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가와 즐거운 사라를 통해 본 한국 호색문학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변강쇠가와 즐거운 사라를 통해 본 한국 호색문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변강쇠전
1) 줄거리
2) 인물 소개
3) 작품에 대한 사회적 평가
2. 즐거운 사라
1) 줄거리
2) 인물 소개
3) 작품에 대한 사회적 평가
3. 두 작품의 비교
4. 이들의 의미
1) 현실적 규제에 대한 반항
2) 성적(性的) 자유에 대한 욕구
3) 새로운(적극적) 여성상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적인 욕구는 식욕과 달리 많은 억압을 받아 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억압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본연의 자유와 욕구에 충실한 인물이 옹녀와 사라이다. 강쇠의 죽음으로서 자신의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 여러 남자들을 유혹하는 옹녀와, 사라의 삶이 결국 스스로 즐겁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은 성의 자유라는 욕구를 실현하고자하는 인간으로 당시의 사회현실이 갖는 윤리와 도덕적 관념으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3) 새로운(적극적) 여성상
크게 잡아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관점으로 살펴볼 때 이 옹녀와 사라의 극단적인 모습은 주로 가부장제의 성차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성적인 자유는 주로 남자의 모습에서만 찾으려는 모습은 이런 점을 대표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해 남성의 입장보다 더 반기를 드는 모순 된 잣대와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옹녀와 사라가 보인 당당함은 여성의 입장에서 속이 시원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변강쇠 역시도 가부장제적인 모습을 가진 인물로 옹녀에게만 정절을 요구하며 수절을 강요한다. 이러한 변강쇠의 모습은 사라 역시도 길게 기른 손톱과 진한 화장, 그리고 깊게 파인 옷에 대해 요조숙녀를 강요하며 호통을 치면서도 자신도 힐끔거리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모습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가부장제가 가진 모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서 나가는 두 여성의 모습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여성들에 비해 새로우면서도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세 가지의 의의는 결국 하나의 큰 의미로 묶을 수 있다. 이 현실에 대한 반항과 자유에 대한 욕구에 충실한 적극적인 여성상의 인물들은 결국 호색문학에서 긍정하는 성에 대한 자유로운 욕구표출과 윤리와 잣대를 벗은 노골적인 성을 묘사한다. 그녀들은 사회의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통해 금기시 되어 왔던 성애를 해소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들 문학이 갖는 한계점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6마당의 작품들 중에 변강쇠전만이 유독 빠르게 사라져 지금은 사설만이 존재하는 이유는 판소리 사설에서 소설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대중적 생명력을 누리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즐거운 사라가 출간 당시 많은 이슈를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이름이 높았지만 스테디셀러로는 남을 수 없었던 이유도 어떤 큰 가치를 가진 위대한 정신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문학의 생명이 100년, 200년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가 되는 것에 반해 호색문학은 작품 출현 당시 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이목은 끌 수 있지만 그 생명력이 짧다. 이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던 외설이냐 예술이냐의 논란에서 벗어나 호색문학이 나아 갈 길을 말해준다. 호색문학은 성에 대한 자유에의 긍정을 갖는 동시에 생명력이 짧은 단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호색문학은 연구해 볼 많은 가치를 갖고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우리의 판소리 중 하나인 변강쇠전과 1990년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비교해보고 그 의미를 분석해보았다.
변강쇠전의 경우 성적 욕망에 충실했던 옹녀는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마을이나 강쇠 등에게 내침을 당하나 거기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다는 점에서 사라와 같은 행보를 걷고 있다. 다만, 당시 사회 상황 상, 여성 혼자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었던 옹녀는 부모의 원조를 받는 사라와는 달리 경제력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옹녀와 사라는 둘 다 성적 욕망을 갖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던 반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서로 달랐던 경제력은 옹녀와 사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 하겠다.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가치를 찾는 대신, 옹녀나 사라는 자신의 욕망에 걸맞는 상대를 찾는다는 것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옹녀는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남자를 만나고 사라는 자신의 성욕의 충만을 위해 남자를 찾는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의 대안으로 다가온 뎁득이나 기철 역시 두 여자에게는 만족이 될 수 없었다.
두 작품을 비교·분석하여 본 결과 나름의 호색문학이 갖는 사회적·문학적 의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본고는 현실적 규제에 대한 반항, 성적 자유에 대한 욕구, 새로운 여성상의 대두 등으로 나눠 분석해 보았고 그 결과 반항과 욕망의 표출이라는 호색문학이 일반 대중들에게 주었던 대리만족을 주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러한 대리만족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대중이 느끼는 공통적인 쾌감이었기에 두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비슷한 경향으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다시 말해 호색문학은 꼭꼭 숨겨놓고만 있던 순수하고 진실된 욕망을 문학속의 주인공에 통해 대리만족을 할 수 있게 한다.
T.S 엘리어트가 말했듯 위대한 정신이 살아 있지 않은 문학작품은 재밌는 작품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여자의 평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의 저명한 작품은 작가의 사상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호색의 부분보다 주가 되었다. 그러나 <변강쇠가(변강쇠전, 가루지기타령)>와 <즐거운 사라>는 그와 반대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사상이 녹아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욕구를 대리만족시키는 부분들이 주를 이뤘다. 즉 위대한 정신이 주가 되지 않았기에 이 작품들의 생명력은 짧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말단적인 자극을 주로 추구하는 호색문학의 생명력이 타문학에 비해 빨리 소멸되는 것도 여기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상이긴 하지만 존재는 하는 <변강쇠가(변강쇠전, 가루지기타령)>의 작가와 <즐거운 사라>의 작가에 대한 많은 논란들과 작품에 대한 논란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 호색문학 쪽에 대한 논란들은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기에 양시론적인 입장을 취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Ⅳ. 참고문헌
마광수 <즐거운 사라>. 서울 문화사. 1991
정혜신, <남자 VS 남자 >, 개마고원, 2001
네이버 백과사전 - Keyword : 호색문학
네이버 오픈사전 “변강쇠와 옹녀의 이름”
  • 가격1,4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8.03.26
  • 저작시기201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5086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