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상징으로 섬겨졌다. 또한 지구상의 거대한 산, 강 등은 그 자체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이 가진 신성함, 강대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분리되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자기보존을 위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여 생각했다. 문명 이전의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분리는 자연에 대한 숭배로 이어졌지만, 서양에서 시작된 과학의 발달에 따른 인간우월적 시각을 낳았고 자연과 지구를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지구가 가졌던 신성함은 근대 양적세계관의 팽창과 함께 희석, 퇴보되어 왔고, 자연이란 말은 곧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물질계, 과학을 대변하는 의미가 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지나고 현대가 들어서고 냉전기의 핵전쟁 위기는 이러한 과학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성과 과학은 완벽하지도 않으며, 인간의 행복을 담보해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시각의 바탕에서 환경주의, 생태주의적 시각이 나타났다. 비록 지구의 종교적 신성함이 주는 아름다움은 퇴색되었지만, 지구는 현대에 오면서 균형과 조화, 건강, 생명의 상징성을 가지게 되었다.
6. 마치며
이렇듯 지구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이다. 지구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근원적인 아름다움, 이를 유지하고 돌보는 자애로움을 가진 모성의 존재이고, 천의 얼굴을 지닌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많은 존재들이 살아가는 조화의 미를 간직한 행성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이번 과제를 하며 나는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상대적인 개념에서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모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의 내면에 있는 느낌일 뿐이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언어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느낀 아름다움의 단편을 미숙한 언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교에 와서까지 내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고자 노력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하거나 설명하는데에 매몰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왜 지구를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를 말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아고 나의 주관적인 감정을 설명하는 노력을 거의 처음으로 했고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구는 왜 아름다운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나는 아직도 능숙하게 답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물음과 탐구는 내 삶과 생각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되돌리는 노력을 하는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참고 문헌
한재련, 2010, 『모성 체험의 표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이주은, 2008, 『그림에, 마음을 놓다』, 앨리스
송화경, 2000, 『동양예술정신에 나타난 ‘화(和)’』, 한국동양예술학회
자연이 가진 신성함, 강대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분리되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자기보존을 위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여 생각했다. 문명 이전의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분리는 자연에 대한 숭배로 이어졌지만, 서양에서 시작된 과학의 발달에 따른 인간우월적 시각을 낳았고 자연과 지구를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지구가 가졌던 신성함은 근대 양적세계관의 팽창과 함께 희석, 퇴보되어 왔고, 자연이란 말은 곧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물질계, 과학을 대변하는 의미가 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지나고 현대가 들어서고 냉전기의 핵전쟁 위기는 이러한 과학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성과 과학은 완벽하지도 않으며, 인간의 행복을 담보해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시각의 바탕에서 환경주의, 생태주의적 시각이 나타났다. 비록 지구의 종교적 신성함이 주는 아름다움은 퇴색되었지만, 지구는 현대에 오면서 균형과 조화, 건강, 생명의 상징성을 가지게 되었다.
6. 마치며
이렇듯 지구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이다. 지구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근원적인 아름다움, 이를 유지하고 돌보는 자애로움을 가진 모성의 존재이고, 천의 얼굴을 지닌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많은 존재들이 살아가는 조화의 미를 간직한 행성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이번 과제를 하며 나는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상대적인 개념에서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모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의 내면에 있는 느낌일 뿐이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언어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느낀 아름다움의 단편을 미숙한 언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교에 와서까지 내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고자 노력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하거나 설명하는데에 매몰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왜 지구를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를 말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아고 나의 주관적인 감정을 설명하는 노력을 거의 처음으로 했고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구는 왜 아름다운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나는 아직도 능숙하게 답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물음과 탐구는 내 삶과 생각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되돌리는 노력을 하는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참고 문헌
한재련, 2010, 『모성 체험의 표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이주은, 2008, 『그림에, 마음을 놓다』, 앨리스
송화경, 2000, 『동양예술정신에 나타난 ‘화(和)’』, 한국동양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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