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특유의 ‘언어적 상상력’으로 일시적으로 정지된 것이지 실제로 성정치가 극복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개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여자아이이며 남자아이이며, 동시에 둘 다 아니다. <누가 해변에서...>에서 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는 이야기를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점이나, <달려라 아비>의 도입부에서 ‘그때 나의 몸은 말을 몰라서 어제도 내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라고 여기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김애란의 인물들은 자신이라는 스펙트럼에 의해 굴절된 현실만을 이야기한다.
4. 그렇다면 그녀는 영원한 화자일까, 20대 여성의 감수성의 해사함
김애란 소설의 전통성과 참신성은 ‘20대 작가’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즉 20대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꼭지와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음’의 일반성에 대한 꼭지가 맞물린 결과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20대적 감수성’은 어떤 것일까? 케케묵은 ‘세대론’을 들먹이려 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글을 보고 이야기하는 우리들은 어떠한 세대일까. 김애란의 소설은 한편으로는 일종의 세대 소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종의 함정이 있는데, 우리 세대는 <세대일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특정 시기에 특정의 문학적 경향이 있어 왔고 또 다음 시기에는 또 샤로운 하나의 경향으로 대체되는 과정의 반복이 문학계의 유행이었다면, 우리 세대는 이러한 경향들의 공존을 그 특징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애란은 현재 등단해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20대 여성의 해사함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이다. 앞서 열거한 작가들 가운데 안보윤이나 김사과는 네크로필리어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가졌고, 한유주가 보여주는 작풍은 다소 난해하고 현학적이어서 접근하기 힘들다. (재미있는 점은 안보윤이나 김사과는 대단히 평범한 감수성의 인물들이고 한유주는 오히려 트렌디한 사람이라는 점이다...-_-각설) 김애란이 <나는 편의점에..>나 <노크하지않는집> <영원한 화자>에서 보여주는 20대 여성의 사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감수성은 \'내추럴 본 쿨 걸\' 정이현의 X세대식 감수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울림을 갖는다. 보다 \'포스트-모던\'한 자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굳이 열거한다면, 김애란 소설의 등장인물에는 고유명사가 없으며 그저 그, 그녀, 따위로 불린다. 그러나 등장하는 상품이나 문화적 코드들에는 고유명사들이 분명하다(예컨대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디스와 삼다수를 사가는 장면 따위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고다르나 브레히트를 떠올리게 하는 교통사고장면과 더불어). 김동식이 지적하듯, 타자에 의해 타자화된, 현대문명의 기호에 의해 파편화된 주체들의 상정이다. 기호의 내파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언어 주체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혹은 우리는 영원한 화자이며, 욕망을 기호화하며, 그럴싸한 언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존재들이다. 우리 존재들이 <종이물고기>에 나오는 포스트잇이 붙은 옥탑방이 되지 않기 위해 그녀는/우리는 소설을/문학을/말을 하고 있고 또 듣는가보다.
4. 그렇다면 그녀는 영원한 화자일까, 20대 여성의 감수성의 해사함
김애란 소설의 전통성과 참신성은 ‘20대 작가’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즉 20대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꼭지와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음’의 일반성에 대한 꼭지가 맞물린 결과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20대적 감수성’은 어떤 것일까? 케케묵은 ‘세대론’을 들먹이려 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글을 보고 이야기하는 우리들은 어떠한 세대일까. 김애란의 소설은 한편으로는 일종의 세대 소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종의 함정이 있는데, 우리 세대는 <세대일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특정 시기에 특정의 문학적 경향이 있어 왔고 또 다음 시기에는 또 샤로운 하나의 경향으로 대체되는 과정의 반복이 문학계의 유행이었다면, 우리 세대는 이러한 경향들의 공존을 그 특징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애란은 현재 등단해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20대 여성의 해사함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이다. 앞서 열거한 작가들 가운데 안보윤이나 김사과는 네크로필리어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가졌고, 한유주가 보여주는 작풍은 다소 난해하고 현학적이어서 접근하기 힘들다. (재미있는 점은 안보윤이나 김사과는 대단히 평범한 감수성의 인물들이고 한유주는 오히려 트렌디한 사람이라는 점이다...-_-각설) 김애란이 <나는 편의점에..>나 <노크하지않는집> <영원한 화자>에서 보여주는 20대 여성의 사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감수성은 \'내추럴 본 쿨 걸\' 정이현의 X세대식 감수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울림을 갖는다. 보다 \'포스트-모던\'한 자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굳이 열거한다면, 김애란 소설의 등장인물에는 고유명사가 없으며 그저 그, 그녀, 따위로 불린다. 그러나 등장하는 상품이나 문화적 코드들에는 고유명사들이 분명하다(예컨대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디스와 삼다수를 사가는 장면 따위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고다르나 브레히트를 떠올리게 하는 교통사고장면과 더불어). 김동식이 지적하듯, 타자에 의해 타자화된, 현대문명의 기호에 의해 파편화된 주체들의 상정이다. 기호의 내파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언어 주체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혹은 우리는 영원한 화자이며, 욕망을 기호화하며, 그럴싸한 언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존재들이다. 우리 존재들이 <종이물고기>에 나오는 포스트잇이 붙은 옥탑방이 되지 않기 위해 그녀는/우리는 소설을/문학을/말을 하고 있고 또 듣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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