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진독수
1) 주요 주장
(1) 교육사상
(2) 마르크스주의
(3) 청년 계몽
2) 의미
2. 노신
1) 주요 주장
(1) 신문학
(2) 국민성 개조
(3) 리얼리즘
2) 의미
3. 호적
1) 주요 주장
(1) 새로운 사상과 정신
(2) 팔불주의
2) 의미
Ⅲ. 결론
참고문헌
Ⅱ. 본론
1. 진독수
1) 주요 주장
(1) 교육사상
(2) 마르크스주의
(3) 청년 계몽
2) 의미
2. 노신
1) 주요 주장
(1) 신문학
(2) 국민성 개조
(3) 리얼리즘
2) 의미
3. 호적
1) 주요 주장
(1) 새로운 사상과 정신
(2) 팔불주의
2) 의미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 종문오라는 사람은 주워싱턴(駐華盛頓) 청화학생감독처(淸華學生監督處)의 비서이다. 그는 중국유학생들에게 생활비를 보낼 때마다 항상 사회혁신에 관한 홍보물도 같이 보내었다. 어느 날에 호적은 한자를 해지하고 알파벳을 사용하라는 내용을 담은 전단지를 받았다. 그 내용을 찬성하지 않은 호적은 이로부터 문학혁명에 대한 사고를 시작하였다. 그는1915년 8월 26일의 일기에서 \"한자의 해지와 알파벳의 사용\"이라는 주장을 반박하였다. 그의 관점에 따라 한문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라 지금까지 이미 전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알파벳으로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문이 습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무시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는 한문을 교수하는 동시에 백화문도 같이 교수하자는 주장을 밝혔다. 호적은 한문이 이미 \"반 죽은 문자(半死的文字)\"라고 하고 백화문이야말로 살아 있는 문자라고 했다. 1915년 호적은 매광적(梅光適) 등 친구들과 한문과 백화문을 토론하면서 문학혁명에 관한 논쟁을 시작했다. 그들이 했던 논쟁의 중심, 즉 문학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시 창작에 있어 백화의 사용여부이다. 호적의 관점에 따르면 문학혁명은 민간문학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 그는 문학은 소수 지식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보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매광적은 문학 수양은 구별된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귀족문학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화를 시 창작에 사용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문학 수양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매광적을 설득하지 못한 호적은 직접 백화로 시 창작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즉, 매광적과의 논쟁은 그가 『상시집』을 창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1917년 6월, 호적은 미국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왔지만, 문학혁명 논쟁은 192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2) 팔불주의
호적이 1917년『신청년(新靑年)』에「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芻議)」를 발표한 것은 문학혁명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이 글에서 그는 신문학의 원칙을 가리키는 \"팔사(八事)\"를 밝혔다. 그 후에 같은 잡지에 발표한「건설적문학혁명론(建設的文學革命論)」에 호적은 \"팔사\"의 기초에 \"팔불주의(八不主義)\"로 수정하였다. 그는 \"팔불주의(八不主義)\"에서 신문학은 내용적으로는 실제적인 의의가 없는 것과 진실한 감정을 담지 않은 것을 피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형식에 있어서는 먼저 용어의 경우 전고(典故)를 담은 고사성어(古事成語)와 같은 함축된 단어와 진부한 상투어의 사용을 피해야 하며, 구조적으로는 대구(對句)를 따지지 말고 반드시 근대 문법에 맞춰서 작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 옛 사람을 모방하지 않을 것과 속자속어(俗字俗語)의 사용을 피해야 하는 것도 주장에 포함되었다.
2) 의미
호적은 중국에서 고등학교의 학업을 마치고 겨우 미국에 건너간 것이다. 어렸을 때 고향에서 부모와 서당(書堂) 선생님을 따라서 전통교육을 받다가 1904년부터 상해에 가서 신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상해에 있는 동안에 그는 신지식을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 문학, 철학 작품의 탐독을 통하여 철학과 문학의 취미도 키웠다. 이는 그의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미국에 간 뒤, 호적은 원문으로 서양 근대문학작품을 읽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 호적은 친구 매광적 등과 같이 문학혁명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모든 것을 반드시 문언으로 써야 된다고 주장하는 매광적은 점점 소설 등 시를 제외한 다른 장르에 백화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증하였는데 그들 사이의 논쟁의 핵심적인 문제는 백화를 시창작에 사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호적은 시는 소수 지식인들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보급할 수 있도록 해줘야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매광적은 시를 창작할 줄 아는 문학 수양이 누구나 모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백화를 사용하여 시를 써서 난이도를 낮추는 것보다 사람들의 문학수양을 향상시키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토론을 통하여 호적은 결국 매광적을 철저히 설득하지 못 하고 드디어 자신의 시험으로 백화가 시창작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결심을 하였고『상시집』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호적은 백화 신시를 시험하면서 신시 창작의 이론도 따라서 제기하였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강의와 교재 제3강 내용을 토대로 하여 오사 시기 문학혁명을 주창한 선구자들의 주요 주장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서술해 보았다. 국가적 현실에 심각한 절망감을 느꼈던 노신은 ‘문학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광인일기를 시작하여 1918년에서 1925년까지 “인생을 위한”, “인생을 개선하기 위한”많은 소설을 발표한다. 이 작품들은 각각 창작집인 喊 (1923)과 彷徨 (1926)에 수록되는데 특히 첫 창작 소설집인 喊 에 실린 작품들은 강한 비판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은 삶의 현장에서 채취한 인물들로서 노신은 사회현실에 대해 각성하거나 고민하고 방황하고 타락하는 지식인형상, 억압받고 착취당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형상, 유교적인 봉건 폐습으로 인해 박해 받는 여성들의 형상 등을 통하여 중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궁극적인 목표로 불합리한 현실과 그 본질에 대해 거침없이 폭로하고 비판하고 있다.
