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기: 끈을 찾는 작업
2. 그 무엇보다 강력한 끈 ʻ페호ʼ
3. 페호를 찬 두 소년 ʻ나와 페트로니우스ʼ
4. 맨움 해방주의의 첫걸음 - ʻ의식화 토론ʼ
5. Let it be! Let it burn!! - 페호
6. 나가며: 민주주의의 아들
2. 그 무엇보다 강력한 끈 ʻ페호ʼ
3. 페호를 찬 두 소년 ʻ나와 페트로니우스ʼ
4. 맨움 해방주의의 첫걸음 - ʻ의식화 토론ʼ
5. Let it be! Let it burn!! - 페호
6. 나가며: 민주주의의 아들
본문내용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맨움 특유의 ‘수동성’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페트로니우스의 연인인 그로에 대한 페트로니우스의 태도도 확실해 졌음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로를 사랑하지만, 페트로니우스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겪게될 불합리한 것들을 받아들이기 않기로 결정한다. 즉, 수동적인 맨움의 역할을 상징하는 ‘부성보호’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는 소설 초반부에 자신이 만나게 될 전형적으로 마초적인 움에 대한 환상을 꿈꿔왔던 페트로니우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갈리아 사회에서 부성보호가 엄청나게 큰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맨움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세우고자 하는 페ㅌ로니우스의 의지의 강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현실사회를 풍자한 ‘민주주의 아들들’이라는 소설을 출간한 뒤, 페트로니우스는 어머니와 다시 한번 열띤 토론을 가진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이갈리아의 아들을 대표하는 ‘루스 브램’의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발언 즉, 움과 맨움의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나는권력관계를현재와같은방식으로유지하고싶단다.......왜냐하면....왜냐하면,음,나는내자신이권력의위치에있기때문이지.오,여신이여!그러나나는올바른결정을하고있다는신념을갖고그자리에있는거란다”
내용 中 페트로니우스와 루스 브램의 토론에서
루스 브램의 대화에서 나는 모든 부당한 권력관계와 구조적인 모순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득권을 가진 ‘움’의 통제욕과 지배욕에서 나오는 것이였다. 권력의 힘으로 역사는 왜곡되어 기술되었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맨움의 열등함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교육은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는 도구로 전락했으며, 맨움에 대한 폐쇄적 사회구조는 결국 맨움이 움으로 부터 ‘부성보호’를 선택 받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만일맨움이<그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생명은소멸할거다...”
내용 中 페트로니우스와 루스 브램의 토론에서
이갈리아의 딸을 대표하는 루스 브램의 말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아들’로써 다시한번 이갈리아를 그려본다. 그리고 내 주변을돌아본다. 혹시 우리 사회 속에서는 누가 ‘페트로니우스’와 같은 사람일까? 혹은 누가 ‘올모스’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화들짝 놀란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내가 바로 ‘김스브램’과 별로 다를바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밥 안주고 도대채 어디가신거야? 이러다가 우리 가정이 ‘소멸’하겠어!라고 생각한 것도 바로 브램다운 생각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밖에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솔직히 알고있진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 하나 하나 알아갈 계획이다. 내 안에 내면회 되어 있는 의식구조를 철저히 의심해보고 끊임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과연 그러한가? 왜그러한가?’ 라는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평생 던져야 할 질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그들’이란 누구이며 그들이 지켜야 할 ‘자리’는 무엇인가 생각 중이다. 페호로 연결된 나와 페트로니우스, 결국 지금 우리는 둘 다 페호를 벗고 있다. 난 2주가 지나서 자연적으로 벗었지만, 페트로니우스의 페호는 결코 저절도 ‘벗겨진’ 것이 아니였다. 앞으로는 바지를 입을 때마다 페트로니우스를 떠올릴 수 있을것 같다. 이갈리아의 사회 속에서 맨움을 위해 투쟁했던 그를 존경하며, 나는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찾아봐야 겠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현실사회를 풍자한 ‘민주주의 아들들’이라는 소설을 출간한 뒤, 페트로니우스는 어머니와 다시 한번 열띤 토론을 가진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이갈리아의 아들을 대표하는 ‘루스 브램’의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발언 즉, 움과 맨움의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나는권력관계를현재와같은방식으로유지하고싶단다.......왜냐하면....왜냐하면,음,나는내자신이권력의위치에있기때문이지.오,여신이여!그러나나는올바른결정을하고있다는신념을갖고그자리에있는거란다”
내용 中 페트로니우스와 루스 브램의 토론에서
루스 브램의 대화에서 나는 모든 부당한 권력관계와 구조적인 모순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득권을 가진 ‘움’의 통제욕과 지배욕에서 나오는 것이였다. 권력의 힘으로 역사는 왜곡되어 기술되었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맨움의 열등함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교육은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는 도구로 전락했으며, 맨움에 대한 폐쇄적 사회구조는 결국 맨움이 움으로 부터 ‘부성보호’를 선택 받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만일맨움이<그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생명은소멸할거다...”
내용 中 페트로니우스와 루스 브램의 토론에서
이갈리아의 딸을 대표하는 루스 브램의 말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아들’로써 다시한번 이갈리아를 그려본다. 그리고 내 주변을돌아본다. 혹시 우리 사회 속에서는 누가 ‘페트로니우스’와 같은 사람일까? 혹은 누가 ‘올모스’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화들짝 놀란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내가 바로 ‘김스브램’과 별로 다를바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밥 안주고 도대채 어디가신거야? 이러다가 우리 가정이 ‘소멸’하겠어!라고 생각한 것도 바로 브램다운 생각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밖에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솔직히 알고있진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 하나 하나 알아갈 계획이다. 내 안에 내면회 되어 있는 의식구조를 철저히 의심해보고 끊임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과연 그러한가? 왜그러한가?’ 라는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평생 던져야 할 질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그들’이란 누구이며 그들이 지켜야 할 ‘자리’는 무엇인가 생각 중이다. 페호로 연결된 나와 페트로니우스, 결국 지금 우리는 둘 다 페호를 벗고 있다. 난 2주가 지나서 자연적으로 벗었지만, 페트로니우스의 페호는 결코 저절도 ‘벗겨진’ 것이 아니였다. 앞으로는 바지를 입을 때마다 페트로니우스를 떠올릴 수 있을것 같다. 이갈리아의 사회 속에서 맨움을 위해 투쟁했던 그를 존경하며, 나는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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