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Her Lover)
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LOVER
- 요리사, 도둑, 그의아내 그리고 그의 연인 -
감독 : 피터 그리너웨이
각본 : 피트 그리너 웨이
음악 : 마이클 니만
주연 : 마이클 갬본(알버트), 헬렌 미렌(조지아), 팀로스(마이클)
제작국가 : 영국 or 프랑스 or 프랑스와 네델란드의 합작 or 프랑스와 홍콩의 합작
(사이트마다 다른 제작국가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어느것이 맞는지 못찾았음)
제작년도 : 1989년
제작사 : 키스 카산더 (Kees Kasander)
1. 영화 이야기
2. 감독 이야기
◎ 그의 배경이야기
◎ 그의 영화이야기
◎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연인에서 말하는 영화 이야기
◎ 그를 대표하는 것들
3. 영화속 음악이야기
◎ 마이클 니만의 이야기
◎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연인에서 말하는 음악 이야기
◎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연인 의 대표곡
4. 영화속 인물 이야기
◎ 알버트 역 / 도둑 / 마이클 갬본
◎ 조지아 역 / 도둑의 아내 / 헬렌 미렌
◎ 마이클 역 / 그녀의 연인 / 팀로스
◎ 리차드 역 / 일류 요리사 / 리차드 보링거
5. 영화 이야기 ( 줄거리 )
6. 영화에 주목해야 하는 몇가지들
7. 영화의 구조적 이야기
◎ 연극적 형태
◎ 컬트적 영향
8. 영화속 의미
◎ 제목에서 나타나는 의도
◎ 영화의 시간 흐름에서 나타나는 의도
◎ 색채와 의상으로 나타나는 의도
◎ 공간에서 나타나는 의도
◎ 비정상적인들 - 등장인물들의 행동 분석
◎ 해석에 따른 의미
◎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9. 전체적인 감상
(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Her Lover)
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LOVER
- 요리사, 도둑, 그의아내 그리고 그의 연인 -
감독 : 피터 그리너웨이
각본 : 피트 그리너 웨이
음악 : 마이클 니만
주연 : 마이클 갬본(알버트), 헬렌 미렌(조지아), 팀로스(마이클)
제작국가 : 영국 or 프랑스 or 프랑스와 네델란드의 합작 or 프랑스와 홍콩의 합작
(사이트마다 다른 제작국가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어느것이 맞는지 못찾았음)
제작년도 : 1989년
제작사 : 키스 카산더 (Kees Kasander)
1. 영화 이야기
2. 감독 이야기
◎ 그의 배경이야기
◎ 그의 영화이야기
◎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연인에서 말하는 영화 이야기
◎ 그를 대표하는 것들
3. 영화속 음악이야기
◎ 마이클 니만의 이야기
◎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연인에서 말하는 음악 이야기
◎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연인 의 대표곡
4. 영화속 인물 이야기
◎ 알버트 역 / 도둑 / 마이클 갬본
◎ 조지아 역 / 도둑의 아내 / 헬렌 미렌
◎ 마이클 역 / 그녀의 연인 / 팀로스
◎ 리차드 역 / 일류 요리사 / 리차드 보링거
5. 영화 이야기 ( 줄거리 )
6. 영화에 주목해야 하는 몇가지들
7. 영화의 구조적 이야기
◎ 연극적 형태
◎ 컬트적 영향
8. 영화속 의미
◎ 제목에서 나타나는 의도
◎ 영화의 시간 흐름에서 나타나는 의도
◎ 색채와 의상으로 나타나는 의도
◎ 공간에서 나타나는 의도
◎ 비정상적인들 - 등장인물들의 행동 분석
◎ 해석에 따른 의미
◎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9. 전체적인 감상
본문내용
항하지 않고 혁명가들을 끝까지 보호해주면서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배설이 이루어지는 화장실에서의 그 온통 하얀 조명과, 여성의 흰색 옷은 어떠한 신성한 무엇인가를 나타내준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암시적인 부분은 책을 찢어 입에 넣고 죽임을 당한 정부의 입에 남아 있던 페이지에는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적혀 있다. 이 영화와 프랑스 대혁명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칼맑스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계급, 성, 인종, 민족 등 복잡한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에 얽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알튀세는 맑스의 논의를 발전시켜, 환원불가능한 모순의 중층결정과 최종심급에서 경제에 의한 결정을 주장한다. 사회구조는 단일한 중심적 모순으로 환원불가능한 나름의 독자적 영역을 갖는 제 모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 모순들중에서 구체적 정세 속에서 어떤 모순이 지배적 것으로 되도록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 층위이라는 것이다. 알튀세의 논의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해방의 전략은 짠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를 목표로한 각 모순 극복을 위한 해방의 주체들의 연대를 통한 저항의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것일 것이다.
