
2) 인문적 요인
4. 한국건축의 전통과 계승
1) 전통의 개념
2) 한국전통건축의 특성

본문내용

간이 분화되고 개방적이다.
우리의 전통건축은 공간이 채와 채로서 분리되고 채 안에서는 다시 여러 개의 간으로 분화되는 특성을 갖는다. 주거건축에 있어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등으로 나누어지고 이들이 다시 모여 하나의 커다란 주거를 이룬다. 궁궐, 향교, 서원 등에서도 공간이 분화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기후는 사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추워 대청과 온둘방이 공존하고 있다. 온돌방은 폐쇄성이 강한 성격을 지니나 대청마루는 기둥과 기둥사이가 벽체보다는 창호들로 구성되어 개방성을 지닌다. 때문에 개방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중국의 사합원이나 일본의 주거보다 훨씬 개방성이 강함을 알 수 있다.
-. 호화로운 색채를 사용하였다.
선암사 대웅전의 내부단청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으로 하얀색을 즐겨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건축에 있어서 색채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룬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분벽화에서 벽면에 그려진 사실적이며 호화로운 벽화와 현존하는 목조건물의 단청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장식문양은 기하형문양을 비롯하여 식물문양, 동물문양, 문자문양 등이 사용되었고 색채는 다섯가지 색을 五方과 四季, 5행인 木火土金水 등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중국건축이나 일본건축에서는 우리처럼 다양하고 호화로운 색채가 나타나지 않는다. 중국은 녹색이나 적색, 황색으로 원색적인 강열함을 나타내고 있고, 일본은 단색채를 사용하나 보편적으로 색채를 사용하지 않아 오히려 목재의 질감을 즐기는 감이 든다.
수덕사 대웅전의 소꼬리모양 보
이상에서 같이 한국의 전통건축이 지니는 아름다움에 대한 천착이나 앎, 내재적 의미탐구는 쉽게 정의되거나 결론지어질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시대상황에 따라 가치가 전도되거나 폄훼되어 지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우리가 생활하여 왔고, 현대적 일상속에서 동경과 그리움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건축인 수덕사대웅전에 대하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상한 설명한 최완수의 글을 들어 우리건축의 특성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대표작 하나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국보49호 수덕사 대웅전을 든다. 건립 연대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백제계 고려양식으로 목조 건축물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온갖 미감을 세련된 의장으로 함축하여 단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교의 기교가 극치에 이르러 도저히 사람의 솜씨로 만들어 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자연조화로 이루어진 무정물인가 하고 보면 시원한 바람이 일고 명랑한 기운이 샘솟는다. 전각 안에 들어서면 마치 빽빽이 우거진 대숲이나 솔숲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머리 위에서는 ‘쏴아쏴아’하며 솔바람 소리 대바람 소리가 끊임없이 지나건만 앉은 자리는 한없이 고요하고 안온한 탓이리라. 겉에서 보면 학두루미 한 마리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이런 천연의 미감이 어디로부터 연유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시각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자연법칙을 터득하여 이 원리를 목조결구에 응용한 결과라 하겠다. 동양의 목조건물은 기본적으로 4면에 기둥을 세우고 앞뒤로 보를 얹고 좌우로 도리를 질러 층층이 높여가며 서까래를 걸어내려 지붕을 만들어 가는 기법으로 지어진다. 그러다보니 보나 도리를 받치면서 그 무게를 기둥으로 전달해주는 나무 조각 받침이 필요했다. 이를 공포라 하는데 공포가 기둥머리 위에만 있는 집을 주심포집이라 하고 기둥사이에 많이 설치한 집을 다포집이라 한다.
수덕사 대웅전은 정면보다 측면이 더 아름답다. 앞뒤의 보통 기둥 두 개와 그 안의 높은 기둥 둘이 서서 벽면을 이루었는데 높은 기둥 사이가 보통 기둥과의 사이보다 두 배가 넓다. 그래서 배흘림 형태의 높은 기둥 사이 정중앙에 네모기둥을 높은 기둥 높이로 첨가해주니 벽면은 4등분으로 분할되고 종보와 들보, 퇴보 및 각목 형태의 3중 층방(層枋; 기둥과 기둥 사이에 층층이 가로질러 넣어 기둥들을 서로 연결 고정시켜 주는 부재)이 상벽을 11구간으로 나눠놓는다.
그 결과 목재와 벽면이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지는 조화는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본래 하나하나의 벽면에 독립적인 채색화가 그려져 있었다하니 상상만 해도 그 화려함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처음 지을 당시의 찬란한 벽화들은 해체 복원 시에 분리 보관했으나 광복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관리 소홀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모사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대 있다 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측면에 지붕을 덮지 않는 맞배집 형식이므로 측벽에 비바람이 들이치지 못하도록 도리를 길게 빼고 앞뒤로 서까래 여섯 개씩을 밖으로 노출시켜 측면 처마를 삼았다. 원목의 겉만 다듬은 둥근 도리가 앞뒤로 다섯 개씩 뻗쳐 나와 그보다 가는 서까래 여섯 개씩을 받치고 있는 모습도 장관이다.
보통 조선시대 맞배집은 지붕 길이를 짧게 하고 방풍판이라는 바람막이 판자를 드리운다. 실용적일지는 몰라도 시각적으로는 매우 답답하고 무미건조해 보인다. 하물며 거기서 예술성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수덕사 대웅전에서는 수직으로 뚝 잘라놓은 지붕 아래 수직 벽면에다 현란한 예술성을 있는 대로 발현해 놓았다.
문을 밀고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면 용마루 아래 종도리에서 2등변 삼각형을 이루며 앞뒤로 질서정연하게 걸려 내려오는 서까래 더미에 압도된다. 꼭 왕대밭이나 왕솔밭에 무심코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받았던 감흥 같은 것을 짜릿하게 맛볼 수 있다. 이런 청신한 느낌은 서까래에서 연유하는 것이겠지만 이를 받치고 있는 도리나 보가 이를 배가시켜 주는 듯하다.
이렇게 훌미끈한 서까래들을 받쳐주려면 대들보를 비롯한 보와 도리들이 우람하고 튼튼한 통나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의 양옆을 살짝 다듬어 배를 죽이고 아랫부분에 각목을 덧대어 장식을 더하니 거창한 통나무들이 서까래와 어우러지는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축소되어 보인다. 착시현상을 유발시켜 미감을 극대화시킨 세련된 의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완수의 글, Asiana Culture, 200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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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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