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 고인돌의 개념, 고인돌의 생성시기, 고인돌의 채석과 운반 및 축조과정, 고인돌 양식, 대한민국 고인돌의 분포지, 고인돌 시대의 사회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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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인돌 - 고인돌의 개념, 고인돌의 생성시기, 고인돌의 채석과 운반 및 축조과정, 고인돌 양식, 대한민국 고인돌의 분포지, 고인돌 시대의 사회와 기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고인돌이란

2. 생성시기
1) 북방 기원설
2) 남방 기원설
3) 자체 발생설

3. 축조과정
1) 채석과정
2) 운반과정
3) 축조과정(마무리)

4. 고인돌 양식
1) 북방식 고인돌
2) 남방식 고인돌
3) 개석식 고인돌

5. 대한민국 고인돌의 분포지

6. 결론 - 고인돌 시대의 사회와 기능

본문내용

1,2기의 고인돌이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은 5,6기 내지 10여기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1백~2백여 개씩 무리를 지어 있다. 또한, 이곳의 고인돌의 방향은 보통 고인돌이 있는 골짜기의 방향과 일치한다. 전라남도에서도 고인돌은 예외 없이 무리를 지어 발견된다.
북방식 고인돌의 분포는 서해안지대에서는 전라북도 고창지방을 최남단으로 하고 있다. 일부 학자는 고창의 것도 개석식으로 보고 있다. 어떻든 한강 이담으로 내려가면 그 분포는 매우 희박해진다. 반도 중심부에서는 북한강 상류의 춘천을 한계로 하며, 도해안에서는 고성지방에서 남방식과 같이 발견되고 있다.
결국 한강과 북한강유역을 경계로 북방식 고인돌의 분포는 끝난다고 할 수 있다. 남방식 고인돌은 이 아래에서부터 분포하기 시작하나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남부지방에 그 분포가 국한되고 있다. 그러나 개석식 고인돌은 국토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숫자상으로도 가장 많다
6. 결론 - 고인돌 시대의 사회와 기능
- 청동기 시대에 축조된 고인돌은 축조과정에서 보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고인돌의 건립연도가 4500~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시기부터 국가가 성립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대부분 100~200여기씩 무리를 지어 있는 채로 발견되고 또한 유달리 큰 고인돌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그 시대에 공동체 생활을 하며 우두머리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되며 보통 수백명의 장정을 거느릴 정도면 당시에 상당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 한반도의 고인돌은 생업 경제의 형태가 농경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단계에서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채집으로부터 벗어나 농경에 대한 의존도가 보다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농경 단계에 도달한 청동기인들은 이동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들어서게 되었으며 농경사회의 진전에 따라 그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관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의 방식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그에 대한 실천의 능력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 변화가 고인돌군을 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 농경민들이 가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관에 대한 관념은 채집인들 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농경사회의 물질문화 가운데 기념물과 같은 것은 의례를 통해 축조되고 존속함으로써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기념물들은 취락 및 경작지와 함께 일정한 공간적인 단위를 점유하면서 존속했다. 그 공간을 공유하고 그 공간에 의존하는 구성원들은 농경의 공동작업과 상호교환에 의해 사회집단화 되고 기념물의 공유를 통해 정체성이 정의 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취락이 소멸하여도 기념물은 그 장소에 남아서 오래도록 후손으로 이어지면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기념물이 바로 고인돌인 것이다.
기능
- 고인돌의 정확한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학설이 있으나 19세기 말까지는 대체적으로 제단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사람들이 쉽게 바라볼 수 있는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외형적으로 웅장함을 드러내는 대형 거석일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령지방의 탁자식 고인돌 중 일부는 후대에 종교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고인돌을 선사시대 돌무덤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며 거석문화의 한 자취로 간주한다. 주요기능을 무덤으로 해석하는 근거로는 한곳에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사람 뼈와 함께 부장품이 발견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있다. 고인돌이 무덤으로 축조되었다면 당시의 사회상뿐 아니라 매장자의 성격까지 보여주는 좋은 자 료가 될 수 있기 대문이다.
-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는 그들의 천문사상을 보여주는데 별자리를 통해 농사 절기를 파악하고 씨뿌리는 시기를 알아내기 위해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운행을 관측하여 별들의 위치를 가늠하고 그 별들이 계절에 따라 모양과 위치, 그리고 크기가 달라지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큰돌에 신비로운 힘과 정령이 깃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숭배하였으며 원시종교인 에니미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돌뿐 아니라 달, 태양 등도 마찬가지였다.
즉, 고인돌은 그 신비로운 힘으로 악귀를 쫓아내 주거나 길흉화복을 말해 주었고 병을 치료해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숭배 하기도 했으며 고인돌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고인돌 속에는 그들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으며 그들이 가진 과학이 존재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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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27
  • 저작시기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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