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국사역사] 조선왕조실록 요약(정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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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국사역사] 조선왕조실록 요약(정리)3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효종
2. 현종
3. 숙종
4. 경종
5. 영조
7. 정조
8. 순조
9. 헌정
10. 철종
11. 고종
12. 순종

본문내용

대리청정 중에 병으로 요절하고, 할아버지 순조의 건장의 급격히 악화되자 8세의 나이로 조선시대 최연소 왕으로 즉위.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 함.
▣ 풍양 조씨
- 재위기간은 약 15년으로 짧지 않지만 23세에 승하
-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는 풍양 조씨 가문의 사람으로 풍양 조씨의 권세가 높아짐
- 세도정치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어렵고, 탐관오리들의 부정행위가 심해짐
예)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 성행
▣ 오가작통법 실시
- 헌종 시기에도 천주교 신자들을 엄하게 벌하고, 대대적인 숙청과 귀양을 단행
- 오가작통법은 다섯 집을 하나로 묶어 한 집이라도 천주교 신지가 나오면 나머지 네 집도 엄하게 벌 함
※ 춘추천국시대 법가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이웃을 감시하게 해서 국가 통솔하는 제도
- 조선 후기에는 막대한 세금이나 부역을 피하고자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 오가 작통법을 통해 연대책임을 물어 사회 통제
- 오가작통법을 이용해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음(기해박해)
제25대. 철종
· 생애 : 1831~1863년
· 재위기간 : 1849~1863년
· 묘호 : 철종
· 즉위 :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 헌종 10년에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 되었다가 1849년 순원왕후의 명으로 19세에 왕이 됨. 헌종과는 9촌 사이.
▣ 철종 즉위
- 조선 24대 임금 헌종은 후사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남
- 조선의 25대 임금으로 강화도령이었던 이원범이 즉위 함
※ 사도세자의 후궁 숙빈 엄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은언군을 가졌음
- 철종은 헌종과 마찬가지고 안동 김씨 가문의 딸을 왕비로 맞음 → 외척세력
▣ 임술농민봉가
- 안동 김씨 세력의 매관매직과 전횡,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시달림
※ 삼정은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전세(토지세), 군포(국방비), 환곡을 말함
※ 환곡은 봄에 쌀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갚게 하는 비민구휼제도
- 탐관오리들은 삼정을 빌미로 터무니없이 많은 세금을 갈취
예) 황구(어린아이들에게 세금 부과), 백골징포(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세금 부과)
- 진주민란(임술농민봉기)가 발발 → 농민봉기 전국 확대 → 정부는 상황 수습을 위해 삼정이정청이라는 특별기구 설치
▣ 철종의 죽음(1863년)
- 15년의 궁중 생활로 몸이 허약해지면서 33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승하
제26대. 고종
· 생애 : 1852~1919년
· 재위기간 : 1863~1907년
· 묘호 : 고종
· 즉위 : 흥선대원군의 차남.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영조와 사도세자 후손들의 대가 완전히 끊기게 됨. 고종의 친부인 흥선대원군은 왕실 최고 어른 인 신정왕후 조씨와의 교섭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익종(효명세자)의 양자로 삼게 함. 결국 익종의 양아들로 왕으로 즉위.
▣ 흥선대원군의 10년 정치
- 흥선대원군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어린 아들을 대신해 10년 동안 섭정 함
- 흥선대원군은 왕권강화를 꾀하고, 밖으로는 통상수교 거부정책 단행
- 이 시기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로 인한 세도정치가 폐단이 극에 달했음
- 호포제 실시 : 부족한 국가 재정 충당을 위해 양반들에게 세금을 징수
- 서원 혁파 : 붕당 대립의 근거지고, 운영비가 많이 들던 전국 서원을 47개만 남김
- 경복궁 중건 : 임진왜란 후 소실된 경복궁을 재건(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 당백전 발행 : 경복궁 건설비용 충당을 위해 상평통보보다 100배가치 화폐 발행
⇒ 무리한 공사 부담 때문에 백성들 반발 및 인플레이션 초래
- 병인양요(1866년) : 프랑스와 무역거래 거부
- 신미양요(1871년) : 미국과의 무역거래 거부
- 척화비 : 오랑캐와 교류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행위라고 새겨 전국에 세움
▣ 망국의 길
- 강화도조약 체결(1876)로 문호 개방 → 부산, 원산, 인천을 시작으로 일본과 교류
※ 치외법권(일본인이 조선에서 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권리가 없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
- 고종은 통리기무아문 설치 : 조선 후기 군국기밀과 정치를 총관하던 관청
- 신식군인 별기군
- 청에 일본에 영선사, 수신사를 각각 파견하여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게 함
- 임오군란 (1882) :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참지 못하고 난을 일으킴
- 갑신정변 (1884) : 근대화의 방향을 청을 중심으로 할지, 일본으로 할지 대립
- 내부적 갈등뿐만 아니라 외압이 더욱 심해져 조선을 둘러싼 청일 전쟁 발생(1894)
- 을미사변 (1895) : 일본 자객이 고종의 왕비 명성왕후를 피살 → 고종 아관파천
※ 아관파천 : 고종은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러시아 공사관에서 약 1년간 머무름
-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운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국이라 선포
- 러일전쟁 (1904) : 또다시 조선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 전쟁 발발
- 을사늑약 체결(1905) : 조선의 외교권 박탈
- 헤이그 특사파견 : 일본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이 만국평화 회의가 열리는 헤이그로 파견(이준, 이상설, 이위종) → 일본 방해로 물거품 → 고종 강제 퇴위 당함(1907)
- 강제퇴위 후 고종은 야참으로 식혜를 마시고 잤는데, 복통을 호소 후 사망
제27대. 순종
· 생애 : 1874~1926년
· 재위기간 : 1910~1907년
· 묘호 : 순종
· 즉위 : 고종과 명성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장자.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 당하면서 강제 즉위해 조선의 마지막 군주.
▣ 병약한 마지막 황태자
- 헌종 이후 40여 년 만에 조선 왕실의 적장자 임금 순종
- 고종이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강제 퇴위 당하자 이를 대신에 순종이 즉위
- 당시 조선은 입법권, 관리 임명권, 경찰권, 사법권 등을 일본의 권한으로 넘김
- 한일병합조약 발표(1910.8.29.) : 조선의 주권을 완전히 일본에게 박탈하는 내용
⇒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5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조선왕조의 끝
- 한일병합조약 후, 순종은 창덕궁에서 거주
- 이복동생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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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4.28
  • 저작시기2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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