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와 농민 을 통해 살펴본 해방전후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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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연수와 농민 을 통해 살펴본 해방전후기의 모습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김연수(1896. 8. 25 ~ 1979. 12. 4)

Ⅲ. 농민 김무덕(1896. 8. 8 ~ 1970)

Ⅳ. 나의 입장에서 본 해방전후기

Ⅴ. 마치며

본문내용

방전후기의 일제치하, 친일행위, 광복 후 친일파 처단 및 사회개혁에 대한 사건을 고찰해 보겠다.
첫째, 일제치하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가 너무나 안타깝다. 쇄국정책을 펼치고 기술을 천시하는 상황에서 선진국의 앞선 기술, 문화, 각종 사회제도 등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 당시 우리나라는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에서의 사농공상, 신분제, 남성우대 등등의 폐쇄적이며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문화가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그 대가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일제치하 식민지의 삶이라 생각한다.
둘째, 일제치하 속의 친일행위들은 이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상황 속에서 친일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해도 이는 엄연히 매국행위이며 국익을 좀먹고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친일행위를 하여 이익을 얻었다면 이는 친일행위를 하지 않은 누군가의 피해의 댓가임을 깨달아야 한다. 일제는 우리를 자국민이 아닌 식민지 국민으로 여겼고 우리를 착취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의 친일은 우리를 근대화 시키는데 기여한다거나 어쩔 수 없는 행위가 아닌 명백히 우리를 식민지화 하고 대다수 국민을 착취하는데 동조하는 행위인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광복 후 친일파 숙청 및 각종 개혁에 대한 고찰이다. 초대 이승만정권이 친일파들의 정당인 한국민주당의 힘을 얻어 정권을 잡은 순간부터 제대로 된 개혁은 불가능해 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과거 친일파들이 행정직부터 국회의원까지 사회요직에 두루 존재하는 상황에서 친일파 숙청 및 올바른 방향의 사회개혁은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수립 당시에 과감히 이들을 내치고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정권이 세워지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
Ⅴ. 마치며
1. 김연수와 김무덕의 삶에 대한 간략한 고찰
먼저 김연수의 행위가 친일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란이 있는데 이러한 논란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연수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명백한 친일행위를 저질렀다.
첫째, 김연수가 이룩해 낸 자본은 순수한 민족자본이 아닌 친일의 대가로 얻은 일본예속자본이다. 일본 수뇌부 및 일본 식산은행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각종 친일행위에 적극참여 하여 얻어낸 그의 재산은 정당한 재산이 아닌 비겁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으로 그 속에는 우리 농민들의 착취와 수탈, 굶주림이 있을 뿐이다.
둘째, 1930년대 일본의 전쟁에 적극 참여한 행위이다. 각종군수물자를 적극 만들어 내고 전쟁후원명목으로 각종 후원금을 지급하는 행위 자체는 명백한 친일행위이다.
셋째, 중추원 참의,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장, 조선국민의용대,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학병권유 등의 활동을 했음이 명백하고 이는 당연히 친일행위이다.
이렇게 김연수의 친일행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1949년 반민특위에 의해 회부된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아직까지도 대기업의 원로로서 그 후손들이 고스란히 친일댓가 축적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정의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단편적 사례이다.
비록 그가 축적한 자본이 향후 우리사회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밑바탕이라 해도 그가 저질렀던 친일행위까지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그는 친일행위를 했고 그를 대가로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피해를 봤다. 어떤측면에서 그의 행적을 평가하더라도 이 부분이 달라질 순 없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마땅히 그와 같은 친일파의 행적을 정확히 평가하고 이에 합당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농민 김무덕의 삶은 일제치하 대다수의 조선인들의 삶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의 삶속에서 보았던 모습들은 후손들에게 두 번 다시 물려주어선 안 되는 것들이다. 절대적인 경제적 고난은 차지하고서라도 일제에 협력하는 자들이 오히려 경제적,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꺾어놓는 부정의한 사회의 모습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2. 나의 입장에서 본 두 사람의 삶
지금 나는 제3자의 입장에서 김연수는 친일의 삶을, 김무덕은 고통받는 하층민의 삶을 살았고 김연수는 처벌을, 김무덕은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쉽게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때 당시의 삶을 살았더라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나또한 고통을 감수하고서 친일행위를 당당히 거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시대에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결과 조선인 최고의 기업가와 하층민의 삶이라는 극단적인 삶이 결정되는 일제치하 속에서, 사회구조상 많은 사람들이 고통 앞에 양심을 팔며 변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에서 말한 것 과 같이 친일은 명백히 국익에 해가 되는 행위이다. 반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존재한다.
친일과 독립운동 행위가 국익, 나아가 공익에 서로 상이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공과를 정확히 평가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정의인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겐 명예를 되찾아 주고 기회주의적 행동을 보인 친일파들에겐 그것이 부끄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과거사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금에 와서 지나간 역사를 들추어내는 소모적인 행위가 아닌 향후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첫걸음 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 질 때 과거와 같은 치욕의 역사를 다시 경험하지 않고 김무덕과 같은 최악의 삶을 우리 후손들에게 다시는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Ⅵ. 참고문헌
- 이강수, 반민특위 연구, 서울:나남출판, 2003
- 이종범 외, 자료 한국근현대사입문, 서울:혜안, 1995
- 허재일 외, 해방전후사의 바른 이해, 서울:평민사, 1991
-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 서울:들녘, 1999
- 인터넷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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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3.09.30
  • 저작시기2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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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8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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