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교신 평전 _ 전인수 저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서평] 김교신 평전 _ 전인수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머리 글
하나. 김교신의 생애
둘. 김교신의 논쟁
둘) 김교신과 최태용
셋) 김교신과 장도원
셋. 조선산 기독교
꼬리 글

본문내용

접수라고 하는데, 우찌무라의 접목이론에 따르면, 2J에서 일본은 대목이 되고 예수는 접수가 된다. 즉 피조물은 대목이 되고 창조주인 예수는 접수가 된다. 따라서 일본이 자랑하는 무사도, 일본의 영성(靈性) 등 역사적인 우수한 전통 문화는 모두 대목이 되는 것이다.
으로 설명하면서, “타국의 종교로 구원받은 나라는 없다. 일본적 기독교만이 일본과 일본인을 구원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반면에, 이 접목이론으로 볼 때, 김교신은 우찌무라를 유일의 선생이라고 존중하지만 신앙의 바탕에 있어서는 차별성이 보인다. 당시 일본과 조선의 입장이 정반대인 것처럼 우찌무라는 “일본(무사도) 위에 그리스도”인 데 반해, 김교신은 “성서(그리스도) 위에 조선”을 주장했다. 즉 성서(그리스도) 위에 조선을 접목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교신은 ‘조선 위의 성서’라는 의미인 ‘조선적 기독교’를 거부하고, ‘성서 위의 조선’인 ‘기독교적 조선’의 의미로서 ‘조선산기독교’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다음 글은 김교신 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글은 아니지만 ‘조선산기독교’를 더 잘 이해시켜줄 수 있는 인용문이다.
기독교가 일본적이나 미국적으로 분리될 수 없을 줄 압니다. 기독교적 일본이나 기독교적 미국이 있을지언정 그와 반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미국을 기독교적으로 개조할 수 있으나 기독교를 미국적으로 할 수 없는 것 같이 일본도 마찬가지인 줄 압니다. 만약 기독교를 일본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닐 것입니다.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도리를 일본 국체에 맞도록 되어 지게 하려고 하지 말고 일본이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의 법대로 개조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손동희 엮음,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 253. 김은섭이 “김교신의 역사인식”에서 ‘조선산 기독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손양원 목사가 청주 구금소에서 사상 전향을 유도하는 대화숙 사람들과 나눈 대화와 주광호의 접목이론을 이용하여 우찌무라와 김교신을 비교한 논문을 재인용.
위 글은 손동희가 엮은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에 나오는 손양원가 옥중에서 증언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런 손양원 목사에 증언에 대해서 일본 직원은 “일본은 종교 창조국이며 완성국으로서 석가가 비록 인도에서 났으나 인도에서의 불완전했던 불교를 일본에서 비로소 완성했으며, 유교도 그러하고, 마찬가지로 구미 제국의 불완전한 기독교도 이제 일본에 수입되어 곧 그 완성을 볼 것”이라고 재차 말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손양원은 종교라는 것은 그 종지가 각각 다르고 그 종교적 특성이 있는 법인데 일본이 불교를 고치고 유교를 완성했다지만, 불교에는 석가의 정신대로 하는 것이 원리가 될 것이요. 유교엔 공자의 정신대로 전하는 것이 원리임을 밝히고, 그 정신을 제하고 일본 정신으로만 한다면 그것은 벌써 참 불교나 참 유교가 아닐 것임을 재차 천명했다.
손양원은 창시자의 본뜻을 무시하고 종교의 각각 그 나름의 원리대로 선교지 국가의 정신과 혼합되는 것을 ‘일본적 기독교’나 ‘조선적 기독교’로 판단하고, 이는 참다운 기독교가 아닌 왜곡된 기독교임을 밝힌 것이다.
필자도 김교신이 말한 ‘조선산기독교’는 우찌무라가 강조한 ‘일본적 기독교’와는 다른 형태의 손양원이 말한 이 ‘기독교적 조선’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꼬리 글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김교신을 일제강점기에 교회가 아닌 교회주의를 부정하며 하나님 중심주의와 십자가 복음에서 멀어져 예언성을 상실해 가는 교회들을 등지고 예언자적 선포를 한 인물로 재평가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계도 지적하는데 김교신이 조선이 당하고 있는 현실을 신앙적인 관점으로만 보았고 조선의 식민지화를 섭리적으로 파악해 능동적인 정치 참여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인위적인 행위로 파악해 오늘날 현실 참여나 사회 개혁에 대한 보수적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한계점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김교신은 성서를 기독교의 핵심으로 삼았지만, 우찌무라의 무교회주의적 성서 이해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도적 교회의 긍정적 기능에 대한 숙고가 부족했고 교회가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지한 고민이 부족했고 세례와 성찬에 대해서도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필자는 저자가 책 167p에서부터 잘 설명한대로 츠카모토가 복음 제일주의 노선에 섬으로써 일본 침략정책에 침묵으로 동조하였던 것과는 달리 김교신은 성서조선의 ‘조와’와 ‘부활의 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언성을 담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는 것, 이로서 동인들과 투옥되면서도 전향문을 쓰라는 요구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취조하는 형사에게 일본에 대한 비판과 몰락의 예언을 쏟아냈다는 점을 크게 평가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흥남에서 비료공장 계장으로 있으면서 손수 삽을 들고 노동자과 같이 똥을 치우거나 석탁을 운반하기도 하였고 밤에는 야학을 열어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육에 힘썼다는 것, 또 집단생활에 대한 상식이나 위생에 대해 강연도 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우와 생활환경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런 사례들을 들어 진정성있었던 김교신의 삶에 대한 평가가 그의 한계점에 가려진 것은 매우 아쉽다.
선생님의 팔목에 있는 상처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제자인 시인이 묻는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겨레를 사랑하시려고 했다가 수감을 차였을 때의 상처라고 대답하신다. 다시 제자는 선생님의 가슴에 있는 흉터는 어찌된 흉터냐고 묻는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은 나라를 사랑하시려고 했다가 묶였을 때의 흉터라고 대답하신다. 다시 제자는 선생님의 등에 있는 핏자국은 어찌 된 핏자국이냐고 묻는다. 다시 선생님께서는 그것은 주를 위해, 인류를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시려고 했다가 매을 맞은 핏자국이라고 대답하신다. 서장식, “참 삶을 사신 분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김교신전집 별권, 338
윗 글처럼 김교신은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하겠다. 필자는 그가 그토록 주창한 ‘조선산기독교’라는 것은 단편적으로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어떤 사상체계라기 보다는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이고 ‘그리스도에까지 이르는 삶’ 그 자체였다고 평하고 싶다.
  • 가격2,3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3.06.19
  • 저작시기2008.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285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