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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속극][민속극 공연방식][민속극 제의][민속극 연행][민속극 교육론][가면][가면극]민속극의 공연방식, 민속극의 제의, 민속극의 연행, 민속극의 교육론, 민속극과 가면, 민속극과 가면극, 민속극과 송석하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민속극의 공연방식
1. 가면극
2. 인형극

Ⅲ. 민속극의 제의와 연행

Ⅳ. 민속극의 교육론
1. 작품론
1) 교육목표
2) 교육내용
3) 교육방법
2. 작자론
1) 교육목표
2) 교육내용
3) 교육방법
3. 인물론
1) 교육목표
2) 교육내용
3) 교육방법
4. 주제론
1) 교육목표
2) 교육내용
3) 교육방법
5. 비교론
1) 교육목표
2) 교육내용
3) 교육방법

Ⅴ. 민속극과 가면

Ⅵ. 민속극과 가면극
1. 노장 과장
2. 양반과장
3. 미얄과장

Ⅶ. 민속극과 송석하

참고문헌

본문내용

계승하면서 민속학적 자료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는데, 이에 반해서 송석하는 현지조사 중심의 민속학적 연구방법을 전적으로 채용한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에 일본인 학자들이 주로 산대놀이와 봉산탈춤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송석하가 1936년 봉산탈춤의 공연을 주선하고, 일본인 吳晴, 村上智順을 안내하였을 때 오청은 송석하임석재와 함께 공동으로 채록한 봉산탈춤의 대사를 조선(1937)에 발표하고, 村上智順도 동일 잡지에 민중오락으로서의 봉산탈춤에 관한 글을 실은 것을 보면, 일인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송석하와 후대의 민속극 연구자를 관련시켜 영향 수수관계 내지 계승과 극복의 양상을 살펴 그의 연구사적 위치를 가늠해 보기로 한다. 논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송석하의 민속극 연구에서 발견되는 다섯 가지 특징들을 재정리한 다음 순서에 따라 살피기로 한다.
첫째, 현지조사가 민속학을 독립과학으로 만드는 연구방법임을 인식하고, 이를 철저히 실천했다.
둘째, 민속극의 장르를 가면극과 인형극으로 양분했다.
셋째, 민속극의 역사적 연구에는 문헌고증학적 방법과 현지조사 방법의 병행이 효과적임을 강조했다.
넷째, 가면극의 지역적 분포에 따라 전승권을 구획하고, 지역적이본적 차이의 역사적지리적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
다섯째, 학문적이론적 체계화보다는 민속극 부흥을 위한 대중계몽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첫째의 경우 민속극 연구에서 현지조사 방법을 사용하여 民俗誌를 작성하고 대사를 채록한 대표적인 연구자는 이두현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한국가면극(1969)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역사민속학적 방법으로 삼국시대 이래 이조 말까지의 한국 가면극 발달의 사적 고찰과 한국 가면 및 가면극의 民俗誌的 자료로서 구성하였다. 한국 가면극을 보다 광의로 잡아 북청사자놀음과 꼭두각시놀음도 함께 자료로서 假面劇誌 속에 포함시켰다”라고 밝혔듯이 가면극과 인형극의 본격적인 민속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민속극에 대한 현지조사 중심의 민속학적 연구의 한계를 비판하고, 가면극은 연극으로서, 또는 희곡으로서 미학적인 연구를 하려는 방향 전환이 조동일에 의해 시도되었고, 최근엔 현장답사주의만 신봉하다가는 가면극의 본질을 보지 못할 우려가 있으므로 텍스트 분석에 치중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온 실정이다.
그러나 가면극이 이미 전승현장에서 자생력을 상실하고, 서울놀이마당에서 공연되는 식으로 도시민속화하는 추세이므로 그에 따르는 새로운 연구방법이 모색될 수도 있겠으나, 가면극이 근원적으로 창작희곡 내지 실내연극과는 다른 구비전승물이고 야외극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의 경우로 송석하가 “조선의 민속극”(1932)에서 민속극을 가면극과 인형극으로 구분했는데, 김재철의 조선연극사(1933)에서 고전극의 쟝르체계로 확대되어 수용되었고, 권택무는 조선민간극(1966)에서 가면이나 인형을 사용하지 않은 극을 새로운 장르로 추가 설정했으나, 한효의 조선연극사개요(1956)에선 판소리를 창극이라 하여 가면극, 인형극과 함께 세 장르로 보았다.
그러나 장덕순조동일서대석조희웅의 구비문학개설(1971)에선 가면이나 인형에 의한 假裝性, 대화와 몸짓에 의한 갈등의 집약적 표현, 민간전승으로부터의 독립성 등의 기준에 근거해서 가면극과 인형극만을 민속극으로 규정하여 송석하의 장르구분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이론화시켰다.
그러나 황루시의 “무당굿놀이연구”(1987)는 민속극의 장르를 가면극, 인형극, 무당굿놀이로 보아야 할 당위성을 제시했기 때문에 송석하의 이분법은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셋째의 경우로 민속극의 역사적 연구에는 문헌자료에 의거한 고증학적 연구와 민간전승에 의거한 민속학적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절충론은 가면극과 인형극을 궁중의 연극과 민간의 연극으로 나누어 후자만을 민속극으로 간주하는 명확한 구분의식 없이 역사적으로 체계화시키려 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1933)를 필두로 이두현의 한국가면극(1969), 한효의 조선연극사개요(1956), 권택무의 조선민간극(1966) 등에 답습되었는데, 이에 대한 극복이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넷째의 경우인 가면극의 지역적 분포에 대해선 조동일이 “가면극과 민중의식의 성장”에서 농촌가면극과 도시가면극으로 나누어 민중의식의 성장과 상업의 발달에 힘입어 농촌가면극이 도시가면극으로 발전했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고, 정상박은 오광대와 들놀음 연구(1986)에서 낙동강을 경계선으로 오광대와 들놀음이 기원을 달리하면서 상이한 전승권을 형성했다고 하여 오광대와 들놀음이 모두 산대도감극에서 분파되어 동일전승권을 이루었다는 송석하의 견해를 수정했다.
그런가 하면 박진태는 한국가면극연구(1985)에서 중마당, 양반마당, 할미마당, 벽사마당의 지역적 차이를 이본관계로 보고 진화론적 관점에서 발전과정과 발전원리를 도출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개별 작품 사이에 나타나는 지역적인 차이에 대한 논의에선 송석하가 봉산탈춤과 강령탈춤을 비교한 수준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 실정인데, 역사적지리적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심층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다섯째의 경우로 송석하가 보여준 학문적 태도를 현재 시점에서 보면, 민속극의 학문적 연구에만 충실하느냐, 아니면 민속극을 전통문화 내지 무형문화재로 보존하고 공연을 통해 사회적인 인식을 계몽할 것인가, 더 나아가선 민속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여 사회문화 운동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나아가느냐, 이런 것들이 계속 문제가 되는데, 특히 세 번째 부류에 심우성, 채희완이 속한다.
참고문헌
김익두, 민속극/전통극 연구의 현황과 과제, 지역민속학회, 2009
박진태, 민속극의 놀이꾼과 구경꾼의 관계를 통해 본 문화융합, 한국구비문학회, 2008
이광진, 한국 전통민속극의 관광축제화 방안연구, 한국관광연구학회, 2003
임동철, 한국 민속극 의 서사극적 수법, 서원대학교, 1979
조우현, 민속극의 시간성과 공간성, 동국대학교, 1984
채금석 외 1명, 흑·백에 대한 한국인의 미의식 : 조선시대 민속극을 중심으로, 한복문화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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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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