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문헌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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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문헌비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텍스트의 핵심 및 요약
2. 문헌비평
3. 출처

본문내용

는 가장 진보적 태도로 바뀐 것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34쪽
벤야민의 대중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그가 19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라는 점에 의심을 품게 된다. 마치 오늘날의 대중들을 관찰하고 쓴 글인 것 같다. 사람들은 고전명작은 감히 비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빈치의 조각품이나 고흐의 그림, 베토벤의 음악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며 누군가 이에 대해 별로라는 평가를 내리면 무섭게 달려든다. “당신은 이런 것 만들 수 있느냐?” 고전명작들에 대해 매뉴얼대로 말하지 않으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작품을 보여주면 대다수는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이런 건 나도 찍을 수 있겠네.” 정말로 웃긴 것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막상 카메라를 쥐여 주면 가장 기본적인 노출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한 엉망진창의 사진을 찍을 줄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진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스마트폰에 탑재된 카메라로 찍어본 자신의 초상 사진뿐이다. 실제로 나는 친구에게 유형학적 사진의 대가인 독일 사진작가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내가 찍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진이 어떤 것 같냐고 물어봤을 때 친구는 “별 것도 아니네.. 이런 거 나도 찍겠다.”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 사진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낙찰가 48억에 거래된 구르스키의 대표작품 ‘라인강’이었다. 만약에 내가 피카소의 작품을 보여주고 내가 그렸다라고 하면 그 친구는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 나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예술은 감성의 영역이라는 편견. 감성적인 영역인 예술에 카메라와 같은 과학기술의 산물이 개입되는 것을 용납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얕은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가지는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고전명작을 만드는데 사용된 붓이나 물감도 엄연히 따지자면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목공기술과 화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다면 그런 작품들을 만들 수나 있었을까? 정도의 차이지 둘 다 감성적 영역과 이성적 영역이 만나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리고 완전한 과학의 영역은 예술이 될 수가 없는 것인가? 애초에 예술에는 정답이 없는 것인데? 나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계산하고 식을 세워 머나먼 화성에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탐사선을 보내 임무를 완수하는 것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우주탐사에서 그 엄청난 숫자들을 가지고 놀며 결국 임무를 성공시키는 것 또한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중들이 무비판적인 수용자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 할 수 있는 진보적인 비평자가 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담론의 장만 열리고, 그 담론의 수준이 발전을 하지 못한다면 무조건 환영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3. 출처
발터 벤야민 선집 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네이버 지식백과
http://www.leemin.org/text7_1.htm
  • 가격1,2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8.03.26
  • 저작시기201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50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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