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문명과 역사입니다. 마야, 아즈텍, 잉카, 잉카문명 이전의 문명들(임시기, 차빈, 빠리까스, 모치까, 나스까, 띠아무아나고, 치무문명) 역사의 조사 및 분석) 목차부터 맺음말까지 완성형 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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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문명과 역사입니다. 마야, 아즈텍, 잉카, 잉카문명 이전의 문명들(임시기, 차빈, 빠리까스, 모치까, 나스까, 띠아무아나고, 치무문명) 역사의 조사 및 분석) 목차부터 맺음말까지 완성형 리포트입니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라틴아메리카 문명과 역사
1. 마야 문명
2. 아스텍 문명
3. 잉카 문명
3.1 잉카 문명 이전의 문명들
3.1.1 원시기
3.1.2 차빈 문명
3.1.3 빠리까스 문명
3.1.4 모치까 문명
3.1.5 나스까 문명
3.1.6 띠아무아나고 문명
3.1.7 치무 문명

Ⅲ. 참고문헌

본문내용

어 있다. 무늬는 물고기, 새, 곤충 등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정교하게 묘사하였다. 신을 의미한 고양이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차빈 문명의 재규어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나스까 선\'이다. 이 선은 빨빠와 나스까 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사막의 평원에 그려져 있다. 그려진 모양은 18종의 새 모양, 12종의 동물 모양, 인간의 형체, 기하형의 무늬 등 다양하다. 그 크기는 4m에서부터 무려 10㎞에 달하는데, 한 예로 원숭이 모양의 무늬는 대략 길이가 80m이고 새의 날개는 120m에 이른다. 나스까인들은 작은 토담집을 만들어 빈부의 격차나 신분의 차이가 없는 작은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3.1.6 띠아우아나고 문명(Tiahuanaco, B.C. 1580.-A.D. 1200.)
기원후 600년경에 이미 띠아우아나꼬 문명은 안데스의 한랭한 사막지역에서 나스까와 모치까 문명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의 띠띠까까호 남쪽 20㎞정도 지점에 위치한 띠아우아나꼬가 제식의 중심지로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띠아우아나꼬는 해발 4,200m의 바위로 된 고지에 형성된 신전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들이 신봉하던 신은 땅딸막하고 퓨마의 머리를 본뜬 머리장식을 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신전의 태양문은 높이 2.75m, 무게 10톤으로 여기에 새겨져 있는 신의 모습은 커다란 얼굴에 모가 나 있고 크게 뜬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의 띠아우아나꼬 문명이 안데스와 그 해안 지역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띠아우아나꼬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요 유적지의 하나인 엘 뗌쁠레떼는 가로 30m, 세로 25m 지하 1.7m를 파서 돌로 축조하여 쌓았으며 벽면에는 100개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에는 모놀리또 석상이 있는데 그 크기가 높이 7.3m, 폭 1.2m, 무게가 17톤이나 된다. 또한 이들의 돌 조각 기술은 안데스 지역에서 최고의 수준에 달해 있었다. 100톤에 달하는 석재를 정확하게 절단하고 연마하여 매끈하게 마무리하였다. 돌과 돌 사이의 접촉을 위해 I자형의 홈을 연결부에 만들고, 거기에 구리를 박아 넣거나 또는 녹여 넣거나 해서 꺽쇠 구실을 하게 한 것도 많다.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여 그들은 아카빠나라는 피라밋을 축조했다. 이 피라밋은 언덕 위에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가로 108m, 세로 135m나 된다.
3.1.7 치무 문명(Chimu, A.D. 900.-1450.)
삐우라에서 리막에 이르는 해안 지방을 따라 남북으로 형성되었던 문명으로 세습왕조체제를 유지하였다. \'치무\'라는 이름은 \'치모\'라는 계곡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기인하였다. 찬찬이 수도로서 지금의 뜨루히요 시 근교에 해당한다.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광장과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주거지와 창고 그리고 저수지가 있다. 흙벽돌로 만들어진 담은 폭 1m 높이 9m 규모의 응대함을 자랑한다. 특이한 점은 담들이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자형으로 쌓아 올려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러 면에서 모치까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언어도 모치까어를 사용하였다. 치무족은 상당한 수준의 도시문화를 형성하였고 금속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동, 청동, 금, 은 등의 야금술과 청동 합금술도 발달하여 곡괭이, 칼 같은 농기구와 장신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북쪽의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직조기술이 발달하여 염색한 천에다 무늬를 넣고 레이스를 달아 화려한 직물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죽은 이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도 독특하였다. 왕조 초기에는 벽감으로 시체의 머리를 받쳐 구부려진 자세로 토기 및 금속의 부장물과 함께 매장하였으나 후기에는 반듯이 뉘운 자세로 매장하였다.
뽀뽈부에 기록되어 있는 창조신화
태초에는 단지 물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때 신들이 \"땅\"이라고 외치자 땅이 나타났다. 창조주들은 즉시 땅을 나무로 뒤덮었고 강줄기를 텄으며 피조물들을 만들어 각각의 서식지를 정하여 주었다. 그러나 이 피조물들은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창조주들에게 찬양을 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창조주들은 흙을 빚어 보다 나은 피조물을 만들었다. 이 피조물들은 말은 할 수 있었지만 지능이 부족하였고 또한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에 의해 쉽게 용해되어버리곤 하였다. 이에 불만족한 신들은 이 피조물들을 파괴시켜버렸다. 그 후 신들은 나무로 피조물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말하고 먹고 번식할 수는 있었지만 얼굴에 표정이 없었고 또한 피를 갖고 있지 않았다. 제한된 지능을 갖고 있었던 이들은 자신들의 창조주들에 대하여 전혀 감사의 뜻을 비추지 않았다. 실망한 신들은 이들을 파괴시키기 위해 강한 비를 내렸는데, 마치 검은 송진과도 같은 물줄기가 지구표면을 뒤덮어 어둠속에 잠기게 하였다.
여기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나무인형들의 후손이 오늘날의 윈숭이인 것이다. 마지막 창조의 작업에서 신들은 옥수수죽으로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들의 숫자는 4명이었고 매우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의 대부분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들과 동등해지는 것을 원치않았던 신들은 가벼운 안개를 뿌려 인간의 눈을 흐리게 하였는 바, 이때부터 인간의 시야가 축소되있다. 그 후 신들은 이 4명의 남자를 위해 4명의 여자를 창조하였다. 이들은 진정 그들의 창조주들에게 영광을 돌렸는데 바로 이들이 오늘날 마야족들의 조상인 것이다.
Ⅲ. 참고문헌
구경모, 안태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어제와 오늘』, 산지니, 2016
김우성,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역사·문화 연구』, 부산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8
최명호, 『남아메리카 문명 - 신화에서 역사로, 라틴아메리카 문명의 모든 것』, 이펍코리아, 2013
조영현,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운동: 사파티스타운동과 에콰도르원주민민족연맹(CONAIE)에 대한 비교 연구』, 라틴아메리카연구소, 2018, 317-325pp
김기현,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인권: 문화적 다양성의 지향』,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2005, 85-93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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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1.03.17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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