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는 이름의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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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의사라는 이름의 테러리스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주도자로서 결국 그 국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권력자’인 것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의 고위간부들이 제국일본의 대동아노선을 결정하고 조선과 동아시아의 침략전쟁을 추진하였다면 미국의 국민들은 그들의 국민된 권리로서 미국의 여론을 형성하고 미국의 정권을 교체 또는 유지 가능케 한다. 결국 미국의 고위관리를 목표로 삼는다고 하여도 미국의 정책과 노선은 선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은 미국의 민간인들을 공격함으로써 그들의 국민여론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反부시진영을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였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무관심하였던 여론 층을 각성케 한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언론의 힘은 강대함의 수준을 넘는다.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이미지를 부여, 각인 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언론을 통제하고 수단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거대언론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 왜곡이 이루어 졌던가. 팔레스타인, 이라크, 북한 등 미국의 표적 중 그 어느 하나도 이미지 왜곡(심지어 악의 축)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거’가 어떻게 ‘테러’라는 이미지를 벗게 된 것일까. 1932년 5월 1일자 조선일보에서는 홍커우 사건을 실으면서 ‘범인윤봉길’이라는 표제를 달았다. 만약 광복을 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도 일제치하의 한국이었다면 의사윤봉길이 아닌 범인윤봉길은 아직까지도 역사 교과서에 실렸을 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의 국력 신장은 국제적 발언권을 높여주었고 역사의 해석까지 가능케 한 것이다.
훗날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수립한다면, 이라크가 미국의 국력을 능가한다면 지금의 테러들은 어떻게 평가를 받게 될까. 누가 더 거대한 발언권을 쥐는가, 자의적인 역사 해석이 가능한 국력을 가지는가. 테러와 의거의 차이는 결국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맺는 말 結 -
이제까지 우리들이 ‘의거’라 부르고 추앙해왔던 과거 우리의 무장 항일 투쟁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테러이다. 요즈음 언론을 통해 이슬람이나 여타 지역의 테러를 보면서, 우리들은 그것이 반인륜적이고 비겁한 행위라며 비난한다. 물론, 테러는 고귀한 인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도 얼마 전에는 그들과 마찬가지 상황의 약자이었으며, 우리의 무장투쟁 또한, 그 당시 제3자의 입장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한 명백한 테러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우리나라가 강자였던 일본의 폭력에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으로써의 항거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테러와 같이 ‘어떤’ 폭력은 정당화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조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의거’라고 배워왔고 의심해오지 않았던 과거 우리의 무장투쟁과 현재 우리가 비난하는 테러(?)사이에 과연 큰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단순히 민족주의 시각에서 편견을 가지고 이들 둘을 차별해 온 것은 아닐까? 이번 우리조의 발표를 통해 한번쯤은 열린 시각에서, 이들 둘을 같은 입장에 두고 편견 없이 바라봐 주셨으면 한다.
  • 가격1,2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8.03.27
  • 저작시기201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5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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