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상사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교부들과 중세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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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 사상사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교부들과 중세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후기 기독교 교부들
Ⅱ.1. 아우구스티누스


Ⅱ.2.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에 서방신학
Ⅱ.2.1.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
Ⅱ.2.2. 오렌지 회의
Ⅱ.2.3. 영혼의 본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파우스트
Ⅱ.2.5. 교황 그레고리 1세


Ⅱ.3.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에 동방신학
Ⅱ.3.1. 위 디오니시우스
Ⅱ.3.2. 비잔티움의 레온티우스
Ⅱ.3.3. 크리소폴리스의 막시무스


Ⅲ. 결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당할 수 없다고 주장한 자들이다.
이러한 레온티우스의 이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플라톤적인 인간론, 본질과 위격을 명확히 구별하였던 캅바도키아교부 캅바도기아의 세 학자중 카이사랴의 바질이 위격과 본질을 구별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서요한 박사의 저서 「초대교회사」(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439p를 참고하라.
들의 방법론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의 주장은 후에 비잔틴 제국 내에서 칼케돈 기독론이 최종적인 승리를 얻도록 크게 기여한다. 후스토 L. 곤잘레스「기독교 사상사(Ⅱ)」 (한국장로교출판사, 2008), 128.
Ⅱ.3.3. 크리소폴리스의 막시무스
크리소폴리스의 막시무스(Maximus of Chrysopolis, 580-662)는 7세기의 인물로 기독교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기독론에 대해 설명한 사람이다. 그가 시기상으로는 중세 초기에 속한 사람이지만, 그의 사상이 기독교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잘 설명하고 있고, 레온티우스에서 발족된 사상적 흐름을 그가 계승하므로 그를 다루려고 한다.
그는 단에너지론(단의지론)에 반대한 인물인데, 단에너지론이란 “단의지론”이라고도 하며,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양태론”적인 성향을 가진 이론이었다. 당시의 단에너지론은 에너지의 활동 원리가 하나로만 기인하며, 두 개 이상의 활동 원리는 동시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단에너지론은 성자 하나님이 일하실 때, 그 본질은 하나님 자체이시고, 인간의 모습을 보이 실 때도 그 본질 자체이지만, 성자 하나님이 일하실 때 인성과 신성이 각자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이론이었다. Ibid,.
이러한 이론에 대하여 막시무스는 레온티우스의 이론을 바탕으로하여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막시무스는 “에너지” 혹은 활동원리는 본성에 적용 시킬 수는 있어도, 위격에 적용 시킬 수 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본성이 활동원리를 결정하지만, 위격은 개별성의 원리로 그 활동에 형식과 특수성을 부여해준다. 그리스도 안에 두 개의 본성이 있듯이 두 개의 활동원리가 틀림없이 있으므로 (레온티우스의 이론), 하나의 활동원리만을 주장하는 단에너지론은 배격되어야 한다고 서술한다. Ibid,.
막시무스와 레온티우스가 가지는 의의는 기독론에 있어서 기술적이고 미세한 부분까지 다루는 독창적인 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는 회교도의 통치 아래,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신성과 인성의 도덕적 연합을 주장한)과 단성론자들(에우티케스주의)이 자신들의 이권, 생존을 위해 대립하였고, Ibid, 129.
그 가운데 전통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신학은 과거 동방에서 비롯된 신학의 사변적 논쟁에 영향을 받아, 그들이 만들어 내거나 정의한 개념을 채용하여 신학에 적용,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Ⅲ. 결론
후기 기독교 교부들은 치열한 논쟁 속에서 이단의 정죄를 받는 무리와 정통으로 인정받는 무리가 생겨나고, 때로는 이권에 의해 회의가 결정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근거로 교회의 연합을 추구하였음에도 그들의 노력과는 달리 교회 내에서 이단이나 논쟁이 지속되었다. 서요한,「초대교회사」(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455.
그 과정에서 교부들의 신학은 경험을 통해 교리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후기 기독교 교부들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학의 전개와, 분파주의를 경계해서 생겨난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상과 성례의 규정은 교회의 권위를 높이는데 일조하였다. 허나, 그들의 노력에 의해 교회의 직제는 체계화 되고, 절기를 단순화 하였다. Ibid, 457.
철학과 사변에 대해서는 동방은 철학적 입장을 신학에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였음에도, 당시의 헬라철학의 주요지가 동방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변이 신학에 적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다수가 철학적 방법론의 채택을 거부하였다 하여도, 위 디오니시우스 같은 학자에 의해 철학을 통한 신학의 조명은 피해 갈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동방교부들이 비록 철학을 통한 신학의 조명을 반대했을지라도, 헬라철학의 주요지가 동방에 있었던 것 답게, 그들의 신학은 사변적으로 전개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시작된 그의 사상이, 이후에 시대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가 지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졌던 철학의 우호적인 태도는 서방 신학이 철학을 방법론적으로 채택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연옥에 대한 언급은 이후에 발전되어 미신적인 신앙을 제공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사상은 교황 그레고리 1세에 의해 받아들여져, 중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레고리 1세가 비록 미신적인 신앙을 발전시켜, 중세시대의 잘못된 노선에 영향을 미쳤다 할지라도 그가 후기 교부와 중세의 연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다.
중세 신학의 발전에는 후기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 형성된 사상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사상의 흐름 속에서, 마침내 중세의 이성(사변)과 철학을 통한 신학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사상의 흐름은 시대적 상황과 그 발전 과정에서 맞물려서 일어나는 것이며, 특히 후기 기독교 교부에서 중세로 가는 것과, 중세의 타락에는 이전부터 있었던 사상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상의 발전을 보더라도, 비 성경적인 위험한 사상을 배재하고, 그 시대의 배울 점을 현재 우리에게도 적용할 필요성 있다.
참고자료
후스토 L. 곤잘레스「기독교 사상사(Ⅱ)」 (한국장로교출판사, 2008)
E.G.제이,「교회론의 변천사」 (대한기독교서회, 2002)
헨리 베텐슨,「후기 기독교 교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서요한,「초대교회사」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도날드 K. 맥킴, 「교회역사를 바꾼 9가지 신학 논쟁」 (기독교연합신문사, 2005)
앨리스터 맥그래스, 「신학의 역사」 (시와사랑, 2013)
디아메이 맥클로흐, 「3천년 기독교 역사 Ⅰ: 고대사」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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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2.20
  • 저작시기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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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9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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