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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이 못 되는 마이너들은, 그저 \'만수산 드렁칡\'이 얽힌 모양으로 누추하고 볼품없게 누가 더 나은지 못났는지 도토리 키 재기할 것도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코 빛을 볼 일은 없지만 베어져 거꾸러질 염려도 없는, 보신은 보장받은 존재가 아니냐는 속뜻이 들어 있다. 따라서 결말 부분에서, \'사인방\' 일원들이 득도한 듯이 말하는, \"산을 푸르게 하는 것은 나무들이 아니라 하찮게 보이는 칡이나 이끼다.\"라는 범상한 관용구는, 소설의 맥락에서는 비주류 인생들에 대한 연민과 비판적 고찰을 배제한 채 결국 그들의 행태를 합리화하려는 은희경의 의도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런 \'드렁칡 예찬론\'이야말로 그동안 소설을 통해 약자인 여성의 처지를 가볍고 비굴하게 다룬 데서도 드러난 바 있는, 여성으로서 은희경 스스로가 가진 마이너리티 의식이 아닐까. 그러나 변방에서 변변찮게 사는 여자인 나는 죽을 때까지 마이너리그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은희경의 말대로 \'만수산 사인방\'의 행태가 2류 3류 인생의 전형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에 자족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속물적 행태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는 법. 비록 꺾이고 다칠망정 고개를 치켜들려는 드렁칡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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