영화 '요리사,도둑,그의 아내,그리고 정부'는 부르조아와 남성 권력에 저항하여 노동자와 여성이 저항의 헤게모니를 창출한다. 영화는 식당을 주요 무대로 삼는다. 여기서 식당은 단순한 '먹는 곳'이 아닌 생산수단의 소유에 기반한 계급 권력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관철되는 곳이다. 식당의 소유자는 자신의 지배적 권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전략을 통한 자신의 헤게모니를 창출한다. 그는 주방을 순회하며 요리사들에게 자신이 식당의 소유자라는 것을 환기시키며, 자신의 수하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각인시킨다. 또한, 그의 아내 조지아를 부하들 앞에서 끊임없는 모욕을 주면서 자신이 그녀의 '소유권자'임을 확인시킨다. 그녀는 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차례 도망을 시도했지만, 끝내는 그의 손아귀는 벗어나지 못한 채 그의 놀이개감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견고하게만 보이던 자본가의 지배체제에 분열의 틈새가 벌어진다. 식당에 책을 읽는 한 남성이 나타난 것이다. 그 남자와 조지아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들은 화장실과 주방에서 밀애를 즐긴다. 식당의 요리사인 노동자들은 그들의 밀애를 자본가의 눈에 띄지 않도록 도와 준다. 그러나, 식당의 자본가는 결국에는 그들의 탈주를 찾아내고, 조지아의 애인은 종이가 식도에 막힌 채 처참하게 피살된다. 식당의 소유자는 자신의 체제에서 이탈하는 자를 절대로 용납치 않는 것이다. 이탈자에 대한 물리력을 통한 철저한 말살만이 부르조아 체제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긍국적 수단인 것이다.
조지아는 애인의 죽음에 분노한다. 그녀의 더이상 수동적 탈주자가 아닌 체제에 대한 직접적 파괴자로 전화된다. 그녀는 식당의 요리사에게 자신과의 연대를 요청한다. 요리사는 그녀와 연대하여 마침내 부르조아 권력의 전복을 위한 대항 전선을 구축한다. 조지아의 애인은 요리사에 의해 '인간 요리'가 되고, 자본가는 조지아와 요리사에 둘러 싸여 공포속에 전율하며 그 요리를 먹게 된다.
영화는 성모순과 계급모순의 담지자들이 연대하여 계급과 남성 권력이 작동하는 기존 체제를 파괴하는 것을 주요 테마로 한다. 그런데, 조지아와 그녀의 애인과의 '사랑'이 직접적인 파괴의 촉매로 작동하고, 조지아가 저항의 헤게모니 창출을 위한 정지적 조직자 역할을 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구조적 모순은 단지 저항의 행동화에 기본적인 개연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이고, 직접적 행동화는 우연적인 요소들이 맞물리는 구체적 정세 속에서 정치적 요소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화는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9. 전체적인 감상
도둑과 아내, 그리고 요리사의 관계를 보면 이들 모두 도둑을 싫어하나 그들만의 필요에 의해 도둑 곁에 있게 된다. 도둑은 도둑 나름대로 요리사를 보호하고 그의 예술성을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둑은 아내를 정숙하고 바르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욕망을 표출시키는 대상으로 여긴다. 즉 그의 콤플렉스를 감추는 대외용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식욕 또한 그의 성적 콤플렉스를 감추는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틀을 깨버리는 계기가 바로 정부이다. 정부는 지식인이다. 아내를 일깨운다. 그리고 아내를 도둑에게서 도망치게 한다. 또한 요리사는 아내의 일탈을 도와주게 된다. 이러한 구조로 볼 대 이것은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에게 억압되어 있는 군중들을 펜으로 일깨우는 지식인과 그를 돕게 되는 예술가의 관계를 나타내면서 아내의 일탈은 하나의 ‘혁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식인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식인장면이 이 영화를 ‘컬트’영화라 칭하는 결정적인 계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식인’ 자체를 반윤리적이고 끔찍한 일로 매도한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범죄이고 공포이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끝없는 식욕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식인’이 인간의 욕망의 결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도중 이와 아주 흡사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한국영화를 하나 생각해 내게 되었다. 바로 ‘301, 302’ 이다. 많은 영화들이 음식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두 영화는 음식에 대한 욕구를 인간의 욕망에 비유하고 마지막으로 ‘식인’이라는 소재를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는 극명한 사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 나타나는 식인은 조금 차이가 있다. ‘요리사, 도둑...’에서는 끝임없이 이어지는 먹이사슬식 권력구조를 나타내고 있지만 ‘301, 302’에서는 불안전한 두 인간의 자아가 식인으로서 화합과 안정을 찾는다는 것에 차이를 두고 있다.
아무튼 마지막의 식인 장면에서는 인간의 욕망의 끝이 얼마나 허무한지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나타내면서 순식간에 바뀌는 권력구조를 보면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아이러니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칼맑스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계급, 성, 인종, 민족 등 복잡한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에 얽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알튀세는 맑스의 논의를 발전시켜, 환원불가능한 모순의 중층결정과 최종심급에서 경제에 의한 결정을 주장한다. 사회구조는 단일한 중심적 모순으로 환원불가능한 나름의 독자적 영역을 갖는 제 모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 모순들중에서 구체적 정세 속에서 어떤 모순이 지배적 것으로 되도록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 층위이라는 것이다. 알튀세의 논의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해방의 전략은 짠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를 목표로한 각 모순 극복을 위한 해방의 주체들의 연대를 통한 저항의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것일 것이다.
