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관방유적(성곽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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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관방유적(성곽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한국의 관방유적(성곽을 중심으로)


1.개요

2. 시대별 관방유적
(1) 청동기 시대
(2) 철기 시대

3.한국 성곽의 특징

본문내용

그리고 북쪽의 숙정문등의 4대문을 만든다. 초기에 토·석성이었던 것을 토성이 자주 무너지다 세종 때 석성으로 고쳐 후 숙종 때 대대적 보수를 하여 5백여 년 동안 서울을 방어한다.
남한산성
북한산성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울을 방어하던 군사요충지로서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당라의 침공에 대비해 문무왕 12년(672년)에 처음 축성하고 고려(1231년)때는 몽고의 공격을 받았지만 격퇴시켰던 곳이다. 현재의 성곽은 조선 인조(1624년) 때 동원된 관군과 승려들에 의해 석축으로 쌓기 시작하여 조선말까지 계속 증축한다. 외성·내성의 성벽 둘레는 약 12Km로 서쪽 청량산과 동쪽 벌봉을 연결한 포곡식 산성이다. 시설물로는 5개의 옹성과 4대문, 수어장대(수비 사령부)를 비롯하여 4개의 장대가 있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수어장대 뿐이다. 비상시에 이용하였던 16개의 암문, 봉수대2개 등이 있으며, 행궁 70여동이 있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조에 맞서 45일 동안 항전하다 항복을 하게 된 곳이다.
낙안읍성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 남내리에 걸쳐 있는 평지성이며 대표적인 민속마을중 하나이다. 초기 축성은 조선 태조 6년(1397년) 낙안 출신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토성을 쌓았다. 현재의 석축 성벽은 인조4년(1626년)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3년에 걸쳐 중수하였다. 성벽의 길이는 약1.4Km, 높이 4m, 세곳의 성문과 동헌 및 객사, 감옥터, 임장군의 비각 등이 있다.
해미읍성
서산군 해미읍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평지성으로 우리나라 읍성중 가장 완벽한 형태를 작추고 있다. 축성은 성종 22년(1491년)에 이루어졌으며 원형으로된 1.5Km의 성벽이 보존되고 있다. 네모난 돌, 장방형, 부정형은 갖가지 자연석을 맞추어 견고하게 쌓아올렸다. 성벽의 높이는 5m이며 성벽위에는 치첩이 설치되었다. 문은 동, 서, 남문이 있는데 이 가운데 남문 문루만 원상태이며 나머지는 모두 복원 하였다. 성안에는 병영과 객사, 호서좌영등 관아 건물들이 있었음을 해미현의 옛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수원 화성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의 한과 효심에서 축성되었다.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사상 가장 완벽한 제도를 갖춘 전축성이다. 지금까지 성곽 제도에는 없던 포루, 적대, 공심돈, 각루 등의 새로운 시설을 갖추게 된다. 축조는 정조18년(1794년)부터 20년까지 3년 동안 이루어졌다. 수원성 축조의 시말과 제도, 의식 등을 자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란 책을 통해 축성의 전모를 알 수 있다. 화성은 외형이 중국식을 모방하고는 있으나 지형을 이용하여 축성한 점은 우리나라의 성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설물로는 4대문을 비롯하여 암문4, 수문2, 적대4, 공심돈3, 봉수대1, 포루5, 장대2, 각루4, 포사3개소가 있고 성안에는 행궁과 부속 건물, 사작단, 공자묘 등을 축조하였다. 화성 축조에는 정약용이 참여하였으며 돌을 들어올리는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이것은 근대적 과학기술의 도입이이라 할 수 있다.
3.한국 성곽의 특징
첫째-산을 잘 이용하였다. 산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성곽을 만들되, 약점을 보완하는 각종 방법을 활용하였다. 산의 봉우리와 능선, 계곡에 적당한 시설을 배치하여 입체적 구성을 하였으며 멀리서 접근하는 적의 동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둘째- 산의 높은 곳에 위치함에 따라 방어력의 증가를 꿰할 수 있다. 이때 성안의 백성들은 중요한 전투력이 될 수 있다.
셋째- 역대 도성에서 보듯이 천연의 방어력을 가진 강물과 산지 지형등을 최대로 이용하였으며, 산성과 평지까지를 포함하여 산성과 나성을 결합한 독특한 도성제도를 확립하게 된다.
넷째- 한국 성곽은 선사시대의 도랑과 목책과 같은 인류 문명의 발전 궤도와 같은 것에서 시작하여 토성과 석성을 축조하고, 일부는 벽돌을 이용하였다. 특히 석성은 타국(일본, 중국)과 달리 석재를 찾고 다듬어서 축조하는 방법을 쓰고 있어 축성 방식의 특성을 보인다고 하겠다.
다섯째- 독특한 형식의 문과 수구란 시설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식의 문의 구조로 평거식, 계단식, 현문(성벽바깥으로 사다리나 줄을 이용하여 출입하는 문), S자로 굽어드는문, 비밀통로인 암문과 각종 양식의 옹성을 시설하고, 물이빠지는 수문도 다양한 양식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양식이 적용된 사실은 그만큼 기술 응용에 있어서 입지와 지형의 조화를 이룸으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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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3.18
  • 저작시기2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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