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1. 세계관의 개념
2. 세계관의 특징
3. 인간이 처한 상황과 세계관
4. 세계관을 분석하는 방법들
5. 소규모 구술사회의 세계관
6. 농경사회의 세계관
7. 근대적 세계관
8. 근대후기 또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세계관
9. 포스트모던 이후 또는 글로컬 세계관
10. 성경적 세계관의 정립을 위하여
11.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1. 세계관의 개념
2. 세계관의 특징
3. 인간이 처한 상황과 세계관
4. 세계관을 분석하는 방법들
5. 소규모 구술사회의 세계관
6. 농경사회의 세계관
7. 근대적 세계관
8. 근대후기 또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세계관
9. 포스트모던 이후 또는 글로컬 세계관
10. 성경적 세계관의 정립을 위하여
11.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본문내용
화적 시스템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과 관계된 한 가지 유형일 분이다. 그렇다면 문화적 변형은 사회적. 개인적. 생물학적. 물리적 시스템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영적 실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시스템적 접근을 할 때 토대주의를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관은 문화를 움직이는 엔진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과 공동체적 가정을 담은 저장소와 같다. 표면 문화가 변함에 따라 세계관도 긴 세월에 걸쳐 그 민족의 관습과 신념에 맞게 개조되는 경우가 많다. 세계관은 문화와 마찬가지로 늘 갈등과 변동 가운데 있다. 문화적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인간의 현실을 구성하는 다른 시스템들에 영향을 주고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문화적 변형은 사회적 시스템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또 심리적 시스템에도 영향을 준다. 생물리학적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독교적인 변형은 신앙공동체 및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 그들 상호간의 관계, 그들과 세상과의 관계 등 영적인 실재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현대인인 우리는 개인주의와 개인의 선택을 강조한다. 그래서 개인의 회심을 강조하곤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는 공동체-안의-개인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적.사회적.심리적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변형의 성격과 이 세 시스템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개인적 회심과 집단적 회심 : 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한 가지 본보기는 개인적 결심과 공동체적 결심 사이의 관계다. 개인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선교의 복음전도적 차원이다. 행위. 믿음. 세계관이 즉각적으로 변형되지 않기에 제자훈련을 통해 성숙한 신앙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적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변형은 또한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와 선교의 신실성의 문제, 곧 특정한 상황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에 걸맞게 살아내려고 애쓰는 측면이다. 각 지역의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사회문화적. 역사적 환경에서 기독교적 독특성을 지닌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통상 회심에 초점을 맞추었고 제자훈련에서는 회심을 떼어 놓아다. 그러나 칭의와 성화는 단일한 과정으로 다시 연결시켜야하며 통합하는 일이 필요하다.
- 민중운동 : 집단 지향성이 강한 사회들은 의사결정을 공동체적으로 내린다. 이런 사회에서는 기독교로의 개종이 여러 집단이나 공동체 전체와 관련된 문제다. 집단 지향적 사회에서의 회심은 대중이나 복수의 개인들이 참여하는 운동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집단적 결정은 더 많은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사후 양육은 집단적 움직임에서 아주 중요한 조처다. 그렇다면 집단적 회심 운동은 진정성이 있는가? 집단이 한 공동체로 행동을 할지라도 두 번째 단계에서 복수의 개인적 결정에 관해 논할 필요가 있다.
집단적 운동으로 인해 생기는 교회는 보통 토착적인 사회조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적 정체성이 강하고, 전통적인 사회 시스템의 조직 방식에 따라 교회를 조직하곤 한다.
- 민중운동의 단계들 : 집단적 회심 또는 복수의 개인적 회심은 윌리스가 ‘재활력 운동(1956)’에 속하는 것이다. (부흥운동과 다르다). 이 운동은 어느 집단의 사고행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월리스는 재활력 운동이 5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한다. (안정된 상태-개인적 스트레스가 증대된 상태-문화적 왜곡-재활력-신앙과 삶의 재활력) 민중운동에 관한 연구는 집단 지향성이 강한 사회에서의 변형 운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런 운동을 돕는 길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대 도시와 같이 집단적 연계성이 약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공동체는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사회는 복수의 개인적 회심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친구관계와 다양한 네트워크, 작고 친밀한 그룹을 만드는 것이 효과를 발휘해 왔다.
* 월리스의 이론은 회심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많은 과정임을 상기시켜 준다.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도록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그들에게 장차 지금보다 더 기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회심자들을 양육할 때에는 특히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자들이 겪는 불안에 민감하여서 그들이 내면의 갈등을 겪을 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종자들이 회심의 충격을 겪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개종자들은 회의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이 보통이다.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이 기간에 기독교 공동체는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회심시키려고 노력하는 일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교회 안에 있는 다음 세대도 깊이 있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회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녀들도 복음에 의해 변형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의 회심도 재검토하고 재확증되어야 한다.
