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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미국 유머’도 없다. 우리는 전 세계인이 웃는 타이밍에 함께 웃고 눈물짓는 타이밍에 함께 눈물지을 수 있다. 설정의 중성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러티브의 구성으로 발전한다. 이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철저한 계산이라고 생각된다. 또 이 영화 안에는 지구의 존폐여부에 대해 고민하는 ‘미국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이 영화를 미국의 영웅주의를 부르짖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랜스포머는 우주에서 지구로 온 로봇들의 싸움을 러닝타임 내내 감각적인 영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빠른 편집 안에 관객은 영화 안에 더 몰입할 수 있다. 로봇은 영화 안에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한다. 마치 로봇물의 진화를 트랜스포머 안에서 모두 보여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로봇물의 장르적 특징을 놓치고 본 사람들이 말하는 스토리가 약하다는 점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로봇물을 드라마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순수문학에서 역동성이 필요하다 지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로봇 영화의 최종판의 자리는 당분간 ‘트랜스포머’가 지키지 않을까 싶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잊지 말아야할 점이 있다. 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은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그 중성성의 힘은 대단하다. 자연스럽게 영웅주의를 지워내 큰 성공을 거둔 트랜스포머의 ‘중성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어야 할 터다. 이를 통해 트랜스포머가 순수한 오락영화로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팬층을 확보하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트랜스포머는 우주에서 지구로 온 로봇들의 싸움을 러닝타임 내내 감각적인 영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빠른 편집 안에 관객은 영화 안에 더 몰입할 수 있다. 로봇은 영화 안에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한다. 마치 로봇물의 진화를 트랜스포머 안에서 모두 보여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로봇물의 장르적 특징을 놓치고 본 사람들이 말하는 스토리가 약하다는 점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로봇물을 드라마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순수문학에서 역동성이 필요하다 지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로봇 영화의 최종판의 자리는 당분간 ‘트랜스포머’가 지키지 않을까 싶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잊지 말아야할 점이 있다. 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은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그 중성성의 힘은 대단하다. 자연스럽게 영웅주의를 지워내 큰 성공을 거둔 트랜스포머의 ‘중성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어야 할 터다. 이를 통해 트랜스포머가 순수한 오락영화로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팬층을 확보하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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