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虎叱(호질)」 再考察(재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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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虎叱(호질)」 再考察(재고찰)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호질」의 작자론
 1. 연암 창작설
 2. 중국인 원작자설

Ⅲ. 「호질」의 주제론

Ⅳ. 결론

본문내용

상을 들어 북벌을 외치면서도 내부의 실제사정이 따르지 못했던 朝·鮮의 지도 이념은 연암이 보기에 참으로 비현실적인 외침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蘇在英,「호질 재론」, 한남대학교 한남어문학회, 한남어문학 2, 1973, 107~129면.
이와 반면에, 「호질」이 중국인의 원작에 속할 경우 이 작품의 주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앞에서 살펴본 중국인 원작설에 대한 근거들을 종합해보면, 『열하일기』는 사실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 「호질」은 중국인의 비분작이라는 점, 연암이 창작하였다면 작품의 제목이 「호질」이 아니라 주인공의 이름을 딴 제목이 되어야 한다는 점, 연암의 평소 성격과 품성을 살펴보아 연암을 당시대의 정치권력층의 비판을 두려워할 인물이 아니므로 중국인에 의해 가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제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중국인 원작설의 주제를 유추해 보자.
이우성 교수는 자신의 앞선 연구에서 ‘중국인의 작’이란 원작론에 연결하여 만주족이 명나라를 지배한 후 청의 지배를 받는 명나라 사람 중 곡학아세로 자신을 적응시켜 나가려는 비열한 형상을 풍자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우성, 앞의 논문, 450면.
이러한 단정의 근거로는 연암자신의 논술인 「호질」후지를 들 수 있다. ‘盖近世華人悲憤之作~以中州之淸焉’에 이르는 만주족 지배 하에서 빚어진 꼴사나운 현상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만주족의 위세 앞에 너무나 무력했던 중국의 지배층은 무기력과 좌절감 속에서 타협과 비굴을 일삼아 왔는데 여기서 작자의 비분이 폭발한 것이 원작「호질」의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작품에서 호랑이의 ‘虎睿聖文武 慈孝智仁 雄勇壯猛 天下無敵’ 호랑이는 착하고도 성스러우며 문채롭고 싸움도 잘하고 자애롭고 효성스러우며 지혜롭고 어질며 엉큼스럽고 날래고 세차고 사납워서 천하에 이를 대적할 자가 없다.
은 滿洲皇帝를 지칭하는 것이 되고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謂天蓋高 不敢不局, 謂地蓋厚 不敢不’ 하늘이 대개 높다고 하나 감히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으며, 땅이 대개 두텁다고 하나 감히 조심 해 걷지 않을 수 없구나. (『詩經』, 「小雅」 節南山之什-正月 四~六章)
의 시구에만 열 올리는 북곽은 타락해버린 중국의 일부 士人群 선비들의 무리.
을 형상화한 것이며, 假節婦 거짓으로 절개를 지키는 여자.
동리자는 만주 정부의 유교적 풍습을 교화하는 장려책을 펴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비롯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Ⅳ. 결론
「호질」은 연암이 지은 작품이며 그 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왔다. 연암은 당시의 세속 위학들이 실행이 없고 까다로운 의론만 일삼는 것을 증오하여 「호질」을 짓고도 원방을 초래할 것이 염려되어 중국인의 작으로 가탁하였다. 또한 그는 풍자와 은유기법을 사용하여, 연암의 평소 지론인 <오행상생>설을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하여 「호질」이 연암의 작임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호질의 주제는 당시 조선의 거짓된 선비들을 나무라고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상상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여행을 통하여 본 그의 견문이 기술된, 사실성에 근본정신을 둔 작품이다. 연암이 본편을 얻게 된 연유의 소상한 자기 기록 즉, 『열하일기』의 「호질」 전후의 자기 고백 속에 담겨진 기록을 소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심유붕의 점포에서 정진사와 더불어 어떤 중국인이 쓴 <絶世奇文>을 베꼈고, 이를 우리나라 사람에게 읽혀서 <한 번 웃기게 하려는> 동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호질의 후지에서 살펴보면 만주족 지배하에 곡학아세로 자신을 적응시켜가는 중국의 선비들의 비열한 모습을 풍자한 중국인의 비분작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편의 제목이 없어, 연암은 원문 중의 호질 두 자(字)를 뽑아서 제목을 삼고 있다. 이와 같은 행위는 연암의 작품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연암의 모든 다른 작품이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제목이 붙여진 일관성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제목은 「호질」이 아닌 「호전」 내지는 「북곽선생전」 또는 「동리자전」이 되어야 한다.
또한 연암은 당시대의 정치 권력층의 비판을 두려워할 인물이 아니므로 자기의 의사를 작품에 스스럼없이 표현하는데, 특히 허생전에 나오는 ‘余亦言’을 통해 아무 가탁없이 자기가 직접 현실을 비판하는 인물이므로 중국인에 가탁하여 호질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연암이 평소 품고 있는 지론 중 하나로 <오행상생>설이 호질에 나오는데 이는 연암만이 가지고 있는 지론이라 할 수 없고 중국에서도 진시황 이래 수 천년 동안 내려오는 사상이다. 이것이 호질에 드러났다고 하여 연암이 지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연암의 서술방식을 살펴보면 고어를 사용하기 위해 경전을 찾아보지 않고 사실을 근거로 하여 글을 지었다. 그런데 호질에서는 중국의 고서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 평소 연암의 서술방식과는 다르므로 중국인이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호질이 중국인의 원작에 속할 경우, 호질의 주제는 만주족이 명나라를 지배한 후 청의 지배를 받는 명나라 사람 중 곡학아세로 자신을 적응시켜 나가려는 비열한 형상을 풍자한 것이다.
이런 근거로 보아 호질의 작자는 중국인임이 훨씬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이 작자라면 주제는 위와 같이 된다.
<참고문헌>
-朴趾源 (이상호 옮김), 『熱河日記上』, 보리, 2004.
-李家源, 「虎叱 硏究」, 延世論叢, 연세대학교 대학원, 1963.
-朴榮喆本·影印 『燕巖集』卷 2, 答任亨五論原道畵.
-成賢慶,「虎叱의 구조와 원작자」, 한국학보, 1983.
-李佑成,「虎叱의 作者와 主題」, 창작과 비평, 1968.
-오상태, 「호질의 작자에 대하여」, 한민족어문학회, 한민족어문학 5, 1978.
-원형갑,「연암과 현대문학의 거리」, 수필문학 통권 67호.
-박기석, 「도강록에 나타난 연암의 관심사」, 한국고전문학교육학회, 고전문학과교육 21, 2011.
-朴趾源, 『燕巖集』 卷之十四 別集, 「熱河日記-玉匣夜話」, 1932.
-朴趾源, 「孔雀文稿」自序 『燕巖集』卷 三.
-朴趾源, 「贈左蘇山人」『燕巖集』卷四.
-蘇在英,「虎叱 再論」, 한남대학교 한남어문학회, 한남어문학 2,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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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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