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3회 우승을 차지한 그는 주로 고귀한 가문과 무거운 주제 등을 다루었으며 드라마틱한 극 구조와 지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수려한 서정시로 칭송을 받는다. 아에스킬루스는 사부작(tetralogy, 각각 독립된 4편의 작품들이 하나의 이야기 또는 하나의 주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또 아에스킬루스는 극작뿐만 아니라 연출과 연기에 해당하는 업적도 남겼다. 그는 특히 스펙터클을 좋아하여 무대장치, 채색된 배경, 그리고 정교하게 제작된 의상 등의 새로운 형식으로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의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으며 신의 영역을 크게 다루고 있으며 그 안의 인간들의 삶을 그린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기술력이 부족하여 무대 위에서 효과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동을 서술하는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의 상상을 동요했다.
아에스킬루스의 작품은 대략90여 편 정도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제목이 알려진 작품들은 79편에 이르는데 그 제목들을 보면 아에스킬루스가 얼마나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지를 현재는 7편의 작품만이 남아있는데, <탄원자들>, <페르시아인>, <테베에 대항하는 칠인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오레스테이아 3부작>(아가멤논, 제주를 받치는 여인들 그리고 유메니데스 로 이루어짐)이 있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 c. 480~406 B.C.)-가장 ‘현대적인’ 인물로 꼽히는 그는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이었고, 바깥 세상에 한데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서 관망하기를 더 좋아했고, 또 당시의 사회적, 철학적 운동들을 검토해 보기를 더 좋아했다. 그가 작품속에서 거칠고 우악스러운 여성 인물들을 자주 다룬 것으로 미루어, 그가 평온치 못한 결혼생활로 인하여 여자를 싫어하게 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여성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다른 작가들보다 사실주의적인 작품성이 탁월한 점, 비극을 멜로드라마와 희극과 혼합한 점, 그리고 그리스 신들을 회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등으로 한층 현대적인 작가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는 작품의 독창성과 독립적인 사고방식으로 찬양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극작술 대부분은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극작가들에 의해 모방되는 모델이 된다.
현존하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모두 18편이다. 그 죽에서도 잘 알려진 작품 순으로 나열해 보면, <알세스티스>, <메디아>, <힙폴리투스>, <헤라클레스의 자식들>, <안드로마케>, <헤라클레스>, <탄원자들>, <헤큐바>, <트로이 여인들>, <엘렉트라>, <헬렌>,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 <페니키아의 여인들>, <오레스테스>, <바카에>,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 그리고 연대 미상의 풍자극인 <싸이클롭스> 등이다.
소포클레스(Sophocles, c. 496~406 B.C.)-‘비극의 완성자’라 불리는 소포클레스는 매우 정교하게 짜여진 극의 플롯 구조로 아에스킬루스가 이룩한 극작술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 그는 매우 능숙하게 등장인물과 사건 경귀 등을 소개해주고 나서 곧바로 클라이막스로 몰고 간다. 아에스킬루스에 이어 ‘제3의 배우’를 추가했으며 연극경연대회에서 24회 우승을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오이디푸스>에서는 ‘비극적 아이러니’(쫓는 사람이 결국 자신)를 통해서 극적흥미를 유발했다. 또 아에스킬루스 와는 달리 비극에 치닫는 주체가 오이디푸스왕 자신, 즉 인간이 되면서 비극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져 왔다.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c.448~380 B.C.)-그리스 연극 황금기의 가장 잘 알려진 희극 작가로 그의 작품들은 기원전 5세기말경에 쇠퇴의 길에 접어든 아테네의 당시 정치사회 상황을 잘 반영해 준다. 부유층의 아들로 태어난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는 그가 잘 교육받은 보수층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아테네는 급변하는 도시였다. 탐욕스러운 제국팽창주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단순하고 안정적이며 도덕적인 기존 질서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느끼기에 아테네의 미래를 파멸로 이끈다고 생각했던 사상과 인물들을 조롱하게 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포네소스 전쟁으로, 이 전쟁을 통해 아테네의 축적된 부는 고갈되기에 이르렀으며 기존 질서 체계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보수적인 인생과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음란한 위트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은 당시 아테네 사회의 만연된 개방된 성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구희극(아리스토파네스의 초기 극)은 환상적인 장면들을 포함하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가 쓴 작품은 모두 40여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11편으로 <아카르나이의 사람들>, <기사>, <구름>, <말벌>, <평화>, <새>, <라시스트라테>, <개구리>등이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말기 작품 중 <플라우투스>는 중희극(Middle Comedy)으로 분류되곤 한다. 중희극은 비정치적인 성향의 신희극(New Comedy)와 교량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그리스가 권력의 핵심부에서 밀려나면서, 유럽대륙에는 이탈리아 반도를 거점으로 한 새로운 문명이 부상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로마라는 도시를 수도로 하는 로마라는 문명이다. 이러한 로마의 대중 연희는 로마시대의 관객들의 기호에 영합하고자 대규모로 기획된다. 로마인들은 정복지에서 들여온 부와 노예들로 호강스런 삶을 누리게 되었으며, 여가시간도 충분했다. 이러한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로마인들은 비단 종교적인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뿐만 아니라 연중 거의 무휴로 극장예술을 즐겼던 것이다. 이러한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에 대해 알아보자. 첫 번 째로 로마의 희극작가들이다.