참고문헌
백영길, ≪중국항전기 리얼리즘 문학논쟁 연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서경호, ≪중국 문학의 발생과 그 변화의 궤적≫, 문학과지성사, 2003.
胡適 지음, 한상덕 옮김, 『상시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홍석표, ≪중국현대문학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9.
전형준, 노신 소설과 54운동, 외국문학 제3호, 전예원,1984.
이병주, 중국 근대화를 이끈 걸출한 인물들, 지식산업사, 2006.
김경석 지음, 중국 현대문학사, 학고방, 2016.
신동준, 인물로 읽는 중국근대사, 인간사랑, 2017.
김영옥, 한중 근대소설의 확립과정 비교연구,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2) 팔불주의
호적이 1917년『신청년(新靑年)』에「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芻議)」를 발표한 것은 문학혁명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이 글에서 그는 신문학의 원칙을 가리키는 \"팔사(八事)\"를 밝혔다. 그 후에 같은 잡지에 발표한「건설적문학혁명론(建設的文學革命論)」에 호적은 \"팔사\"의 기초에 \"팔불주의(八不主義)\"로 수정하였다. 그는 \"팔불주의(八不主義)\"에서 신문학은 내용적으로는 실제적인 의의가 없는 것과 진실한 감정을 담지 않은 것을 피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형식에 있어서는 먼저 용어의 경우 전고(典故)를 담은 고사성어(古事成語)와 같은 함축된 단어와 진부한 상투어의 사용을 피해야 하며, 구조적으로는 대구(對句)를 따지지 말고 반드시 근대 문법에 맞춰서 작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 옛 사람을 모방하지 않을 것과 속자속어(俗字俗語)의 사용을 피해야 하는 것도 주장에 포함되었다.
2) 의미
호적은 중국에서 고등학교의 학업을 마치고 겨우 미국에 건너간 것이다. 어렸을 때 고향에서 부모와 서당(書堂) 선생님을 따라서 전통교육을 받다가 1904년부터 상해에 가서 신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상해에 있는 동안에 그는 신지식을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 문학, 철학 작품의 탐독을 통하여 철학과 문학의 취미도 키웠다. 이는 그의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미국에 간 뒤, 호적은 원문으로 서양 근대문학작품을 읽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 호적은 친구 매광적 등과 같이 문학혁명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모든 것을 반드시 문언으로 써야 된다고 주장하는 매광적은 점점 소설 등 시를 제외한 다른 장르에 백화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증하였는데 그들 사이의 논쟁의 핵심적인 문제는 백화를 시창작에 사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호적은 시는 소수 지식인들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보급할 수 있도록 해줘야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매광적은 시를 창작할 줄 아는 문학 수양이 누구나 모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백화를 사용하여 시를 써서 난이도를 낮추는 것보다 사람들의 문학수양을 향상시키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토론을 통하여 호적은 결국 매광적을 철저히 설득하지 못 하고 드디어 자신의 시험으로 백화가 시창작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결심을 하였고『상시집』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호적은 백화 신시를 시험하면서 신시 창작의 이론도 따라서 제기하였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강의와 교재 제3강 내용을 토대로 하여 오사 시기 문학혁명을 주창한 선구자들의 주요 주장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서술해 보았다. 국가적 현실에 심각한 절망감을 느꼈던 노신은 ‘문학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광인일기를 시작하여 1918년에서 1925년까지 “인생을 위한”, “인생을 개선하기 위한”많은 소설을 발표한다. 이 작품들은 각각 창작집인 喊 (1923)과 彷徨 (1926)에 수록되는데 특히 첫 창작 소설집인 喊 에 실린 작품들은 강한 비판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은 삶의 현장에서 채취한 인물들로서 노신은 사회현실에 대해 각성하거나 고민하고 방황하고 타락하는 지식인형상, 억압받고 착취당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형상, 유교적인 봉건 폐습으로 인해 박해 받는 여성들의 형상 등을 통하여 중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궁극적인 목표로 불합리한 현실과 그 본질에 대해 거침없이 폭로하고 비판하고 있다.
참고문헌
백영길, ≪중국항전기 리얼리즘 문학논쟁 연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서경호, ≪중국 문학의 발생과 그 변화의 궤적≫, 문학과지성사, 2003.
胡適 지음, 한상덕 옮김, 『상시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홍석표, ≪중국현대문학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9.
전형준, 노신 소설과 54운동, 외국문학 제3호, 전예원,1984.
이병주, 중국 근대화를 이끈 걸출한 인물들, 지식산업사, 2006.
김경석 지음, 중국 현대문학사, 학고방, 2016.
신동준, 인물로 읽는 중국근대사, 인간사랑, 2017.
김영옥, 한중 근대소설의 확립과정 비교연구,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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