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생각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권능을 확인하는 의식을 거행했는데, 실패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실패에서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찾으면, 고조선이 국가적인 체제를 확립하면서 나라 무당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민간무당은 불신되거나 배격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그에 따라 건국신화가 보장해주는 질서가 흔들리면서 문학의 양상이 달라진 증거가 「공무도하가」에 나타났다고 보고있다.
★ 「공무도하가」의 신화적 세계의 붕괴
김학성과 성기옥은 「공무도하가」의 비극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김학성은 남편을 미숙련의 巫夫(박수)로 상정하여 무부의 주능실패로 인한 비극적인 파멸담에 관한 설화와 그에 얽힌 가요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의 미의식을 검토해 보면, 현실적인 것은 남편의 익사이며, 이상적인 것은 남편이 강물에 익사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후자에의 신념을 처음부터 포기한 상태에서 즉 이상적인 것에의 지향이 애초부터 열세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것에의 저항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이 전혀 불리한 상황에서 불리한 쪽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극적 갈등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현실적인 것으로 인한 깊은 상처 내지는 파멸만 남을 뿐이므로 이 작품에 구현된 미는 신화적 숭고 내지는 숭고의 파탄으로 초래된 비극미라고 하였다.
만약, 주술적 효능이 확고 부동한 절대적인 것으로 널리 신뢰되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경우라면, 그는 주술의 신비적인 능력에 의해 난류를 무사히 건너 현실적인 죽음을 초극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의 이상적인 것의 추구는 의심할 것 없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수광부는 익사함으로써 현실적인 것에 도전하다 파멸했으며, 이러한 파멸은 마침내 아내의 파멸까지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만큼 아내의 이상적인 것에의 신뢰는 남편의 익사 이전에 이미 무너져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신화적 질서 혹은 주술적 숭고가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신화 시대 말기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럴 때 신적인물의 신성성이 의심된다든가 주술 능력이 실패할 경우는 비극적인 파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기옥은 설화의 두 중심 인물을 대립적인 성격으로 보고 있다. 남편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있어서는 인간으로서이기 보다는 신화적 인물로서 지니는 신비성이 진하게 드러나 있는 반면, 아내의 성격은 명백히 일상적 인간의 모습을 한 현실적 인물이라고 했다. 이러한 대립상은 죽음을 인식하는 두 인물의 태도 분석을 통해 더 선명히 드러낼 수 있는데 백수광부가 겁없이 강물을 건너는 행위는 삶과 죽음을 경계지우지 않는 행위요, 생사를 인식하기 이전 단계의 행위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적어도 스스로에게 있어서 만은 결코 비극이 아니며 스스로의 세계에 대하여 종말을 고하는 것도 아니므로 그의 죽음은 초월적 죽음, 신화적 죽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을 따라 강물에 몸을 던지는 행위는 이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인식하는 죽음이다. 아내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곧 현실적 삶의 종말 그 자체이다. 강물을 건너는 행위가 백수광부 자신에게는 삶과 죽음을 경계 지우지 않는 초월적 행위이지만, 그녀에게는 현실적 삶의 종말이요 생의 의미가 소멸되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므로 그녀의 죽음은 인간적 죽음, 현실적 죽음이라 할 수 있다.
백수광부와 같은 신화적 인물의 창조는 오늘날처럼 주관적 감정과 객관적 실재 사이를 명확히 구분지우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쉽사리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상상과 현실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초경험적 세계와 경험적 세계 사이를 연속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상호 교섭적 전일성이 유지될 수 있었던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백수광부가 드리운 초월적 신비의 색채나 삶과 죽음을 경계 지우지 않는 행동은, 이처럼 세계의 연속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주술-신화적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에 반해 불연속적 세계관은 상상과 현실의 분리, 하늘과 땅의 분리를 통해 초경험적 현실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공무도하가」설화에 보이는 신화와 전설의 복합성은 곧 이 설화의 형성과 전승에 참여했던 전승집단이 보이는 의식의 이중성, 세계관의 복합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주술-신화적 세계관에서 불연속적 세계관으로 이행해 가는 문화적 변동기의 세계상을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에 해당한다. 더 이상 세계의 연속성에 기대어 세계를 해석할 수 없는 문화적 이행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생성된 작품으로서, 이로 말미암은 자아의 동일성 상실 문제가 우리 문학에서 처음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시대에 등장한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하였다.
★ 기타
왜 백수광부는 강에 빠져 죽었는가?
흰머리(白首)라는 점과 미쳤다(狂夫)는 화소를 생각해 보건 데 흰머리라는 점에서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고, 狂夫는 곽리자고가 그를 보고 미쳐 보인다고 생각을 한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상상했다. 새벽에 술을 마시고 흐트러진 머리를 한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그렇게 보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죽은 후 공후를 들고 노래를 한 점
지아비에 대한 혹은 한 부족의 장에 대한 忠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최표의 의도적인 삽입일 가능성과, 고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 제정일치의 사회에서 부족장이고 제사장이었던 남편의 아내로서 제사에 악공으로 참여했을 수 있다. 또한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 또한 집안에 공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아내는 악기를 잘 다루었을 가능성도 있다.