플라우투스(Plautus, c. 254~184 B.C.)-가장 인기 있는 로마의 희극작가로 기원전 3세기 말부터 2세기 초까지 활동했다. 로마의 비평가였던 키케로에 의하면, 플라우투스는 도회지풍의 매우 세련된데다 위트와 재능을 겸비한 귀재였다. 그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작품을
아에스킬루스의 작품은 대략90여 편 정도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제목이 알려진 작품들은 79편에 이르는데 그 제목들을 보면 아에스킬루스가 얼마나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지를 현재는 7편의 작품만이 남아있는데, <탄원자들>, <페르시아인>, <테베에 대항하는 칠인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오레스테이아 3부작>(아가멤논, 제주를 받치는 여인들 그리고 유메니데스 로 이루어짐)이 있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 c. 480~406 B.C.)-가장 ‘현대적인’ 인물로 꼽히는 그는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이었고, 바깥 세상에 한데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서 관망하기를 더 좋아했고, 또 당시의 사회적, 철학적 운동들을 검토해 보기를 더 좋아했다. 그가 작품속에서 거칠고 우악스러운 여성 인물들을 자주 다룬 것으로 미루어, 그가 평온치 못한 결혼생활로 인하여 여자를 싫어하게 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여성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다른 작가들보다 사실주의적인 작품성이 탁월한 점, 비극을 멜로드라마와 희극과 혼합한 점, 그리고 그리스 신들을 회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등으로 한층 현대적인 작가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는 작품의 독창성과 독립적인 사고방식으로 찬양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극작술 대부분은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극작가들에 의해 모방되는 모델이 된다.
현존하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모두 18편이다. 그 죽에서도 잘 알려진 작품 순으로 나열해 보면, <알세스티스>, <메디아>, <힙폴리투스>, <헤라클레스의 자식들>, <안드로마케>, <헤라클레스>, <탄원자들>, <헤큐바>, <트로이 여인들>, <엘렉트라>, <헬렌>,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 <페니키아의 여인들>, <오레스테스>, <바카에>,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 그리고 연대 미상의 풍자극인 <싸이클롭스> 등이다.
소포클레스(Sophocles, c. 496~406 B.C.)-‘비극의 완성자’라 불리는 소포클레스는 매우 정교하게 짜여진 극의 플롯 구조로 아에스킬루스가 이룩한 극작술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 그는 매우 능숙하게 등장인물과 사건 경귀 등을 소개해주고 나서 곧바로 클라이막스로 몰고 간다. 아에스킬루스에 이어 ‘제3의 배우’를 추가했으며 연극경연대회에서 24회 우승을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오이디푸스>에서는 ‘비극적 아이러니’(쫓는 사람이 결국 자신)를 통해서 극적흥미를 유발했다. 또 아에스킬루스 와는 달리 비극에 치닫는 주체가 오이디푸스왕 자신, 즉 인간이 되면서 비극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져 왔다.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c.448~380 B.C.)-그리스 연극 황금기의 가장 잘 알려진 희극 작가로 그의 작품들은 기원전 5세기말경에 쇠퇴의 길에 접어든 아테네의 당시 정치사회 상황을 잘 반영해 준다. 부유층의 아들로 태어난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는 그가 잘 교육받은 보수층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아테네는 급변하는 도시였다. 탐욕스러운 제국팽창주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단순하고 안정적이며 도덕적인 기존 질서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느끼기에 아테네의 미래를 파멸로 이끈다고 생각했던 사상과 인물들을 조롱하게 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포네소스 전쟁으로, 이 전쟁을 통해 아테네의 축적된 부는 고갈되기에 이르렀으며 기존 질서 체계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보수적인 인생과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음란한 위트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은 당시 아테네 사회의 만연된 개방된 성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구희극(아리스토파네스의 초기 극)은 환상적인 장면들을 포함하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가 쓴 작품은 모두 40여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11편으로 <아카르나이의 사람들>, <기사>, <구름>, <말벌>, <평화>, <새>, <라시스트라테>, <개구리>등이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말기 작품 중 <플라우투스>는 중희극(Middle Comedy)으로 분류되곤 한다. 중희극은 비정치적인 성향의 신희극(New Comedy)와 교량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그리스가 권력의 핵심부에서 밀려나면서, 유럽대륙에는 이탈리아 반도를 거점으로 한 새로운 문명이 부상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로마라는 도시를 수도로 하는 로마라는 문명이다. 이러한 로마의 대중 연희는 로마시대의 관객들의 기호에 영합하고자 대규모로 기획된다. 로마인들은 정복지에서 들여온 부와 노예들로 호강스런 삶을 누리게 되었으며, 여가시간도 충분했다. 이러한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로마인들은 비단 종교적인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뿐만 아니라 연중 거의 무휴로 극장예술을 즐겼던 것이다. 이러한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에 대해 알아보자. 첫 번 째로 로마의 희극작가들이다.
플라우투스(Plautus, c. 254~184 B.C.)-가장 인기 있는 로마의 희극작가로 기원전 3세기 말부터 2세기 초까지 활동했다. 로마의 비평가였던 키케로에 의하면, 플라우투스는 도회지풍의 매우 세련된데다 위트와 재능을 겸비한 귀재였다. 그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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