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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풍습대로 인신을 봉양했겠냐는 의문으로부터 나온 해석들입니다. 그 해석들은 입다의 딸이 ‘산에 가서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왔고 입다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는 사사기 11장 39절 말씀을 근거로, 딸은 정말로 번제로 드려진 것은 아니고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과 사실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 보다 앞서나가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내세우려 할 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배우고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사용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 자칫 우쭐하거나 하나님이 쓰시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앞서 나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 인 것입니다. 사사시대는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거 같아 보이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거 같아 보이지만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고 하나님 보다 앞서 나아갈 때 어처구니없는 일을 행하게 되고 돌이킬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된 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반복되는 입다 콤플렉스
이러한 ‘입다 콤플렉스’는 오늘날도 계속 교회에서 반복되고 있다. 일년중 새벽기도회에 가장 성도들이 많이 몰리는 때가 입시철이라고 한다. 이는 다름 아닌 내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부모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녀의 대학합격을 기원하며 그냥 기원만 할까? 그렇게 치성을 드리듯 기도하다보면 “합격만 시켜 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식의 기도가 되기 마련이다. 또 우리는 신앙의 연륜이 있는 성도들과 심지어 사역자라 일컫는 목회자들의 기도에서도 ‘입다 콤플렉스’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신실한 평신도들은 회사에서 너무 중요한 일을 맡아서 진행하다보면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을 구하며 일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근데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맡기고 가면 되는데 꼭 끝무렵에 가서 힘이 들어간다. 조금만 더 하면 이제 될 거 같은 거다. 근데 거기 서 꼭 보험을 들고 싶어진다. ‘하나님... 쪼금만 더... 쪼금만 더 도와주세요...’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기도와 믿음을 장담하고 확인 받고 싶어하는 행동을 한다. ‘하나님이 이번에 이거 끝까지 도와주시고 이뤄 주시면... 그 대가로 내가...’ 입다 등장이다.
이른바 사역자들, 부름 받은 목회자들은 어떠한가? 끝까지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만 영광받으시면 되는데 끄트머리에 꼭 은근슬쩍 밀어 넣는다. “에... 이번 성전 건축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 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 성전이 완공될 때 저와 교회는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입다 등장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 나와 우리 모두 하나님 보다 앞서지 말고 늘 뒤에서 붙좇는 신실한 종들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과 사실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 보다 앞서나가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내세우려 할 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배우고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사용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 자칫 우쭐하거나 하나님이 쓰시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앞서 나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 인 것입니다. 사사시대는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거 같아 보이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거 같아 보이지만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고 하나님 보다 앞서 나아갈 때 어처구니없는 일을 행하게 되고 돌이킬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된 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반복되는 입다 콤플렉스
이러한 ‘입다 콤플렉스’는 오늘날도 계속 교회에서 반복되고 있다. 일년중 새벽기도회에 가장 성도들이 많이 몰리는 때가 입시철이라고 한다. 이는 다름 아닌 내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부모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녀의 대학합격을 기원하며 그냥 기원만 할까? 그렇게 치성을 드리듯 기도하다보면 “합격만 시켜 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식의 기도가 되기 마련이다. 또 우리는 신앙의 연륜이 있는 성도들과 심지어 사역자라 일컫는 목회자들의 기도에서도 ‘입다 콤플렉스’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신실한 평신도들은 회사에서 너무 중요한 일을 맡아서 진행하다보면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을 구하며 일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근데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맡기고 가면 되는데 꼭 끝무렵에 가서 힘이 들어간다. 조금만 더 하면 이제 될 거 같은 거다. 근데 거기 서 꼭 보험을 들고 싶어진다. ‘하나님... 쪼금만 더... 쪼금만 더 도와주세요...’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기도와 믿음을 장담하고 확인 받고 싶어하는 행동을 한다. ‘하나님이 이번에 이거 끝까지 도와주시고 이뤄 주시면... 그 대가로 내가...’ 입다 등장이다.
이른바 사역자들, 부름 받은 목회자들은 어떠한가? 끝까지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만 영광받으시면 되는데 끄트머리에 꼭 은근슬쩍 밀어 넣는다. “에... 이번 성전 건축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 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 성전이 완공될 때 저와 교회는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입다 등장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 나와 우리 모두 하나님 보다 앞서지 말고 늘 뒤에서 붙좇는 신실한 종들이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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