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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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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성곽(성)의 개념

Ⅲ. 성곽(성)의 기원

Ⅳ. 성곽(성)의 종류
1. 축성 재료에 의한 분류
1) 목책성
2) 토성
3) 석성
4) 전축성(塼蓄城)
2. 목적에 의한 분류
1) 행정적인 성
2) 군사적인 성
3. 거주주체에 의한 분류
1) 도성(都城)
2) 궁성(宮城)
3) 행재성(行在城)
4) 읍성(邑城)
4. 지형에 의한 분류
1) 테뫼식산성(산정식 산성)
2) 포곡식 산성
3) 복합식 산성

Ⅴ. 성곽(성)의 특징
1. 형태상의 특징
2. 축성 기술상의 특징
3. 위치 선정 및 배치 상의 특징
4. 구조적 특징

Ⅵ. 성곽(성)의 축조방법
1. 토성의 축조방법
2. 석성의 축조방법
1) 직선형 성벽
2) 곡선형 성벽
3. 토석 혼축성의 축조방법

Ⅶ. 성곽(성)과 파사산성성곽
1. 연대
2. 실물크기
3. 설명

Ⅷ. 성곽(성)과 낙안읍성성곽

Ⅸ. 성곽(성)과 몽촌토성성곽
1. 연대
2. 실물크기
3. 설명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 구분된다.
1) 직선형 성벽
단 경 사
7성벽하단에서 상단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비율에 따라 같은 경사로 쌓아 올린 성벽
복 경 사
성벽의 하단은 완경사로 일정 높이까지 쌓고 윗부분은 급경사로 하여 상하 경사율의 차이가 심하게 쌓는 성벽으로 높이 쌓을때 이용되었다.
유 단 경 사
성벽의 기초지반이 약하거나 성벽을 높이 쌓는 경우에 단을 두어 축조하는 방법이다.
보은의 삼년산성이 이에 해당한다.
2) 곡선형 성벽
홀 형
성곽의 성벽이 안쪽으로 휘어진 형태로 성벽의 일정 높이마다 경사율이 일정치 않고 차츰 변하는 성벽으로, 밑바닥에서 점차 위로 올라갈수록 급경사로 된 형식. 안쪽으로 휘어진 양상에
따라 Ⅰ식과Ⅱ식으로 구분된다.
궁 형
홀형과 정반대로 성벽과 외측으로 배가 부른 형태의 성벽이다. 경사형태가 활모양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홀형과 마찬가지로 Ⅰ식과 Ⅱ
식으로 구분한다.
3. 토석 혼축성의 축조방법
성벽의 단면은 일정한 석축을 하고 외부에 흙을 쌓는 방법과 흙과 돌을 적절히 혼합하여 축조하여 일반 토축 성벽보다 견고하게 하는 방법, 그리고 토성벽 한 부분에 석렬을 두는 방법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Ⅶ. 성곽(성)과 파사산성성곽
1. 연대
기원 후 80-112년 경
2. 실물크기
둘레 2km, 높이 4-6m
3. 설명
파사산성은 지형적으로 군사요충지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서울에서 경상도로 가는 죽령, 조령길이 연결되는 곳이며, 서울로 들어오는 소로와 수로가 통하던 길목이기도 하다. 처음 축성은 신라 5대 파사이사금의 시기로 추측해 이름도 파사성으로 부르고 있다. 안에서 신라시대의 토기와 유물이 출토되기도 한다. 또한 삼국을 통일한 신라군과 당군의 격전장이었던 매초성이 이곳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Ⅷ. 성곽(성)과 낙안읍성성곽
성곽은 대체로 산의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을 비롯하여 흙으로 쌓아올린 토성, 석성, 전축성, 목책성 등이 있으며, 그리고 국경을 이루는 장성 왕궁을 지키는 도성과 라성, 평산성, 읍성 등으로 구분 할 수가 있는데, 성곽의 부대시설로는 성문과 기타 시설이 있다.
성문은 일반적으로 홍예문과 사각형이 있으며, 곡행문은 성안과 밖으로 통하는 길을 S자형으로 돌아 들어가도록 설치된 문이다.
현문은 평상시에는 해자를 건너는 다리를 들어 올려 두고 필요할 때 다리를 내려 사용하는 조교가 있고, 암문은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지원병이나 무기 식량 등을 운반하기 위한 비밀 통로이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성으로 반원형이거나 사각형으로 성문 앞에 돌출 되어 설치된 성곽의 일부분이다.
현안은 성벽에 바짝 다가선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미석에 구멍을 내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게 하였다.
성우는 성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쉽도록 성곽을 돌출시켜 쌓은 성으로 반원형이면 곡성, 사각이면 치성이라 부르며 일명 초소나 망루로서의 기능을 한다.
여장은 성 가장자리에 쌓은 성곽 일부로 평여장과 불록(┻)여장이 있다.
해자(垓字)는 성곽 주변(안과 밖)에 자연적인 고랑이나 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기도 하고 인공적으로 호를 파거나 고랑을 내어 적으로부터 침입을 일차적으로 차단하거나 성곽의 방어력을 높이는 성곽 시설의 하나이다.
그 외에 총안 또는 사구(銃眼=射口), 미석, 공심돈, 포루 각루 등이 있으며, 또한 읍성의 기능은 관아와 민가가 성내에 함께 하는 지방 행정과 군사적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고 본다.
이곳 낙안성도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보면 조선조 태조 6년(1397) 낙안 출신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의병들과 함께 쌓은 토성(土城)으로 그 후 1626(인조4년 5월 ~ 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왕이 그리하라 하였으며,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곽의 길이는 1,410m, 높이 4~5m, 넓이 2~3m로서 면적 41,018평으로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호환 이 잦아 폐쇄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동문은 낙풍루 남문은 쌍청루 또는 진남루라고 하고 서문은 낙추문 으로서 성문 정면으로 ㄷ자형 옹성 이 성문을 외워 감싸고 있다. 여장엔 활을 쏠 수 있도록 사방 1尺정도의 총안 사구 가 있고 이 총안 역시 근총 과 원총 으로 나누어 있다. 또 여장이 타구 로 나뉘어 있고 성곽을 따라가면 凸형의 성곽이 있는데 이는 치성이라고 한다. 당초 6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곳만 남아 있다. 이 치성은 초소(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좌우로 침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축조되었다.
낙안읍성의 특징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으로 외탁과 내탁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으로 되어 있다.
Ⅸ. 성곽(성)과 몽촌토성성곽
1. 연대
기원 후 3세기-5세기 말
2. 실물크기
둘레 2.3km
3. 설명
북쪽으로 한강과 남으로는 남한산성을 사이에 둔 야트막한 산을 끼고 있는 흙으로 쌓은 성곽이다. 백제고도문화유적 복원계획에 따라 토성을 보수하고 성안의 유적들을 복원하였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백제고분과 고성이 분포하고 있어 북쪽으로부터 침략에 대비한 방어용 성곽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백제시대 움집터 3동, 돌무덤 4기, 토광묘 2기, 저장구덩이 13개 등이 있다.
참고문헌
김영학, 한국성곽의 옹성구조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 2007
문화재청, 성곽 정비 및 보존 관리 활용방안 지침마련 연구, 2008
반영환, 최진연, 한국의 성곽, 대원사, 1990
손영식, 한국성곽의 연구, 문화재 관리국, 1987
장상진, 성곽에 관한 사적고찰, 박약회대구지회, 2008
황보경, 한강유역 신라 성곽의 특징과 성경, 한민족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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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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