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대 중간과제 현대의 서양문화 B형 ‘서양 문명’의 그림자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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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방통대 중간과제 현대의 서양문화 B형 ‘서양 문명’의 그림자 ‘제국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서론

본론
1. 동양에서의 문명 개념 2. 서양에서의 문명 개념 3, 18세기의 문명이란 개념
4, 19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5. 콜럼버스 이후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역사 1) 콜럼버스와 북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2)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 정착민들과의 초기 관계 3)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 정착민들과의 관계 악화 4) 학살과 추방을 법으로 정한 사람들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경 95도를 따라 요새를 만들고 군 병력을 배치하여, 원주민들이이 경계선을 넘어 동부로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녹슨 농기구와 씨앗 망태기를 들고 초라한 모습으로 미시시피 강을 건넜다. 1830년‘인디언 강제 이주법 (Indian Removal Bill)’이 제정되었고, 이는 원주민들을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경제, 종교, 생활방식 등이 통제 가능한 보호구역으로 제정된 최초의 법 (1830. 05. 28)이법은 특히 남동부의 주 경계 내에 있는 인디언부족들을 그들의 영토에서 이주시키는 대가로 서부 대평원의 미개척지를 그들에게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이주시키는 첫 걸음이 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이주하지 않고 살려면, 백인들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여야만 남아있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 당시 동남부에 살고 있던 체로키(Chero kees)나 촉토(Choc taws)등의 5개 부족은 백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였고, 농장과 교회를 짓고, 문자를 사용하였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그들은 ‘문명화된 다섯 부족들(The Five Civilized Tribes)’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백인 정착민들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땅을 원했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원주민들이 얼마나 열심히 백인들의 생활방식을 배우고, 지키려 노력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들의 땅을 뺏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서쪽의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1838년 10월 체로키(Cherokees)족2은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주를 시작했고, 이를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 한다. 군인들이 겨눈 총부리에 마지테네시 동부 지역과 캐롤라이나 서부지역에서 살았다. 원래 5대호 주변에서 살았으나 델라웨어 족과 이로쿼이족에게 패한 후 남쪽으로 이주했다. 1650년에는 약 2만 2천 5백 명의 인구가 애팔래치아산맥 주변 1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원주민 보호구역의 대부분의 땅은 농사에 부적합하였고, 정부로부터 지원된농기구들은 거의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식량을 자급할 수 없었고, 정부의 배급에 의존해야만 했다. 많은 종족들이 거의 멸족이 되다시피 했고, 워싱턴의 관리들이 떼어준 쓸모없는 땅 조각인 인디언 보호지역에서 돌림병으로 죽어갔다 줄어드는 원주민의 영토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1492년)에서 마지막 운디드니의 전투(1890년)까지 식량도 중간에서의 농간으로 제대로 배급되지 못하고, 항의라도 할 것 같으면 총검이 겨누어졌다. 자유롭게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던 그들의 영혼은 병들어갔고, 화병으로 몸을 망치는 경우도 많았다. 1848년 당시 서부에는 수백 개에 이르는 자주적인 원주민 공동체들이 수세기 동안 발전시켜 온 문화를 향유하며,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세대가 채 지나가기 전에 이들 공동체들은 영토의 대부분을 강탈당하고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제약 당했다. 그만큼 넓은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토록 짧은 기간에 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그처럼 폭력적인 단절을 경험한 경우는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사들의 개인적인 탁월함, 그리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그토록 많은 원주민들을 생각할 때 서부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무너졌다.
결론
서양에서 만들어진 ‘문명’이라는 명사의 시초는 1756년 프랑스의 미라보 1세가 만들어 낸‘civilisation(시빌리자시옹)’으로 보고 있다. 이 단어는 1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유럽에 등장했다. 서양의 근대문명으로 인간의 물질적 삶은 개선되었고 나날이 진보했다. 하지만 이 진보의 역사는 곧 인간에 의한 자연 공격, 정복과 약탈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을 향한 공격과 정복, 약탈의 역사는 아득한 시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대적이고 철저한 자연 공격, 정복과 약탈 즉 ‘진보’가 시작된 것은 과학적 지식의 체계화와 과학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기초한 근대 과학 문명의 탄생과 때를 같이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문제를 자연환경의 보존이라는 측면보다는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윤리적 관점에서 실마리를 삼고자 한다. 즉, 인간이 도덕과 윤리를 과연 어디까지 -어느 대상까지 -실천할 수 있냐는 문제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후는 지구상의 소수의 나라들이 전 세계를 자신의 영토로 복속시키기 위해 대규모 침략을 자행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영토 분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등 모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열강들이었다. 이들 열강들이 비서구 사회에서 행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행위들을 보통 우리는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라 부른다.
1880~1890년대 영국의 순조로운 팽창은 제국주의를 대영제국의 번영과 진보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여기게끔 하였다. 그러나 1870년경부터 제국주의라는 말은 근대적인 의미를 가진 말로 사용되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회적 불안이 증대하는 한편 자본주의 국가 간의 팽창주의적 경쟁이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세계 각처에 식민지를 두고 토착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으며,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미국 또한 제국주의적인 색채와 불개입 정책이라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며, 안방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토착민인 인디언들을 학살하며 아메리카대륙을 정복해나갔다. 따져보면 ‘문명’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시혜처럼 베푼 문명의 광채는, 불공정 무역의 강매와 기독교적 신앙 강요와 백인우월주의의 편견 어린 이민족에 대한 억압과 폭력뿐이었다.
참고문헌
- 규정과 지배. 마흐무드 맘나니 지음/최대희 옮김. 창비. 2017
- 하와이 원주민의 딸. 하우나니 카이 크라스크 지음/이일규 옮김. 서해문집. 2017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디 브라운 지음/최준석 옮김. 나무시는사람. 2002
- 시팅불. 로버트.M. 어틀리 지음/김옥수 옮김. 두레. 2001
- 그들이 온 이후. 워드 처칠 지음/황건 옮김. 당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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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9.21
  • 저작시기2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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