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2. 소련의 미사일 기지 건설의 배경
3. 소련과 쿠바의 연합 및 미국의 대응
4. 임박한 제3차 세계대전
5. 검은 토요일과 일촉즉발의 상황
6. 소련의 미사일 철수
2. 소련의 미사일 기지 건설의 배경
3. 소련과 쿠바의 연합 및 미국의 대응
4. 임박한 제3차 세계대전
5. 검은 토요일과 일촉즉발의 상황
6. 소련의 미사일 철수
본문내용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미리 예정되었던 아틀라스 로켓 ICBM의 시험발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발사된 미사일에는 핵탄두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이 미사일은 중국과 소련 방향으로 발사되었다. 이에 소련 측은 핵전쟁에 대비한 전쟁 준비를 시작하였으며 아울러 쿠바 또한 전국에 민방위체계 가동을 선포하고 공습에 대한 지침을 전파하였다. 더 나아가 영국도 핵전쟁 태세에 돌입하며 전 세계가 다시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였다. 게다가 다음날인 28일에는 미국의 U-2 정찰기가 소련 브란겐 섬의 영공을 침범하였으며 미국의 F-102 요격기들이 비통상탄두 미사일(일반 폭약 탄두가 아닌 탄두, 즉, 핵무기를 의미)을 탑재하고 날아올라 소련 요격기들과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다행히 소련 내에서는 U-2가 소련 영공을 벗어나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었지만, 쿠바 영공의 다른 U-2정찰기는 소련군의 SA-2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어 미 공군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Rudolf Anderson)이 사망했고 같은 날 쿠바 상공을 정찰 비행하던 미군 RF-8 정찰기는 쿠바군의 대공포 사격을 받았다. 이때까지 미국과 소련 양측의 수뇌부는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양측 전투기가 수칙에 따라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이륙한 후, 대치했다는 사실은 양측 수뇌부 모두 상황 종식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쿠바 영공에서 발생한 U-2격추는 크렘린이 아닌 소련군 일선 지휘관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으며 크렘린 궁의 소련 지도부 역시 모든 상황이 끝난 후에야 이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소련의 최고지도부들이 최일선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쿠바 상공에서 U-2가 격추된 순간 미 수뇌부는 당장 쿠바를 침공해야 한다며 격노하기도 하였으며 공교롭게도 당일 카리브 해에 주둔중인 소련의 폭스트로트급 잠수함 B-59함이 훈련용 폭뢰를 통한 강제부상 시도를 실제 폭뢰공격으로 오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잠수함 함장은 이를 미국에 의한 전쟁 발발 상황으로 간주하여 이미 탑재한 핵어뢰를 발사하려고 하였다. 다행히 부함장이자 K-19호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바실리 아르히포프가 반대하여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이 하루에 2건씩이나 터지면서 실제 전 세계는 핵전쟁의 위협에 사로잡혔다. 당시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회고록에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회의를 마치고 백악관을 나설
“회의를 마치고 백악관을 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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