그리고 월리스의 분석은 교회 자체도 계속되는 부흥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교회 자체가 2.3.4세대로 종교적 관습, 명목상의 신앙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비판적 평가도 없이 그대로 좇아가고 오랜 신자는 종교적 관습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검토하지 않기 십상이다. 교회 자체가 주기적으로 재활력 운동을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4) 결론
복음은 결국 변형된 삶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것은 약간의 변화, 수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 변환은 근본적이고 총체적이며 세계관을 비롯한 문화의 모든 차원이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이루시는 변형이다.
복음은 우리 삶을 변형시키는 우리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우리는 세상에 대항해서 싸우거나 세상에서 도피하라는 부름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소금과 누룩이 되라는 소명을 받았다. 참으로 위험한 것은 뒤로 물러나서 세상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또 다른 위험은 우리 문화의 포로가 되어 복음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변형은 신앙공동체 및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 그들 상호간의 관계, 그들과 세상과의 관계 등 영적인 실재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현대인인 우리는 개인주의와 개인의 선택을 강조한다. 그래서 개인의 회심을 강조하곤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는 공동체-안의-개인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적.사회적.심리적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변형의 성격과 이 세 시스템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개인적 회심과 집단적 회심 : 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한 가지 본보기는 개인적 결심과 공동체적 결심 사이의 관계다. 개인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선교의 복음전도적 차원이다. 행위. 믿음. 세계관이 즉각적으로 변형되지 않기에 제자훈련을 통해 성숙한 신앙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적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변형은 또한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와 선교의 신실성의 문제, 곧 특정한 상황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에 걸맞게 살아내려고 애쓰는 측면이다. 각 지역의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사회문화적. 역사적 환경에서 기독교적 독특성을 지닌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통상 회심에 초점을 맞추었고 제자훈련에서는 회심을 떼어 놓아다. 그러나 칭의와 성화는 단일한 과정으로 다시 연결시켜야하며 통합하는 일이 필요하다.
- 민중운동 : 집단 지향성이 강한 사회들은 의사결정을 공동체적으로 내린다. 이런 사회에서는 기독교로의 개종이 여러 집단이나 공동체 전체와 관련된 문제다. 집단 지향적 사회에서의 회심은 대중이나 복수의 개인들이 참여하는 운동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집단적 결정은 더 많은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사후 양육은 집단적 움직임에서 아주 중요한 조처다. 그렇다면 집단적 회심 운동은 진정성이 있는가? 집단이 한 공동체로 행동을 할지라도 두 번째 단계에서 복수의 개인적 결정에 관해 논할 필요가 있다.
집단적 운동으로 인해 생기는 교회는 보통 토착적인 사회조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적 정체성이 강하고, 전통적인 사회 시스템의 조직 방식에 따라 교회를 조직하곤 한다.
- 민중운동의 단계들 : 집단적 회심 또는 복수의 개인적 회심은 윌리스가 ‘재활력 운동(1956)’에 속하는 것이다. (부흥운동과 다르다). 이 운동은 어느 집단의 사고행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월리스는 재활력 운동이 5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한다. (안정된 상태-개인적 스트레스가 증대된 상태-문화적 왜곡-재활력-신앙과 삶의 재활력) 민중운동에 관한 연구는 집단 지향성이 강한 사회에서의 변형 운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런 운동을 돕는 길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대 도시와 같이 집단적 연계성이 약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공동체는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사회는 복수의 개인적 회심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친구관계와 다양한 네트워크, 작고 친밀한 그룹을 만드는 것이 효과를 발휘해 왔다.
* 월리스의 이론은 회심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많은 과정임을 상기시켜 준다.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도록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그들에게 장차 지금보다 더 기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회심자들을 양육할 때에는 특히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자들이 겪는 불안에 민감하여서 그들이 내면의 갈등을 겪을 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종자들이 회심의 충격을 겪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개종자들은 회의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이 보통이다.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이 기간에 기독교 공동체는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회심시키려고 노력하는 일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교회 안에 있는 다음 세대도 깊이 있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회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녀들도 복음에 의해 변형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의 회심도 재검토하고 재확증되어야 한다.
그리고 월리스의 분석은 교회 자체도 계속되는 부흥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교회 자체가 2.3.4세대로 종교적 관습, 명목상의 신앙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비판적 평가도 없이 그대로 좇아가고 오랜 신자는 종교적 관습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검토하지 않기 십상이다. 교회 자체가 주기적으로 재활력 운동을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4) 결론
복음은 결국 변형된 삶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것은 약간의 변화, 수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 변환은 근본적이고 총체적이며 세계관을 비롯한 문화의 모든 차원이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이루시는 변형이다.
복음은 우리 삶을 변형시키는 우리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우리는 세상에 대항해서 싸우거나 세상에서 도피하라는 부름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소금과 누룩이 되라는 소명을 받았다. 참으로 위험한 것은 뒤로 물러나서 세상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또 다른 위험은 우리 문화의 포로가 되어 복음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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