영화 '요리사,도둑,그의 아내,그리고 정부'는 부르조아와 남성 권력에 저항하여 노동자와 여성이 저항의 헤게모니를 창출한다. 영화는 식당을 주요 무대로 삼는다. 여기서 식당은 단순한 '먹는 곳'이 아닌 생산수단의 소유에 기반한 계급 권력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관철되는 곳이다. 식당의 소유자는 자신의 지배적 권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전략을 통한 자신의 헤게모니를 창출한다. 그는 주방을 순회하며 요리사들에게 자신이 식당의 소유자라는 것을 환기시키며, 자신의 수하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각인시킨다. 또한, 그의 아내 조지아를 부하들 앞에서 끊임없는 모욕을 주면서 자신이 그녀의 '소유권자'임을 확인시킨다. 그녀는 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차례 도망을 시도했지만, 끝내는 그의 손아귀는 벗어나지 못한 채 그의 놀이개감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견고하게만 보이던 자본가의 지배체제에 분열의 틈새가 벌어진다. 식당에 책을 읽는 한 남성이 나타난 것이다. 그 남자와 조지아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들은 화장실과 주방에서 밀애를 즐긴다. 식당의 요리사인 노동자들은 그들의 밀애를 자본가의 눈에 띄지 않도록 도와 준다. 그러나, 식당의 자본가는 결국에는 그들의 탈주를 찾아내고, 조지아의 애인은 종이가 식도에 막힌 채 처참하게 피살된다. 식당의 소유자는 자신의 체제에서 이탈하는 자를 절대로 용납치 않는 것이다. 이탈자에 대한 물리력을 통한 철저한 말살만이 부르조아 체제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긍국적 수단인 것이다.
조지아는 애인의 죽음에 분노한다. 그녀의 더이상 수동적 탈주자가 아닌 체제에 대한 직접적 파괴자로 전화된다. 그녀는 식당의 요리사에게 자신과의 연대를 요청한다. 요리사는 그녀와 연대하여 마침내 부르조아 권력의 전복을 위한 대항 전선을 구축한다. 조지아의 애인은 요리사에 의해 '인간 요리'가 되고, 자본가는 조지아와 요리사에 둘러 싸여 공포속에 전율하며 그 요리를 먹게 된다.
영화는 성모순과 계급모순의 담지자들이 연대하여 계급과 남성 권력이 작동하는 기존 체제를 파괴하는 것을 주요 테마로 한다. 그런데, 조지아와 그녀의 애인과의 '사랑'이 직접적인 파괴의 촉매로 작동하고, 조지아가 저항의 헤게모니 창출을 위한 정지적 조직자 역할을 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구조적 모순은 단지 저항의 행동화에 기본적인 개연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이고, 직접적 행동화는 우연적인 요소들이 맞물리는 구체적 정세 속에서 정치적 요소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화는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9. 전체적인 감상
도둑과 아내, 그리고 요리사의 관계를 보면 이들 모두 도둑을 싫어하나 그들만의 필요에 의해 도둑 곁에 있게 된다. 도둑은 도둑 나름대로 요리사를 보호하고 그의 예술성을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둑은 아내를 정숙하고 바르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욕망을 표출시키는 대상으로 여긴다. 즉 그의 콤플렉스를 감추는 대외용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식욕 또한 그의 성적 콤플렉스를 감추는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틀을 깨버리는 계기가 바로 정부이다. 정부는 지식인이다. 아내를 일깨운다. 그리고 아내를 도둑에게서 도망치게 한다. 또한 요리사는 아내의 일탈을 도와주게 된다. 이러한 구조로 볼 대 이것은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에게 억압되어 있는 군중들을 펜으로 일깨우는 지식인과 그를 돕게 되는 예술가의 관계를 나타내면서 아내의 일탈은 하나의 ‘혁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식인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식인장면이 이 영화를 ‘컬트’영화라 칭하는 결정적인 계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식인’ 자체를 반윤리적이고 끔찍한 일로 매도한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범죄이고 공포이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끝없는 식욕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식인’이 인간의 욕망의 결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도중 이와 아주 흡사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한국영화를 하나 생각해 내게 되었다. 바로 ‘301, 302’ 이다. 많은 영화들이 음식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두 영화는 음식에 대한 욕구를 인간의 욕망에 비유하고 마지막으로 ‘식인’이라는 소재를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는 극명한 사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 나타나는 식인은 조금 차이가 있다. ‘요리사, 도둑...’에서는 끝임없이 이어지는 먹이사슬식 권력구조를 나타내고 있지만 ‘301, 302’에서는 불안전한 두 인간의 자아가 식인으로서 화합과 안정을 찾는다는 것에 차이를 두고 있다.
아무튼 마지막의 식인 장면에서는 인간의 욕망의 끝이 얼마나 허무한지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나타내면서 순식간에 바뀌는 권력구조를 보면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아이러니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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