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마가복음 구조와 절별 주해
Ⅱ.단어연구
Ⅲ. 시대적 배경
Ⅳ.본문 문맥
Ⅵ.마태복음의 구원론
Ⅶ. 마가복음 기독론
Ⅱ.단어연구
Ⅲ. 시대적 배경
Ⅳ.본문 문맥
Ⅵ.마태복음의 구원론
Ⅶ. 마가복음 기독론
본문내용
.
스가랴13:2에 의하면 축귀는 “그 날에” 발생한다. “그 날”은 언제인가? “그 날”은 스가랴 12장 (3,6,8,9,11)절에 언급 되는데 이 날은 주변 민족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 이다. 그런데 이 날에 예루살렘은 보호받고 이방 나라들은 진멸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이스라엘이 외세로부터 군사적인 구원을 받는 때 이다. 이날은 유대인들이 기대한 새 출애굽 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강의안, 신현우, 32p.
/
유대인을 위한 메시아, 구원관의 중심성과는 달리 조금 더 확대되어 보면 8:11-12에 백부장과의 만남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유대인들은 새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배제 되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를 갊”은 마태복음에서 종말론적 심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Hagner, Matthew 1-13, 206).
마태복음의 구원론은 보편구원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청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청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선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처럼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순종의 행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마태복음 강의안, 신현우,125p.
유대인을 위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마태복음의 구원론은 전 세계적으로 열려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Ⅶ. 마가복음 기독론
씨 뿌리는 비유 (막4:1-29)
이 비유는 기독론적인 것으로 해석 될 수도 있다. 씨앗은 처음에 땅으로 사라져 없어진다. 그러나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온다. 이 비유에서 특이한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저절로 씨가 싹이 트고 자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의 의도적인 운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통하여 도래하고 그들이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행 되고 있었다. 예수님은 씨앗처럼 땅에 묻힌다. 그러나 다시 부활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다. 이 때 종말이 오게 된다. 추수는 유대교에서 종말을 가리키는 은유이다(Guelich, 243). 29절은 욜 3:13을 반영하고 있다(Marcus, Mark 1-8, 329).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욜 3:12-13). 재인용.
새 이스라엘은 아무도 기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온다.)
마가복음 핵심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8:35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고 예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구할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땅에 뿌려져 죽으면 살 뿐 아니라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마가복음 강의안, 신현우, 77p.
막6:36-44
예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목자 없는 양처럼 여기시고 종말론적 목자로서) 가르치셨다. 이것은 오병이어 기적의 기독론적 의미를 푸는 해석학적 열쇠이다. 예수님은 겔34:23에 나오는 그 종말론적 목자로 등장하고 있다. Guelich, 340, 재인용.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34:24)”
마가복음과 초대교회의 기독론은 초대교회는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라고 고백 되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다.( 신21:23) 초대교회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십자가의 저주를 무효로 하는 사건의 발생= 부활 (2)예수 자신의 신적 권위 주장,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신앙의 발생은 부활의 역사성을 요청하며 역사적 부활은 신앙의 발생을 설명하며, 동시에 이러한 신앙을 정당화 한다. 마가복음 강의안, 신현우, 213p.
여기에 더하여 10:45을 주목하여 보았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마가복음의 핵심인 8:35에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남들에게만 적용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 죽으시고 살리실 것을 말씀하셔 본이 되어 모든 부활을 이루고 구원을 이룰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마가복음의 기독론은 낮아지심을 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스가랴13:2에 의하면 축귀는 “그 날에” 발생한다. “그 날”은 언제인가? “그 날”은 스가랴 12장 (3,6,8,9,11)절에 언급 되는데 이 날은 주변 민족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 이다. 그런데 이 날에 예루살렘은 보호받고 이방 나라들은 진멸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이스라엘이 외세로부터 군사적인 구원을 받는 때 이다. 이날은 유대인들이 기대한 새 출애굽 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강의안, 신현우, 32p.
/
유대인을 위한 메시아, 구원관의 중심성과는 달리 조금 더 확대되어 보면 8:11-12에 백부장과의 만남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유대인들은 새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배제 되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를 갊”은 마태복음에서 종말론적 심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Hagner, Matthew 1-13, 206).
마태복음의 구원론은 보편구원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청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청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선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처럼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순종의 행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마태복음 강의안, 신현우,125p.
유대인을 위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마태복음의 구원론은 전 세계적으로 열려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Ⅶ. 마가복음 기독론
씨 뿌리는 비유 (막4:1-29)
이 비유는 기독론적인 것으로 해석 될 수도 있다. 씨앗은 처음에 땅으로 사라져 없어진다. 그러나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온다. 이 비유에서 특이한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저절로 씨가 싹이 트고 자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의 의도적인 운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통하여 도래하고 그들이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행 되고 있었다. 예수님은 씨앗처럼 땅에 묻힌다. 그러나 다시 부활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다. 이 때 종말이 오게 된다. 추수는 유대교에서 종말을 가리키는 은유이다(Guelich, 243). 29절은 욜 3:13을 반영하고 있다(Marcus, Mark 1-8, 329).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욜 3:12-13). 재인용.
새 이스라엘은 아무도 기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온다.)
마가복음 핵심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8:35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고 예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구할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땅에 뿌려져 죽으면 살 뿐 아니라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마가복음 강의안, 신현우, 77p.
막6:36-44
예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목자 없는 양처럼 여기시고 종말론적 목자로서) 가르치셨다. 이것은 오병이어 기적의 기독론적 의미를 푸는 해석학적 열쇠이다. 예수님은 겔34:23에 나오는 그 종말론적 목자로 등장하고 있다. Guelich, 340, 재인용.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34:24)”
마가복음과 초대교회의 기독론은 초대교회는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라고 고백 되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다.( 신21:23) 초대교회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십자가의 저주를 무효로 하는 사건의 발생= 부활 (2)예수 자신의 신적 권위 주장,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신앙의 발생은 부활의 역사성을 요청하며 역사적 부활은 신앙의 발생을 설명하며, 동시에 이러한 신앙을 정당화 한다. 마가복음 강의안, 신현우, 213p.
여기에 더하여 10:45을 주목하여 보았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마가복음의 핵심인 8:35에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남들에게만 적용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 죽으시고 살리실 것을 말씀하셔 본이 되어 모든 부활을 이루고 구원을 이룰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마가복음의 기독론은 낮아지심을 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