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 3-4장 - 전시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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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 3-4장 - 전시체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에 상응하도록 소비품 공급을 보장하지 못함, 그러나 중공업우선 노선에 기초를 둔 높은 성장률은 경제계획에서 양보할 수 없는 대전제가 되었으며, 이 딜레마로부터의 출구를 제공한 것이 이른바 내부원천의 동원, 특히 생산내부예비의 동원이라는 발상.
12월 전원회의 후 경제부문에 대한 당의 지도가 한층 더 강조, 김일성은 혁명적 군중관점을 강조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당, 정부의 지도간부들은 지역을 분담하여 현지에서 지도, 결국 국가계획의 작성, 당의 증산과제 설정, 현장근로자의 증산 결의라는 3단계를 거쳐 생산목표가 늘어나는 메커니즘이 완성.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천리마운동의 기점으로 할 만큼 중요시함.
5. 전후 산업부문에서 당-직업동맹
1) 전후의 노동문제와 공장관리체제
1954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기업소 내에서 무질서, 무규율, 무정부상태의 지배를 지적, 노동규율을 세우기 위하여 유일관리제를 강화할 것을 강조, 유일관리제란 지도자 수중에 전 관리계통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 위임된 사업에 대한 개별적 책임성을 의미한다고 정의.
김일성의 보고에 따라서 3월 30일, 내각결정 제 55호 ‘노동내부질서표준규정’이 제정, 여기에는 무단결근, 지각, 조퇴, 태만행위 등에 대하여 주의, 경고, 엄중경고, 3개월간의 감금, 강직, 철직 등 행정적 벌칙조항을 마련,
2) 생산에 대한 당의 통제권한 부여
당의 통제권한이 부여되기 전에 유지되던 기존의 당에 의한 기업통제 체계를 보면 대규모 공장, 기업소도 기본적으로는 시, 군당위원회의 지도아래 놓임, 그러나 새로운 권한이 부여된 당 단체는 행정 측에 대하여 공장, 기업소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며, 행정간부로부터 사업상황을 청취,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 구체적 방침을 제시, 대책의 수립을 권할 수 있게 됨. 여기에는 노동부, 조직부, 선전선동부가 주요 관련 부서였음.
1954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당 농민부가 농업부로 노동부가 산업부로 명칭이 바뀌고 농민동맹과 직업동맹 사업을 당 조직지도부가 장악, 당 조직지도부는 당 조직원제를 통하여 대규모 공장을 직접 통제하고, 근로단체를 담당, 경제부문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
3)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와 반탐오, 반낭비투쟁
1955년 4월 당중앙위원회전원회의는 북반부의 사회주의적 개조에 착수한다고 선언, 회의에서는 ‘당원들이 계급적 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당 및 정권기관 내 일부 일꾼들에게 아직 남아있는 관료주의를 퇴치할 데 대하여’, ‘경제절약, 재정 및 자재 통제규율과 반탐오, 반낭비 투쟁 강화에 대하여’를 토의하고 해당 결정을 채택. 수공업자 및 개인상공업자의 사회주의적 개조는 1955년 1년간 총 수 기준으로 39.5%에서 59.4%로 급격히 증가,
4) 당 경제부서의 변화와 당 사업에서 행정대행 문제.
당 단체의 직접 관할하에 있는 각종 당회의 이외에도 공장 경영, 관리나 생산기술 상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서 지배인 직속의 자문협의기구로서 운영되어 온 행정기술협의회, 직맹의 주도 하에 증산결의나 생산현장의 문제해결을 위해 직장, 작업공정별로 진행하고 있는 생산협의회 등 기존의 대중적 회의형식에 당이 적극적으로 관여.
당은 행정관료조직이 아니라 대중적 정치조직이라는 인식에 의거, 근본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자율적 요구에 의해 통제를 가한다는 것, 다만 밑으로부터의 대중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이상 부분적으로는 직맹의 기능이 활성화되는 효과.
5) 전후 직업동맹의 변천
전후 직맹은 철저한 당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반당종파분자 비판작업, 직맹 내 단속작업을 거치면서 실제적 권한에서는 멀어짐.
6. 농업집단화의 전개와 완료
1) 농업집단화의 의사결정과 초기단계
1953년 8월 5일 당중앙위원회 제 6차 전원회의에서 농업집단화가 최초로 제기, 1954년부터 일부 지역에 경험적으로 농업협동조합을 조직, 운영할 것을 주장, 집단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바 무엇보다 전시하의 가혹한 조건밑에서 노동력, 축력의 절대적인 부족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
2) 농업집단화의 대중적 단계로의 전개
11월 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농업집단화를 대중적 단계로 확대하기로 결정, 1955년부터 협동조합에 국가적 계획과제를 주고 개인농민경리에 대해서는 리까지 계획과제를 시달하기로 함. 소련이 농업집단화에 대해서는 급격히 확대하는데 대해 반대하고 있었지만 그 의견을 거스르는 결과가 됨.
3) 집단화에 대한 당 역량의 집중 투입과 당내 대립
4) 이탈 움직임과 집단화 완성의 강행
1956년 말에서 57년 초에 걸쳐 지방에서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 배천바람이라 불리는 탈퇴운동이 발생 확대.
1957년부터 집단화는 완성단계라고 불리고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와 밀접한 관련 아래 추진, 11월 14일 개인상공업에 대한 지도를 개선할 데 관한 내각결정 채택,
1958년 9월 26일 당중앙전원회의에서 농업집단화의 완료가 선언, 농촌의 수리화를 집단화 이후 새로운 과업으로 제시.
7. 농업집단화의 중요 측면
1) 곡물생산량 통계의 수수께끼/ 2) 농업협동조합, 당, 인민위원회
1955년부터 집단화가 대중적 단계에 들어가며 농업협동조합과 인민위원회, 당과의 관계가 부각, 농업협동조합의 국가화라는 현실 앞에서 집단화의 진행은 협동조합 관리간부의 증가를 가져와 전체 관료기구 속에 유급간부의 증가를 불러옴.
8. 소결
전쟁과정에서 김일성의 권력은 강화, 당내 다원성은 유지, 연안계, 소련계를 중심으로 반 김일성파가 형성, 1955년 12월 김일성과 반대파는 대립, 당과 정부 내의 다원성은 8월 전원회의를 계기로 소멸, 전후 인민군 내에서는 만주파의 헤게모니하에 세력관계의 균형이 유지,
민주기지론은 전전의 기동전으로부터 전후의 장기적 진지전으로 전환,
정전 후 중국과 북조선에서는 동시에 전 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진행,
사회주의적 개조는 기본적으로 위로부터의 강행으로 완수,
농촌에서는 집단화에 대한 중앙당의 집중지도가 실시,
8월 종파사건의 여파로 노동관계에서 평시체제로의 이행이 실현되지 못함.
천리마 운동이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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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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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8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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