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장 병든 교회
제2장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제3장 하나님 나라를 펼치다
제4장 하나님 나라는 현재다
제5장 하나님 나라는 미래다
제6장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살아내라
제7장 하나님 나라의 긴장 관계를 살아내라
제8장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라
제9장 하나님 나라의 교회를 세우라
제10장 하나님 나라는 확장된다
제11장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
제2장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제3장 하나님 나라를 펼치다
제4장 하나님 나라는 현재다
제5장 하나님 나라는 미래다
제6장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살아내라
제7장 하나님 나라의 긴장 관계를 살아내라
제8장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라
제9장 하나님 나라의 교회를 세우라
제10장 하나님 나라는 확장된다
제11장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
본문내용
선교 활동의 중심은 늘 마태복음 24장14절을 읽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에게 있다.
복음 전수로 제자 삼기: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이 사회참여나 정의 실현, 교회 성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수받아서, 달음박질하고, 다음 주자에게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고, 살아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복음 전수’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여기에 등장하는 대 위임령의 구조를 생각해 보자. 이 대 위임령에는 세가지 종속분사가 등장한다. 그것은 “가서(going), 세례를 베풀고(baptizing), 가르쳐(teaching)”이다. 그러면 ‘주동사’는 무엇인가? 바로 “제자를 삼으라(make disciples)”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명령법으로 되어 있다. 분사들은 이 과정의 양상들을 설명하는 반면에 명령법은 위임의 중심적 의미를 설명한다. 물론 이 분사들도 명령적인 주동사로 인해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위임의 과정을 특징짓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제자 삼는 사역’에 대한 핵심요소들을 생각하게 된다. 교회는 ‘복음 전파 사역’과 ‘회심 사역’ 그리고 ‘가르치는 사역’과 ‘양육 사역’을 통해 <제자 삼는 사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를 세우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도록 한 지체 한 지체를 세워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사람(일대일)세우기’에 대한 깊은 철학이 드러나 있다. 교회에 지도자를 주신 목적은 지도자들이 모든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훈련시켜서 그들 스스로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한 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에 이것을 충분히 적용해 가야할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일대일로 훈련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복음을 전수받은 성도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수하는 제자훈련을 살려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이 또 다른 충성된 성도들을 계속해서 키워낼 것이다. 이러한 영적원리는 현대 교회가 다시 되찾아야 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 나라는 완성되는 것일까?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날과 그때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의 삶을 들여다 보자. 종말에 관심이 있는가? 개인 종말에는 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종말에 정말 관심이 있는가? 현대 기독교인들이 또 잃어버린 것이 있다. 바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교인들은 재림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재림에 대해 설교하면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더 잘 살기 바라기 때문이다. 재림에 대해 이해하는 교인들조차도 막연함에 쌓여있는 것 같다. 언제 재림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자기의 소관이 아니니 그저 방관하는 자세로 생각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소망해야 한다. 재림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를 분별하지 못한 치명적인 오류들이 우리들의 역사 속에 아픈 과거로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시한부 종말론(Imminent Eschatology)’과 같은 사이비 이단 사상에 빠진 것이다. 재림을 기다리기는 하나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켰던 사상이 아닌가?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사이비 이단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되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고 깨어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복음 전수로 제자 삼기: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이 사회참여나 정의 실현, 교회 성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수받아서, 달음박질하고, 다음 주자에게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고, 살아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복음 전수’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여기에 등장하는 대 위임령의 구조를 생각해 보자. 이 대 위임령에는 세가지 종속분사가 등장한다. 그것은 “가서(going), 세례를 베풀고(baptizing), 가르쳐(teaching)”이다. 그러면 ‘주동사’는 무엇인가? 바로 “제자를 삼으라(make disciples)”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명령법으로 되어 있다. 분사들은 이 과정의 양상들을 설명하는 반면에 명령법은 위임의 중심적 의미를 설명한다. 물론 이 분사들도 명령적인 주동사로 인해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위임의 과정을 특징짓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제자 삼는 사역’에 대한 핵심요소들을 생각하게 된다. 교회는 ‘복음 전파 사역’과 ‘회심 사역’ 그리고 ‘가르치는 사역’과 ‘양육 사역’을 통해 <제자 삼는 사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를 세우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도록 한 지체 한 지체를 세워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사람(일대일)세우기’에 대한 깊은 철학이 드러나 있다. 교회에 지도자를 주신 목적은 지도자들이 모든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훈련시켜서 그들 스스로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한 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에 이것을 충분히 적용해 가야할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일대일로 훈련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복음을 전수받은 성도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수하는 제자훈련을 살려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이 또 다른 충성된 성도들을 계속해서 키워낼 것이다. 이러한 영적원리는 현대 교회가 다시 되찾아야 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하나님 나라는 완성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 나라는 완성되는 것일까?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날과 그때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의 삶을 들여다 보자. 종말에 관심이 있는가? 개인 종말에는 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종말에 정말 관심이 있는가? 현대 기독교인들이 또 잃어버린 것이 있다. 바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교인들은 재림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재림에 대해 설교하면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더 잘 살기 바라기 때문이다. 재림에 대해 이해하는 교인들조차도 막연함에 쌓여있는 것 같다. 언제 재림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자기의 소관이 아니니 그저 방관하는 자세로 생각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소망해야 한다. 재림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를 분별하지 못한 치명적인 오류들이 우리들의 역사 속에 아픈 과거로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시한부 종말론(Imminent Eschatology)’과 같은 사이비 이단 사상에 빠진 것이다. 재림을 기다리기는 하나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켰던 사상이 아닌가?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사이비 이단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되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고 깨어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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