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과제명]
교재 『동서양 고전의 이해』 1~15장 각각 장의 마지막에는 ‘3. 원문 읽기’가 있다. 이 중 인상 깊게 읽은 고전 원문의 장과 제목을 밝히고, 자신이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을 서술하시오. (50점)
※ 대상 고전의 원문은 한 편부터 세 편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제2장, 제4장, 제5장 세 편의 고전 원문을 선택해서 과제를 작성할 경우, 그 이상의 고전 원문은 선택할 수 없다.
- 각각 원문의 ‘장과 제목’, ‘읽은 원문의 전체 쪽수’를 글을 시작하는 맨 앞에 표기하여 밝히시오. ☞ 예시) 제4장 신채호 『 』, 91~93
목차
1, 저자 및 작품 소개
2,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
참고문헌
교재 『동서양 고전의 이해』 1~15장 각각 장의 마지막에는 ‘3. 원문 읽기’가 있다. 이 중 인상 깊게 읽은 고전 원문의 장과 제목을 밝히고, 자신이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을 서술하시오. (50점)
※ 대상 고전의 원문은 한 편부터 세 편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제2장, 제4장, 제5장 세 편의 고전 원문을 선택해서 과제를 작성할 경우, 그 이상의 고전 원문은 선택할 수 없다.
- 각각 원문의 ‘장과 제목’, ‘읽은 원문의 전체 쪽수’를 글을 시작하는 맨 앞에 표기하여 밝히시오. ☞ 예시) 제4장 신채호 『 』, 91~93
목차
1, 저자 및 작품 소개
2,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쓴다면 그 인물을 재상이나 사대부로 기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p 134
조선 중종 시기 개혁을 주창했던 조광조는 학문과 덕행, 재주가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조선 군주가 직접 면접으로 선발, 관료로 임명하게 주청하였다. 훈구파 대신들의 자제들이 선대의 공로로 조정의 요직을 독점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으나 본디 취지는 산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하고 덕성과 예의가 바른 선비들을 중요하기 위한 개혁 시책 중 하나였다. 예와 군신의 도리를 중시했던 조선 사대부들로서는 학행과 덕성이 높은 젊은 선비들을 중요하자는 데에 대놓고 반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늘이 백성을 낳은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며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p 134
순자는 백성들은 하늘의 자식으로 그 중 하나를 임금으로 세운 것이지 백성을 임금의 권세를 세우는 도구로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들을 편안하게 섬기라는 의미에서 임금을 세운 것이라는 것이 순자의 논리다. 임금은 이처럼 하늘의 뜻에 맞게 올바른 정치로 백성들을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핌으로서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권능을 보장받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번성한 제자백가는 실로 다양한 사상의 집합체라 할 정도로 다양한 학설과 이론이 난무했다. 아마 이 시기는 그리스 철학의 융성기와 비견될 정도로 중국 철학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백화쟁명의 사상적 경쟁에서 유가는 단연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공자와 맹자를 비롯하여 순자까지도 유가의 사상가 중 하나로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순자의 사상적 기저는 유가에 있었다. 실제로 순자는 공자의 사상 중 예(禮)를 강조하여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순자는 유가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법가의 사상적 기반을 닦았다. 공자나 맹자가 엄격하게 배격했던 권력에 의한 신상필벌(信賞必罰), 즉 엄정한 법 집행에 대해 순자는 허용적이었다. 즉 왕도를 통한 인의의 정치로는 태생적으로 선량하지 못한 다수의 민중을 다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유가에서는 금기시되는 법치주의 정치 본연의 자세로서 \'패도(覇道)\'의 존재가치를 시인한 셈이었다. 이 때문에 정통적인 유가에서는 한때 순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척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순자의 저서 순자에서 보면 덕치주의와 법치주의를 포함하는 정치사상을 피력하면서 유가와 법가를 결부하는 구실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순자는 공자나 맹자 등의 유교사상뿐만 아니라 제자백가로 불리는 전국시대의 다른 학파의 사상까지 비판·섭취하여 유교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사상체계를 수립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순자가 비록 인간이 악한 본성을 타고 났지만 그 본성은 욕심 때문에 비롯된 것이며 예와 덕성을 일깨우는 교육과 수련을 통해 바뀔 수 있다고 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이다. 진시황 식의 엄혹한 형벌 통치 이전에 백성들을 교화하고 군주가 덕스럽고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류종렬 외, 『동서양 고전의 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조선 중종 시기 개혁을 주창했던 조광조는 학문과 덕행, 재주가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조선 군주가 직접 면접으로 선발, 관료로 임명하게 주청하였다. 훈구파 대신들의 자제들이 선대의 공로로 조정의 요직을 독점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으나 본디 취지는 산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하고 덕성과 예의가 바른 선비들을 중요하기 위한 개혁 시책 중 하나였다. 예와 군신의 도리를 중시했던 조선 사대부들로서는 학행과 덕성이 높은 젊은 선비들을 중요하자는 데에 대놓고 반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늘이 백성을 낳은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며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p 134
순자는 백성들은 하늘의 자식으로 그 중 하나를 임금으로 세운 것이지 백성을 임금의 권세를 세우는 도구로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들을 편안하게 섬기라는 의미에서 임금을 세운 것이라는 것이 순자의 논리다. 임금은 이처럼 하늘의 뜻에 맞게 올바른 정치로 백성들을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핌으로서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권능을 보장받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번성한 제자백가는 실로 다양한 사상의 집합체라 할 정도로 다양한 학설과 이론이 난무했다. 아마 이 시기는 그리스 철학의 융성기와 비견될 정도로 중국 철학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백화쟁명의 사상적 경쟁에서 유가는 단연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공자와 맹자를 비롯하여 순자까지도 유가의 사상가 중 하나로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순자의 사상적 기저는 유가에 있었다. 실제로 순자는 공자의 사상 중 예(禮)를 강조하여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순자는 유가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법가의 사상적 기반을 닦았다. 공자나 맹자가 엄격하게 배격했던 권력에 의한 신상필벌(信賞必罰), 즉 엄정한 법 집행에 대해 순자는 허용적이었다. 즉 왕도를 통한 인의의 정치로는 태생적으로 선량하지 못한 다수의 민중을 다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유가에서는 금기시되는 법치주의 정치 본연의 자세로서 \'패도(覇道)\'의 존재가치를 시인한 셈이었다. 이 때문에 정통적인 유가에서는 한때 순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척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순자의 저서 순자에서 보면 덕치주의와 법치주의를 포함하는 정치사상을 피력하면서 유가와 법가를 결부하는 구실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순자는 공자나 맹자 등의 유교사상뿐만 아니라 제자백가로 불리는 전국시대의 다른 학파의 사상까지 비판·섭취하여 유교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사상체계를 수립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순자가 비록 인간이 악한 본성을 타고 났지만 그 본성은 욕심 때문에 비롯된 것이며 예와 덕성을 일깨우는 교육과 수련을 통해 바뀔 수 있다고 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이다. 진시황 식의 엄혹한 형벌 통치 이전에 백성들을 교화하고 군주가 덕스럽고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류종렬 외, 『동서양 고전의 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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