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tfried sem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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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Gottfried semper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Austria _
Naturhistorisches Museum(자연사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미술사박물관)

Germany _
Semper opera house(젬퍼오퍼)
Richard-Wagner-Festspielhaus(바그너축제국립극장)

본문내용

트너, 주제페 시노폴리, 허버트 블롬슈테트 등의 음악감독들이 거쳐갔다.
#건물
-전체적인 양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따랐고, 2개의 아케이드로 구성된 2층 건물이 3층을 받치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양쪽 벽에는 벽감을 파서 셰익스피어, 소포클레스, 몰리에르, 유리피데스 등 그리스에서부터 16, 17세기 유럽의 유명 극작가들이 조각을 배치해 놓았다.
-출입구 꼭대기에는 흑표범이 끄는 사두이륜(四頭二輪)마차 조각상이 디오니소스상과 함께 서있다.
-젬퍼오퍼 앞의 큰 광장에도 동상이 하나 서있는데 젬퍼오퍼를 짓도록 명령을 한 작센 요한 왕의 동상이다. 인테리어 설계는 요하네스 실링 등 당시 유명한 건축가들이 맡았다. 출입문 위에는 볼프강 괴테, 프리드리히 쉴러, 윌리엄 셰익스피, 소포클레스, 몰리에르, 유리피데스 등 문호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내부
-무대막은 1875년 다름슈타트 출신의 페르디난드 켈러가 디자인한 것으로 무대막 중앙의 그림은 프란츠 티펠이 그린‘열정의 횃불을 들고 있는 환상’ 이다. 젬퍼오퍼에는 극장 로비 곳곳에는 작가 에른스트 리첼, 에른스트 율리어스 하넬 등의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에피소드
-무대 위 중앙에 시계가 하나 있는데 이 시계를 만든 계기가 되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때는 19세기 중반. 드레스덴 젬퍼오퍼에서는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작센의 왕이 었던 프레드릭 아우구스투스 2세도 함께 자리한 공연이었다. 공연 도중 여기저기서 나지막한 종소리가 들렸다. 청중들 중 일부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신의 회중시계의 미닛리피터를 작동한 것이다. 이것이 거슬려서 였을까 공연 직후 왕은 오페라 하우스를 건축한 저명한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를 시켜 오페라 하우스 내부에 모든 청중이 볼 수 있는 시계를 설치 할 것을 명령하게 된다. 이후 이 작업은 시계 제작자 이자 왕실의 기술자였던 요한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쿠케스에게 맡겨졌다. 가장 큰 문제는 어두운 극장 내부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시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우선 모두가 볼 수 있을 정도로 만들려면 엄청난 자리를 차지하는 원형의 시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대를 가지리 않고 이렇게 시계를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쿠케스에 의하여 고안된 것이 2개의 드럼으로 구현되는 점핑 아워 형식의 시계였다. 왼쪽에는 로마 숫자로 시간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아라비안 숫자로 분이 표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쿠케스에게는 페르난드 에이브라함 랑에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와 함께 오페라 극장에 설치 될 시계를 완성하게 되었다. 분이 5분 마다 표시가 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어 파이브 미닛 클락이라고 불렀다. 랑에가 만든 최초의 점핑 아워 클락이 탄생한 것이다. 이 시계가 현재의 자이트베르크 브랜드의 시초가 되었다.
Gottfried Semper와 Richard Wagner와의 관계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 형식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거기에 따라 과장되고 오페라하우스의 본질을 잊고 다른 목적을 쫓아가는 오페라하우스의 개혁을 위해 특히 힘썼다. 바그너와 젬퍼는 오랜 친구였고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특히 1849년 드레스덴에서의 5월 봉기에 함께 참가하여 당국의 수배를 받아 스위스로 도피한 것도 같다. 젬퍼는 이런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젬퍼오퍼를 설계함에 있어서도 바그너의 생각과 의도들을 극장 내부에 반영하였다. 젬퍼의 권유로 이 곳 젬퍼오퍼에서 바그너의 작품이 오페라도 초연되기도 했다. 이런 관계를 바탕으로 바그너가 제대로 된 오페라하우스를 뮌헨에 새로 만들려고 할 때 젬퍼에게 부탁을 했고 젬퍼는 젬퍼오퍼와 외부모습은 비슷하게 하며 내부는 바그너가 생각하는 개혁적 요소요소들을 고려하여 뮌헨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하게 되었다. 결국엔 실현되지 못하고 바이로이트에 바그너가 내부적인 극장 설계는 젬퍼의 것을 그대로 반영하되 외부의 모습만을 좀 더 검소하게 바꾸어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을 설립하였다.
Richard-Wagner-Festspielhaus
#개요
- 독일 아이에른주 바이로으트에 위치
- 1876년 개관, 규모는 객석은 1800석
- 바그너의 작품만 상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초연은 바그너의 '지그프리트’'신들의 황혼’'파르지팔
- 바그너가 축제극장을 건립하고자 1851년경부터 구상하기 시작하였고,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아 1872~1875년경에 건축하였다. <니벨룽의 가락지>의 전곡 초연으로 개관하였다. 이 곳의 특징은 바그너의 작품만을 상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고 다른 작품들은 무대 위에 오를 수 없다. 1883년 바그너가 죽은 후에는 바그너 음악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매년 여름, 바그너의 작품을 상연하는 바이로이트음악제가 개최된다. 이 음악제에는 바그너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바그너의 작품만이 공연되는데, 보통 <파르치발>과 다른 한 작품이 선정된다. 이 음악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7년간 중단되었다가 1951년부터 재개되었다.
#건물
-극장 외곽의 모습은 화려함을 보여주는 대신 실용적이고 검소하며 수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면 파사드만 전형적인 19세기 장식이고 나머지는 장식 없는 벽돌로 쌓아 올렸다. 겉의 모습이 검소하다 하여서 내부까지 그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내부
-공연을 위한 무대 설비는 최신 설비를 갖추었다. 객석 뒤 편에는 귀족을 위한 발코니석과 서민들을 위한 입석을 마련해 놓았다. 실내는 고대 그리스의 야외극장을 실내로 옮겨 놓은 구조이다. 시야확보 위해 객석의자를 지그재그로 배치하고 경사도를 높였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페라 공연시, 무대에는 배우들만 올라가고, 오케스트라는 무대와 객석 사이, 움푹 들어간 공간에 자리잡는다.(그래서 이곳을 pit라고 한다)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밑에서 위로 울려 올라온 뒤 극장의 천장과 옆 벽을 타고 확산되도록 하는데, 백 년이 넘은 목제 인테리어 탓에 부드럽고 풍성하면서도 신비로운 울림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글에 의하면, 오케스트라 핏이 너무 깊어 무대 위 가수들과 지휘자가 눈을 맞추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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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7.24
  • 저작시기201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3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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