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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씨][성씨 연원][본관별 인구][성씨일람][성씨제도][인구 관계][성씨 국가간 비교]성씨의 연원, 성씨와 본관별 인구, 성씨와 성씨일람, 성씨와 성씨제도, 성씨와 인구의 관계, 성씨의 국가간 비교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성씨의 연원

Ⅲ. 성씨와 본관별 인구
1. 성씨 본관별 인구
2. 지역별 분포(인구 50만 명 이상 성씨본관)
3. 본관별 성씨 종류 및 인구

Ⅳ. 성씨와 성씨일람
1. 박(朴)
2. 최(崔)
3. 정(鄭)
4. 장(張)
5. 임(林)
6. 전(全)
7. 오(吳)
8. 조(趙)
9. 송(宋)
10. 황(黃)
11. 노(盧)
12. 윤(尹)
13. 서(徐)

Ⅴ. 성씨와 성씨제도
1. 일본
2. 미국
3. 영국
4. 독일
5. 중국
6. 스웨덴
7. 스페인, 포르투칼 등 스페인문화권 나라
8. 이스라엘

Ⅵ. 성씨와 인구의 관계
1. 성씨별 인구
2. 지역별 분포(10대 성씨)

Ⅶ. 성씨의 국가간 비교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 朴씨 3,895천명(8.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상위 10대 성씨의 순위는 순위와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20대 성씨의 순위는 吳씨(13위→11위), 安씨(18위→17위)는 순위가 높아졌다.
상대적으로 韓씨(11위→12위), 申씨(12위→13위), 宋씨(17위→18위)는 낮아졌다.
인구가 100명 미만인 성씨는 42개 성씨로 52개 성씨보다 10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0명 미만 성씨중 100명 이상으로 증가한 성씨는 剛씨 등 23개 성씨이다.
새로이 나타난 11개 성씨중 10개 성씨는 인구가 100명 미만이다.
[ 100명 미만 성씨 현황]
100명 미만 성씨
이전 성씨
(32개 성)
2012년 성씨
(10개 성)
강전(岡田), 개(介), 교(橋), 군(君), 난(欒), 내(奈), 뇌(雷), 뇌(賴), 누(樓), 단(端), 담(譚), 돈(敦), 망절(網切), 묘(苗), 비(丕), 삼(森), 소봉(小峰), 수(洙), 순(順), 십(), 어금(魚金), 영(影), 영(榮), 운(芸), 장곡(長谷), 저(邸), 준(俊), 초(初), 초(肖), 춘(椿), 후(候), 후(后)
경(京), 빙(氷), 삼(杉), 소(肖), 예(乂), 우(宇), 원(苑), 즙(), 증(增), 증(曾)
2. 지역별 분포(10대 성씨)
10대 성씨의 지역별 분포는 시도별 인구규모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나 7위인 趙씨가 「서울인천경기충남」의 수도권에서, 林씨(10위)가「광주대전충남전북」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인구비율을 보였다.
姜씨(부산경남제주), 張씨(대구충북경북), 朴씨(울산전남), 崔씨(강원)는 1~3개 시도에서 비율이 높은 편이다.
1~2위 순위인 金씨와 李씨는 높은 비율을 보이는 시도는 없다.
특광역시와 도 지역을 비교하면 특광역시는 尹씨, 도는 姜씨가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Ⅶ. 성씨의 국가간 비교
우리의 성씨제도는 중국에서 수용한 것이지만, 중국과 동일하지는 않다. 중국의 성과 같은 점은 성으로 사용되는 글자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자(姓字)는 박·석·김과 같이 신라에서 유래한 것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던 성자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식 성씨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오늘날 많은 족보의 기록과 같이 그 시조가 중국에서 귀화했다거나, 중국황제로부터 성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경우도 일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후대에 사대주의 풍조에서 조작된 것일 뿐이다.
우리의 성씨가 중국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본관(本貫)이다. 우리민족의 성씨제도란 성과 본관으로 구성된 성관체제를 이르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성이 같으면 혈족이지만, 우리민족은 원칙적으로 성이 같아도 본관이 다르면 혈족이 아니다. 우리민족의 성씨는 본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성 그 자체보다도 본관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본관이란 간단히 말하면 그 성씨의 시조나 조상이 살았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과 본관으로 구성된 성관체제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시기는 고려 초이다. 성이 왕실과 귀족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던 신라에서는 성만으로도 가계와 혈통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신라하대를 거치면서 이들의 성씨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혈연과는 무관하게 사용되면서 가계와 혈통은 물론 신분조차 판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려 초에 본관이 필요했던 객관적인 조건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통일사업을 완수한 후 공신들과 고급관료, 통일사업에 협조했던 호족들에게 그들의 출신지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내리는 한편, 전국 군현을 개편하여 각 구획에 토착하고 있던 유력층에게 그곳을 본관으로 하는 성을 나누어 주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각 읍 성씨조는 고려 초 토성분정 이후 15세기까지 성씨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약 250여 성과 4,500여 본관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날 성씨의 수는 15세기와 마찬가지로 대략 250여개이지만, 본관은 약 1,100여개가 줄어든 3,400여개로 파악된다. 15세기까지도 전인구의 40-50%는 성이 없는 무성층이었는데, 이들은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점차 성을 취득하게 된다.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던 무성층이 성을 새롭게 취득했는데도 이와 무관하게 성씨의 수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천민층의 성씨취득이 새로운 성씨의 창출과 무관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250여개의 성 중에서 김, 이, 박, 최, 정 등 5대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반면에 159개의 성을 사용하는 인구는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성의 편중현상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성을 새롭게 취득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성씨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사용되고 있던 유명 성씨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Ⅷ. 결론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외국에도 \'족보학회\'나, 심지어는 족보전문 도서관이 있는 곳이 있는 등 가계(家系)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우리처럼 각 가문마다 족보를 문헌으로까지 만들어 2천년 가까이 기록 해온 나라는 없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성씨 관계의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는 족보는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었으며, 개인의 족보를 갖게 된 것은 한(漢) 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만들어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특히 중국 북송(北宋)의 문장가인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의 표본이 되었다.
참고문헌
김응환(2012) : 우리나라의 성씨 알기, 온이퍼브
김정현(2001) : 흥하는 성씨 사라진 성씨, 조선일보사
김정현(2009) : 우리 겨레 성씨 이야기, 지식산업사
이수건(2011) : 한국의 성씨와 족보,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정복규(2012) : 한국의 성씨 1, 이랑과이삭
편집부(2009) : 한국성씨보감, 은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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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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