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담배의 역사 - 담배,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과정, 담배의 어원, 담배문화, 하멜표류기, 담배의 상업적 재배, 일제의 연초세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문화사] 담배의 역사 - 담배,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과정, 담배의 어원, 담배문화, 하멜표류기, 담배의 상업적 재배, 일제의 연초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과정
 1.1 원산지
 1.2 전래과정

2. 담배의 어원
 2.1 담배의 어원
 2.2 담방구 타령

3.담배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때

4. 담배 문화
 4.1 조선시대 담배예절의 변화
 4.2 담뱃대의 길이와 신분
 4.3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5. 하멜표류기

6. 담배의 상업적 재배와 자본의 싹
 6.1 담배가 상업적으로 된 배경
 6.2 담배의 재배

7. 일제의 연초세
 7.1 연초세의 신설
 7.2 조선인 연초업의 몰락
 7.3 연초전매제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

참고문헌

본문내용

배를 재배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피우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담배를 찾는 사람도 많아지게 되자, 곡물을 재배하는 밭에 담배를 재배하게 되었고, 심지어 비옥한 밭에까지 재배하게 되었다. 곡물을 재배하는 비옥한 밭까지 담배를 재배하는 지역이 늘어가자, 조정에서는 관료들이 담배 재배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법령으로 정하지는 못하였고, 왕이 지방 수령에게 비옥한 토지에는 담배 재배를 금지하는 것을 권하는 내용의 명령을 내렸다.
6.2 담배의 재배
전래 초기에는 담배의 가격이 비쌌으며, 심지어는 은(銀)의 중량으로 담배를 거래할 정도로 비쌌다. 그에 따라 많은 농민들이 담배를 재배하였다. 농민들은 담배를 재배하여 수확하고, 그 수확물을 장시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담배 재배는 투기적 성격이 강하였다. 농민들이 담배를 많이 재배하여 수확물이 다수 수확되면 담배가격이 떨어져 재배농민이 손해를 볼 수도 있었고, 또는 담배농사가 흉년이 들거나 홍수가 남으로써 수확이 격감하면 재배농민이 곤란을 겪을 수도 있었다. 담배가 아닌 곡물인 경우에는 흉년이 들면 약간이라도 수확하여 식량에 보탤 수 있었을 텐데, 담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체로 담배를 재배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풍년이건 흉년이건 간에 농민은 담배를 재배하여 이익을 얻었다. 농민은 담배를 재배하여 수확하고, 그 수확물을 장시에 내다 판매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도 『경세유표』에서 “관서지방의 담배밭은 비옥한 논에서 생기는 이익보다 10배나 많다”라고 적고 있다. 그럴 정도로 담배를 재배하면 얻는 이익이 컸던 것이다.
18세기말 19세기 초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담배 재배 산지가 형성되었다. 전라도 진안 장수 외에도 평안도의 삼등 성천 강동 평양 등이 두드러진 담배 산지로 등장하였으며, 황해도의 신계 곡산 토산, 강원도의 금성 안협, 충청도의 정산, 경상도의 영양 등이 주요한 담배산지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수원 유생 우하영의 『천일록』이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7.일제의 연초세
7.1 연초세의 신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에 대한 독점적인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한국을 실질적으로 식민지화 하였고, 조선에 대하여 정치·경제적 침략을 본격적으로 행하였다. 이에 연초판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은 1905년에 일본연초수출주식회사를 만들고, 조선 각지에 대리점을 설치하여 관제일본연초를 매우 싼 값으로 조선인에게 판매하면서 판로를 넓혀간다. 각연초의 제조량과 금액은 조선이 약간 우세하였지만, 지궐련초에서는 일본이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통감부는 1909년 연초세법을 공포하여 조선인 생산자와 상인에게 연초재배세와 판매세를 조선인에게 부과함으로써 생산자와 상인의 이윤을 수위하고자 하였다.
7.2 조선인 연초업의 몰락
일제는 1910년 연초재배업과 제조업 및 판매업을 통제해갔다. 1914년에는 연초세령을 공포하여 1909년 제정한 연초세법의 내용을 강화하였다. 연초세율을 높이며 연초재배세와 판매세를 철저히 징수함으로써 연초재배업자와 판매업자를 규제하였다. 또한 연초세령을 공포하면서, 9개 지역에 48개 제조공장에만 연초제조를 허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영미연초회사는 중국으로 물러나고 영세한 조선인 연초제조업자들이 대거 몰락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인 연초제조업자들이 조선의 연초제조업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것은 다음 시기(1921년)의 연초전매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7.3 연초전매제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
일제는 1921년 7월 연초전매제를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총독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됨에 따라 재원을 마련해야 했고 그 재원의 일부를 연처전매제로 확보하려 하였다. 총독부는 1921년 전매국을 설치하여 연초, 인삼, 아편을 국가가 통제하는 전매제를 실시하였다. 그 중 총독부가 주력한 것은 연초전매제였고, 연초전매를 통하여 연초업의 모든 부문을 통제함으로써 그 이윤을 총독부가 독점하려고 하였다. 조선인들은 총독부의 연초전매제에 대하여 ‘비경작운동’을 벌이거나 금연운동을 전개, 전매령을 위반하는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참고문헌
김정화 저, 담배이야기, 지호 2000
강준만 저, 담배의 사회문화사, 인물과사상사 2011
이이영, 손왕주 저, 겨자씨만한 역사 세상을 열다, 가림출판사 2012
김지섭 저, 우리 문화 이야기, 초당 2001
  • 가격2,3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4.06.27
  • 저작시기2014.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2635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