(5) 작가
백수 광부의 처, 혹은 뱃사공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
이 노래의 지은이는 일반적으로 백수광부의 아내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남편이 죽는 광경을 보고 아내가 공후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뱃사공인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화에 따라 백수광부의 아내가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 「공무도하가」의 신화적 세계의 붕괴
김학성과 성기옥은 「공무도하가」의 비극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김학성은 남편을 미숙련의 巫夫(박수)로 상정하여 무부의 주능실패로 인한 비극적인 파멸담에 관한 설화와 그에 얽힌 가요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의 미의식을 검토해 보면, 현실적인 것은 남편의 익사이며, 이상적인 것은 남편이 강물에 익사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후자에의 신념을 처음부터 포기한 상태에서 즉 이상적인 것에의 지향이 애초부터 열세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것에의 저항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이 전혀 불리한 상황에서 불리한 쪽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극적 갈등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현실적인 것으로 인한 깊은 상처 내지는 파멸만 남을 뿐이므로 이 작품에 구현된 미는 신화적 숭고 내지는 숭고의 파탄으로 초래된 비극미라고 하였다.
만약, 주술적 효능이 확고 부동한 절대적인 것으로 널리 신뢰되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경우라면, 그는 주술의 신비적인 능력에 의해 난류를 무사히 건너 현실적인 죽음을 초극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의 이상적인 것의 추구는 의심할 것 없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수광부는 익사함으로써 현실적인 것에 도전하다 파멸했으며, 이러한 파멸은 마침내 아내의 파멸까지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만큼 아내의 이상적인 것에의 신뢰는 남편의 익사 이전에 이미 무너져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신화적 질서 혹은 주술적 숭고가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신화 시대 말기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럴 때 신적인물의 신성성이 의심된다든가 주술 능력이 실패할 경우는 비극적인 파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기옥은 설화의 두 중심 인물을 대립적인 성격으로 보고 있다. 남편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있어서는 인간으로서이기 보다는 신화적 인물로서 지니는 신비성이 진하게 드러나 있는 반면, 아내의 성격은 명백히 일상적 인간의 모습을 한 현실적 인물이라고 했다. 이러한 대립상은 죽음을 인식하는 두 인물의 태도 분석을 통해 더 선명히 드러낼 수 있는데 백수광부가 겁없이 강물을 건너는 행위는 삶과 죽음을 경계지우지 않는 행위요, 생사를 인식하기 이전 단계의 행위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적어도 스스로에게 있어서 만은 결코 비극이 아니며 스스로의 세계에 대하여 종말을 고하는 것도 아니므로 그의 죽음은 초월적 죽음, 신화적 죽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을 따라 강물에 몸을 던지는 행위는 이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인식하는 죽음이다. 아내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곧 현실적 삶의 종말 그 자체이다. 강물을 건너는 행위가 백수광부 자신에게는 삶과 죽음을 경계 지우지 않는 초월적 행위이지만, 그녀에게는 현실적 삶의 종말이요 생의 의미가 소멸되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므로 그녀의 죽음은 인간적 죽음, 현실적 죽음이라 할 수 있다.
백수광부와 같은 신화적 인물의 창조는 오늘날처럼 주관적 감정과 객관적 실재 사이를 명확히 구분지우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쉽사리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상상과 현실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초경험적 세계와 경험적 세계 사이를 연속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상호 교섭적 전일성이 유지될 수 있었던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백수광부가 드리운 초월적 신비의 색채나 삶과 죽음을 경계 지우지 않는 행동은, 이처럼 세계의 연속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주술-신화적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에 반해 불연속적 세계관은 상상과 현실의 분리, 하늘과 땅의 분리를 통해 초경험적 현실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공무도하가」설화에 보이는 신화와 전설의 복합성은 곧 이 설화의 형성과 전승에 참여했던 전승집단이 보이는 의식의 이중성, 세계관의 복합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주술-신화적 세계관에서 불연속적 세계관으로 이행해 가는 문화적 변동기의 세계상을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에 해당한다. 더 이상 세계의 연속성에 기대어 세계를 해석할 수 없는 문화적 이행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생성된 작품으로서, 이로 말미암은 자아의 동일성 상실 문제가 우리 문학에서 처음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시대에 등장한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하였다.
★ 기타
왜 백수광부는 강에 빠져 죽었는가?
흰머리(白首)라는 점과 미쳤다(狂夫)는 화소를 생각해 보건 데 흰머리라는 점에서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고, 狂夫는 곽리자고가 그를 보고 미쳐 보인다고 생각을 한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상상했다. 새벽에 술을 마시고 흐트러진 머리를 한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그렇게 보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죽은 후 공후를 들고 노래를 한 점
지아비에 대한 혹은 한 부족의 장에 대한 忠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최표의 의도적인 삽입일 가능성과, 고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 제정일치의 사회에서 부족장이고 제사장이었던 남편의 아내로서 제사에 악공으로 참여했을 수 있다. 또한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 또한 집안에 공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아내는 악기를 잘 다루었을 가능성도 있다.
(5) 작가
백수 광부의 처, 혹은 뱃사공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
이 노래의 지은이는 일반적으로 백수광부의 아내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남편이 죽는 광경을 보고 아내가 공후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뱃사공인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화에 따라 백수광부의 아내가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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