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대전 분석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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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수대전 분석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앞까지 도착한 육군은 부대를 재정비하여 평양성에서 일전을 벌일 것을 생각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나빴다. 믿었던 수군(水軍)은 합류지점에 나타나지 않았고, 식량난은 이미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을지문덕의 두 번째 전략이 그 위력을 발휘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바로 그 전략이다.
그대의 신묘한 책략은 천문을 꿰뚫었고 ( 神 策 究 天 文 )
묘산은 지리를 통달하였네 ( 妙 算 窮 地 理 )
전승한 공이 이미 높았으니 ( 戰 勝 功 旣 高 )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떠리 ( 知 足 願 云 止 )
을지문덕은 위와 같은 시를 적어 적장인 우중문에게 보낸다. 겉으로 보기엔 을지문덕 스스로가 고구려의 패배를 인정하는 듯한 내용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정도 선에서 그만 물러가라는 조롱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우중문이 을지문덕의 송공시를 받고 난감해 하고 있을 무렵 고구려의 사신이 다시 찾아와 ‘만약 군사를 돌리면 우리 임금을 모시고 행재소 行在所 : 황제가 임시로 거처하는 곳
까지 입조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지쳐있는 군사들을 데리고 돌아가고 싶어도 명분이 없어 돌아 갈 수 없었던 우중문, 우문술에게 큰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결국 고구려왕의 입조를 명분으로 하여 30만 수군 별동대는 회군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고구려군이 순순하게 이 30만 대군을 보내줄리 없다고 생각한 수군은 견고하게 방진을 짠 채로 후퇴하였다. 그저 편안하게 흐트러진 대형으로 이동하였다간 어디서 고구려군에게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한 수군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을지문덕은 이들을 전멸시켜야 고구려의 내일을 보장할 수 있단 생각에 살수에서 도하하는 수군을 맹공격하였다. 그 동안 체력의 한계를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살수까지 온 상황이었던 수군들에게는 더 이상 버틸만한 힘도, 정신력도 없었다. 결국 수군은 본국으로 살아 돌아간 2700명 살아 돌아간 2700명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이 모두 죽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 30만중에 2700명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사망했다는 것은 믿기가 어렵다. 아마 모두가 살수에서 다 몰살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무방비로 강을 건너던 수군은 무방비로 고구려군에게 노출되어 일방적인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군들은 살기위해 이리 저리 흩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흩어진 병사들은 후에 추격군에 의해 사망하거나, 포로로 붙잡혔을 것이다. 훗날 수나라가 무너지고 당이 건국 되었을 때, 당태종이 고구려를 외교적으로 압박했던 외교적 카드 중의 하나가 바로 수나라 포로들의 귀환이었다. 당시 고구려에는 상당수의 수나라 포로들이 살고 있었다. 이 포로들이 당으로 귀환해 고구려에 관한 정보를 준 것은 당연하게 보이는데, 문제는 이 포로들이 어디서 나왔냐 하는 것이다. 수양제가 이끌고 갔던 본대가 후퇴하면서 포로를 남겨놓았을 수도 있지만 그 수는 극 소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 살수대첩에서 나온 포로란 공식이다.
의 병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렇게 대제국 역사상 최대의 참패로 끝까지 승자를 알 수 없었던 이 대전은 끝이 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전투에 그보다 능할 수 없었던 싸움꾼 고구려군이 오합지졸로 구성된 망나니 군대 113만을 끈기 있게 깨부순 전투’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대전은 사실 ‘치밀한 계획과 준비아래 만들어진 역사상 최고의 아우라를 내뿜던 정예 대군을 기가 막힌 정치적 계산과 최고의 전략전술적 두뇌 플레이로 완벽하게 격파한 전투’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와 접하면서 나 역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글을 쓰면서도 상당히 놀랐다. 특히 수양제가 세밀하게 하나하나 구성했던 진격로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을 때는 ‘아!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한 113만 대군을 고구려가 정말 무찔렀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이미 고구려의 방어 시스템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많은 고심을 한 끝에 내린 전략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제거를 설치하여 보급군수물자의 수송을 용이하게 한 점도 참 수양제가 의욕만 가지고 전쟁에 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철두철미하고 치밀한 준비아래 이 대전에 임하였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어떤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많은 교과서나 역사서들이 이 고구려와 수의 전쟁에 대해서 짧은 몇 마디로 기술해 놓고 있으며,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단 3줄로 요약해 놓았다. 하지만 이 ‘여수대전(麗隨大戰)’은 결코 단 몇 줄로 정리될 만큼 간단하고 의미 없는 전투가 아니다. 그렇게 간단한 말들로 정리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실과 의미들을 담고 있는 전쟁이다. 이 전쟁은 일반적으로 승리의 역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살펴보면 고구려 건국이래, 아니 우리 민족 역사상 최대의 고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으며, 힘든 전투였던 만큼 상처도 많았다. 승리의 역사이기 이전에 시련의 역사이기도 했던 전투였던 것이다.
허나 고통 없는 영광이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 어떠한 영광 뒤에도 피나는 고통과 노력, 집념과 끈기는 필수적이지 않던가. 천하대장부 수나라와 북방의 패자 고구려의 동방천하가 정면으로 맞붙었던 여수대전(麗隨大戰). 역사상 최대의 정벌군에게 역사상 최대의 참패를 안겨준 이 전투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자, 찬란한 영광의 역사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글을 읽으면서 참 지루하다고 생각한 독자도 있을 것이고, 읽다가 중간에 책을 덮거나 다음 글로 넘어간 독자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글을 썼지만 다시 읽으면서 ‘학술지에 담을 글 치고는 너무 길고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부분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글을 끝까지 모두 읽은 독자겠지? 읽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물론 공학에 쩔어있는 공학도에게 신선한 글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져 준다면 더더욱 감사하다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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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9.12.13
  • 저작시기201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19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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