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천황제와 일본기독교
2. 히틀러 나치정권과 독일민족교회
3. 일제하에 한국민족교회
4.결론
2. 천황제와 일본기독교
2. 히틀러 나치정권과 독일민족교회
3. 일제하에 한국민족교회
4.결론
본문내용
균형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이상적인 공존상태임을 알 수가 있다. 민경배,『한국의 기독교』, (서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19-20
그러나 이상적인 공존을 이룬 한국민족교회는 계속 일제에 머물고 있으며,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해방 당시 민족교회가 희열과 희망으로 들뜬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회개를 하기보다는 조국을 잃은 백성으로 일제로부터 통치 당한 악몽을 얼른 잊어버리려고 하는 역사적 태도가 현재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교회는 1967년 3월 26일에 일본기독교단 총회의장 스스기 마사히사(鈴木正久)의 이름으로 일제가 죄를 범했을 때 일본교회도 그 죄에 빠져있었음을 고백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독일교회는 1945년 10월 19일 전범국의 교회로서 그리고 나치에 동조한 교회로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담고 있으며, 말보다 실천으로 참회하는 역사를 동반한 고백을 발표했다. 김영재, 『한국교회 죄책 고백과 독일교회 사례』, 257
하지만 한국교회는 해방 직후부터 신사참배에 대한 죄책을 회개하자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책벌은 하나님과의 직접관계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 김영재, 『한국교회 죄책 고백과 독일교회 사례』, 261
이라는 주장으로 무효가 되었으며, 이 문제를 두고 한국교회는 분열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민족교회의 낭만적인 실만을 바라보고 허에 대한 성찰을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고백을 통해서 더 이상 한국교회가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교회가 아님을 깨닫고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바라볼 때가 왔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민족교회임에도 불과하고 서구의 신학의 교회와 선교였다. 일본기독교는 서구 교파적 전통에 충실하기 보다는 일본적인 특수성과 역사적 상황에 맞는 일본만의 새로운 신학인 “토착신학”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 당시 소수였던 일본기독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해야만 할 분위기 속에 있었기에 단순히 신학적인 성숙을 위해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일본기독교와 현재 한국교회가 놓인 상황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천황제와 같은 종교적인 정부로 인한 통제라는 상황은 다를지라도 사회적 비판과 기독교인이 감소되어가는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어느 정도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민족교화라면 일본기독교가 실천한 토착화 즉 한국적인 특수성과 역사적 상황 그리고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문화적 상황에 맞는 한국만의 신학을 확립해야 한다. 일제하 당시 억압과 순난의 시대였지만 현재 한국교회가 놓인 시대는 더 이상 그런 영역이 없는 시대이다.
결론적으로 일제하에 한국민족교회가 민족과 나라의 요구에 응답하여 함께 순난을 당한 것처럼 낭만적인 한국민족교회 사관이나 사고를 벗어나 민족교회의 실과 허를 바라보며 현재 시대, 그리고 한국적 특수한 틀 안에서 요구되는 것을 발견하고 성찰하여 응답할 수 있는 과거를 벗어나 현재 미래에도 통하는 서술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상적인 공존을 이룬 한국민족교회는 계속 일제에 머물고 있으며,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해방 당시 민족교회가 희열과 희망으로 들뜬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회개를 하기보다는 조국을 잃은 백성으로 일제로부터 통치 당한 악몽을 얼른 잊어버리려고 하는 역사적 태도가 현재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교회는 1967년 3월 26일에 일본기독교단 총회의장 스스기 마사히사(鈴木正久)의 이름으로 일제가 죄를 범했을 때 일본교회도 그 죄에 빠져있었음을 고백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독일교회는 1945년 10월 19일 전범국의 교회로서 그리고 나치에 동조한 교회로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담고 있으며, 말보다 실천으로 참회하는 역사를 동반한 고백을 발표했다. 김영재, 『한국교회 죄책 고백과 독일교회 사례』, 257
하지만 한국교회는 해방 직후부터 신사참배에 대한 죄책을 회개하자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책벌은 하나님과의 직접관계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 김영재, 『한국교회 죄책 고백과 독일교회 사례』, 261
이라는 주장으로 무효가 되었으며, 이 문제를 두고 한국교회는 분열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민족교회의 낭만적인 실만을 바라보고 허에 대한 성찰을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고백을 통해서 더 이상 한국교회가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교회가 아님을 깨닫고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바라볼 때가 왔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민족교회임에도 불과하고 서구의 신학의 교회와 선교였다. 일본기독교는 서구 교파적 전통에 충실하기 보다는 일본적인 특수성과 역사적 상황에 맞는 일본만의 새로운 신학인 “토착신학”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 당시 소수였던 일본기독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해야만 할 분위기 속에 있었기에 단순히 신학적인 성숙을 위해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일본기독교와 현재 한국교회가 놓인 상황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천황제와 같은 종교적인 정부로 인한 통제라는 상황은 다를지라도 사회적 비판과 기독교인이 감소되어가는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어느 정도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민족교화라면 일본기독교가 실천한 토착화 즉 한국적인 특수성과 역사적 상황 그리고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문화적 상황에 맞는 한국만의 신학을 확립해야 한다. 일제하 당시 억압과 순난의 시대였지만 현재 한국교회가 놓인 시대는 더 이상 그런 영역이 없는 시대이다.
결론적으로 일제하에 한국민족교회가 민족과 나라의 요구에 응답하여 함께 순난을 당한 것처럼 낭만적인 한국민족교회 사관이나 사고를 벗어나 민족교회의 실과 허를 바라보며 현재 시대, 그리고 한국적 특수한 틀 안에서 요구되는 것을 발견하고 성찰하여 응답할 수 있는 과거를 벗어나 현재 미래에도 통하는 서술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키워드
추천자료
한국민족교회 형성사론을 읽고
민족민주운동에 있어서의 여성문제 - 80년대 한국의 새로운 여성운동에 대한 담론분석
[한국교회사] 민족운동과 한국교회 - 민족운동에 묻어있는 기독교의 보이지 않는 피
경교 야리가온 전래 가능성의 서술태도 비판 - 한국교회사의 제 문제
기독교사회주의의 기원과 개념 - 한국교회사 제문제
분단과 625 전쟁기 한국교회의 피해와 가해에 대한 이해 - 한국교회사 제문제
비판적 관점에게 본 이승만 정권과 기독교 - 한국교회사의 제문제
한국민족교회론의 교회와 국가론적 점검 - 일제 말기 한국민족교회의 두 사례를 중심으로 [교...
한국기독교 용공시비의 타당성 문제 -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 세계교회협의회)를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