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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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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기념과 기념사업

Ⅱ. 기념과 기념일
1. 조세의 날
1) 행사일시
2) 유래 및 지정연혁
3) 의의
2. 상공의 날
1) 행사일시
2) 유래 및 지정연혁
3) 의의
3. 향토 예비군의 날
1) 행사일시
2) 유래 및 지정연혁
3) 의의
4. 식목일
1) 행사일시
2) 유래 및 지정연혁
3) 의의
5. 보건의 날
1) 행사일시
2) 유래 및 지정연혁
3) 의의

Ⅲ. 기념과 기념사
1. 의미
2. 대상
3. 작성 요령
1) 서두
2) 본론
3) 결론

Ⅳ. 기념과 기념관

Ⅴ. 기념과 기념시설

Ⅵ. 기념과 기념탑

Ⅶ. 기념과 기념비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나도 없다고, 따라서 이관할 기록물이 하나도 없다고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고한 바 있다. 그 동안 문서관리규정에 의해 정부기록보존소가 대통령기록물을 수집 보존하는 업무를 담당하여 왔다. 정부기록보존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대통령비서실에서 생산된 문서만이 비교적 잘 수집 보존되어 있으나 이것은 박대통령 재임시기 전체 기록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기록보존소에서의 대통령기록물 수집과 보존은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의 법규정대로 한다면 현직 대통령의 경우에는 대통령기록관을 아마도 퇴임이후 정부에서 직접 건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직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역대 대통령 기록관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현재와 같이 대통령기록관을 전혀 만들지 않고 퇴임한 대통령 자신이나 그 후손,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대통령기록을 사유하고 있도록 그대로 방치해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별로 대통령기록관을 따로따로 설립할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보존할 만큼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국가가 이를 위해 막대한 재정투자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전직 대통령이 별로 없는 현실에서 가능한 일로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대통령 기록관의 설립은 한국의 정치문화 발전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사실 조선왕조 시절에도 사관들이 국왕의 동향을 세밀히 기록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초를 작성하여 국왕이 사망한 이후 실록을 작성하는 자료로 삼았다. 어떤 통치자가 자신의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는 것을 좋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누구나 나의 행동이 기록된다고 하였을 때 정치행위를 조심스럽게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떳떳치 못한 정치인이 기록을 두려워하는 것이 엄연한 진리이다.
따라서 건국 이후의 역대 대통령을 망라한 기록관을 만드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역대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들의 기록, 그리고 그 시대와 관련된 국내외 기록과 증언들을 한 데 모아, 개인 별 전시실을 확보해 주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의 전시실이 별도로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건립비용의 절약, 자료 수집과 이용의 효율성, 정치적 공방으로부터의 자유 등 많은 이점이 있다. 물론 이 대통령기록관은 정부기록보존소가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역시 법적 근거가 필요하므로 ‘공공기관의 기록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이 내용을 삽입해야 한다. 한편 대통령 기록관을 총무처 산하의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담당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국무총리 산하의 국가기록관리청을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Ⅴ. 기념과 기념시설
시 설 명
소재지
건립연도
시 설 명
소재지
건립연도
참전기념비
서울 금천
2003
6.25참전
호국기념비
경기 포천
2002
호국 국가유공자
공적비
경기 안산
2005
호국유공자명비
강원 동해
2000
호국무공수훈자
공적비
경기 의왕
2005
베트남참전
기념탑
강원 강릉
2001
대한민국
6.25참전 유공자비
경기 시흥
2005
베트남참전
기념탑
강원 고성
2004
6.25참전기념비
경기 고양
2001
강릉시 무공수훈자
공적비
강원 강릉
2004
6.25참전기념탑
경기 연천
2002
한국전쟁참전용사 공적비
강원 고성
2005
포천시 6.25참전
유공자기념비
경기 포천
2004
Ⅵ. 기념과 기념탑
정부 주도로 구성된 ‘동학혁명기념탑 추진위원회’가 그해 10월 세운 탑이다. 1894년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황토재 일대에서 농민군은 전라 감영군과 보부상으로 이루어진 관군과 맞붙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에 세워진 탑은 농민군 투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최초의 조형물이다. 그 이후 농민군 승리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자리 잡아 왔다.
좌우 보조 석물과 중앙 기둥 사이를 비웠으나, 중심 기둥은 좌우 균형 대칭 중심에 육중하게 하늘로 치솟아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기념조형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서로 새긴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保國安民)’ 구호는 가까이 갈수록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아야 할 자리에 새겨져 있다.
농민군은 위아래를 양반 상놈으로 엄격하게 나누는 상하 수직적인 신분 질서를 깨트리고 수평적인 서로 대등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렇다면 조형물도 수평으로 낮게 세우는 편이 그 뜻을 담기에 마땅하다. 또한 농민전쟁은 기존의 질서와 지배의 균형을 깨고 세상을 바꾸려는 밑으로부터 일어난 투쟁이었다. 좌우 균형 중심에 하늘로 우뚝 치솟는 조형의 상은 현실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주의적 의도가 담겨있는 전형의 상이다.
갑오혁명기념사업협회장 문학박사 김상기가 지은 ‘갑오동학혁명기념탑명문’에는 갑오동학혁명이 ‘동학교문의 대혁명가 전봉준 선생의 영도아래에서’ 일어났으며 ‘국민생활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고 하여 전봉준 중심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5.16군사 쿠데타 이후 ‘근대화론’의 영향을 담고 있다. 조형의 상과 명문에 국가가 주도한 의도가 담겨있다.
Ⅶ. 기념과 기념비
청주척화비(淸州斥和碑)
충청북도 기념물 제23호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척화비는 고종(高宗)8년(1871)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치른 후 백성들에게 서양에 대한 강한 항전의식(抗戰意識)을 심어주기 위하여 서울 및 전국의 요충지에 세웠던 비이다. 척화비의 내용은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인데 이 척화비는 윗부분이 깨어져, “洋”자와 “則”자가 없어졌다.
1976년 2월 29일 석교동(石橋洞) 노상 하수구 뚜껑으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참고문헌
김양식, 충북지역 근현대 역사기념시설 분포와 성격, 역사문화학회, 2011
김민환, 한국의 국가기념일 성립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2000
남상구, 한국전쟁 전사자 추도·기념시설 고찰, 한일민족문제학회, 2009
나간채, 5·18기념사업과 5월 운동,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1
박희명, 기념관의 역사와 교육기능 연구, 한양대학교, 2011
서기원, 기념사, 순천향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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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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